버드나무 가지는 우룽주룽 한단다
10/2 (목)
저녁에 서울로 가야 하는 일정이 있어 아침부터 분주하게 철쭉 할머니께 가져갈 밤 우유를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의 공식적인 첫 보은이 될 터라 마음이 들뜨기도, 과연 우리의 입맛으로 만든 밤 우유를 좋아해 주실까 우려도 된다. 귀여운 쟁반에 할머니께서 주신 밤과 강냉이, 밤 크림, 밤 우유를 담고 류 작가와 함께 할머니 댁으로 출발했다. 점심식사를 함께 먹고 “할머니, 할머니가 주신 이 밤으로 라테를 만들었어요.”라고 내밀어야지.
“할머니, 안에 계세요? 저 왔어요”
누군가? 하고 빼꼼 문을 열어주신 할머니는 어제 왔던 나를 흐릿하게 기억하시는 듯 보였다.
점심을 먹으러 오기로 했었는데 가물가물하신지 “그랬나? 나는 맨날 까먹어.” 라며 머쓱해하신다.
그제야 어렴풋이, 할머니의 캘린더에 치매에 대한 기록이 보였다. 어제는 보이지 않았었는데… 하기사 연세가 무려 아흔네 살이시니 어제오늘 일을 깜박깜박하시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아차차, CCTV 속 따님에게 꾸벅,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갑자기 시꺼먼 청년이 두 명이나 불쑥 들어오니 무슨 일인가 놀라실 것 같아서.
“할머니, 제가 오늘 데려온 이 친구의 이름은 ‘버드나무’에요. 재미있죠?”
“버드나무?”
“네, 버드나무가 이름이래요.”
할머니는 방긋한 얼굴로 “버드나무 가지는~ 우룽주룽 한단다~” 하고 노래 한 구절을 부르셨다. 귀여운 할머님.
(나중에 우룽주룽의 의미를 찾아보니 길이가 들쭉날쭉 하고 다른 어떠한 상태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당연히 '버드나무'는 류 작가의 이름이 아니지만 우리의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랴. 할머니가 쉽게 기억하시고 한 번 더 웃으시면 되었지.
식사를 함께 한 할머니는 ‘2일’이라 쓰인 칸에서 점심 약을 꺼내드셨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 봉지의 약. 한 달이면 90 봉지나 드시겠구나… 할머니는 크림과 강냉이는 드시지 않으셨지만 우리가 가져간 밤 우유를 퍽 좋아하셨다. 모든 어르신들이 크림을 드시지는 않을 수 있겠구나… [메모].
잔을 다 비운 할머니를 바라보며 그저 흐뭇하게 웃고 있는 류 작가에게 눈을 찡긋, 우유를 드시는 할머니와 나를 카메라에 담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기록해 주었으면 하는 순간이었다.
늘 그렇듯 떠날 때가 참 어렵다. 오래 머무르고 싶은데 또 어설프게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를 털어야 한다. “저희가 너무 오래 있었어요. 이제 할머니도 쉬셔야죠” 같은 말을 주워섬기면서.
쉬세요. 쉬세요 할머니.
쉬라는 말이 싫지는 않으실까. 하루 세끼, 약을 먹기 위한 식사시간 이외에는 전부 텔레비전 앞에서의 시간. 그런데 또 쉬라고? 얼마나?
밝게 웃으며 우리를 따라 나와 배웅해 주시는 할머님께 오늘도 손을 흔들어 보인다. 류 작가는 우리의 안녕을 기록했다. “에이, 뭘 또 찍고 그래” 하며 인상을 쓰시지만 들어가시진 않는다. 어제처럼 우리가 안 보일 때까지 계속 꽃밭에 서 계시겠지. 오래 서 계시지 않게 얼른 내려가야지. 밝은 햇살 속 할머니는 오늘도 곱디고우시다.
비탈길을 내려와 함께 해당화의 허브 스튜디오(허브 룸을 모든 집기와 촬영도구, 커피 제작 도구와 재료로 채운 뒤부터 우리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로 돌아오는 내내 류 작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어제의 나와 사뭇 비슷하다. 우당탕탕 급하게 준비하느라 잔뜩 어지럽혀진 집기며 휘핑기 등을 설거지 하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어떤… 기분이세요? 작가님”
“모르겠어요… 마음이 무겁네요 어쩐지…”
똑같진 않더라도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으리라. 이 방문이, 기록이 스스로 어떤 모습이었을지.
