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주어진 세상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는 것

by 결항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아는 만큼 생각할 수 있고, 아는 만큼만 표현할 수 있다. 언어가 없다면, 적절한 단어가 없다면 우리는 '형언'할 수 조차 없다. 언어가 사고의 폭을 제한하고, 사고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는 단어로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기에.


그렇다면 지구상에 없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면 완전히 다르게 사고할 수 있을까. 완전히 새로운 언어가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도 완전히 다르게 보는 힘을 줄 수 있을까. 어쩌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까지도.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담긴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이런 신비로운 이야기다.


언어학자인 뱅크스는 지구에 착륙한 외계인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고 습득, 기록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헵타