“이게 , 우리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요?”
그래, 그 질문이 나오는 차례가 맞다. 나도 어제 한참 동안이나 그 고민을 했으니.
“이게, 음료수 가져다 드리는 게 무슨 의미죠?"
0.0. 원점까지는 아니어도 1.5. 정도로 다시 돌아간 우리의 ‘의미’.
“할머님이 드시면서 맛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는 걸 저는 놓쳤어요.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시호님이 알려주셔서 급히 카메라를 들었는데. 그게 너무 필요한 장면이지만, 제가 그 순간에 오롯이 머물지 않고, 기록을 염두하는 게 맞을까요?…”
“… 기록을 하고 싶지 않으세요?”
“하는 게 맞죠. 그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니 그게 맞긴 하는데… 모르겠어요. 마음이 편치가 않네요.”
뭐라 대답이 어려웠다. 그가 하는 말과 감정도 너무 이해가 간다. 그러나 기록이 없다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최종발표회에 어떻게 전시될 수 있을 것인가? 활동비와 재료비를 지원한 ‘주최’는 어떻게 이 순간을 인정해 줄 것인가? 할머님을 만나는 이 기회조차도, 그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해야 해요 작가님”
“… 알아요.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 기록이라던가 영상을 보고 누군가가 감동받거나,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이해해 준다면 그게 의미 있는 거겠죠. 그러기 위해 기록되어야겠죠.”
“제 생각엔 그렇지 않을까 해요”
“알겠습니다. 이제 조금은 납득한 것 같아요. 기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요.”
“다행이네요…”
예상했지만, 아니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자주 나는 류 작가와 하던 일을 멈추고 토론했다. 대부분 내가 류 작가를 설득(?)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실은, 42일간의 프로젝트가 무언가 대단한 위로나 행복을 어르신들에게 가져드릴 수 있다고도,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그래야 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적게는 20년에서, 많게는 90년 세월을 한 번도 스치지 않았던 사람들이 한 달 남짓의 방문으로, 그마저도 매일 방문이 아닌 뜨문뜨문 방문으로 행복 내지는 예술성 같은 것을 삶 속에 심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이고 방자한 일 아닌가. 냉정히 이야기해 우리는 그야말로 찰나를 스쳐가는 이방인이다.
‘작가’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당당하게 마을에 우리를 소개했지만 실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작가이고, 무슨 작품을 어디에서 전시했고 하는 것들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실지는…
다소 회의적으로 써 내려가고 있지만 나는 이 찰나의 만남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도시에서의 하루를 생각해 본다. 42일간 매일 스치며 인사를 나누는 타인이 나에게 존재했었나? 직접 키운 농작물로 만든 음료를 집까지 배달해 드릴 생각을 해 본 적은? 오가는 길에서 만났을 뿐인 할머니를 졸졸 따라가 그 집에서 요구르트를 얻어마실 용기는?
이 모든 것들이 여기에서가 아니면 아예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모르긴 몰라도 할머니의 입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길에서 만난 말(내지는 소) 만한 처녀가 갑자기 ‘할머니, 저 할머니 집 가도 돼요?’ 하고 따라나설 확률, 그리고 그녀가 집에 와서 함께 차를 마실 확률, 다음날 또 올 확률은 살면서 얼마나 될까?
기획되고 계획된 인연으로 시작했다고는 해도 나는, 이 인연의 틈바구니에서- 잊혀 가는 [마음]이라는 것을 끄집어내어 보이고 싶다. 그 향기가 우리가 무던히 섞고 젓고 끓여 만들어 낼 옥수수라테며 밤우유가 되겠지.
생각이 많은 중에 손이 바쁘다. 이제는 대추잼을 만들어야 한다. 따서 씻고 말려 둔 지 2주 정도 되어 알맞게 붉게 물든 대추를 잘 닦고 잘라 씨를 빼낸다. 과육과 물을 섞어 계속 끓여내며 졸이면 대추 고라는 것이 되는데 이것을 잼처럼 크래커에 발라서 먹을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앉아서 대추를 다듬는 데에 2시간, 잼 화 하는데에 3-4시간. 도합 대여섯 시간이 꼬박 걸린다. 그래도 작가님들께 맛을 보여드리니 너무 맛있다고 박수들을 쳐 주셔서 힘이 났다. 할머니들도 좋아해 주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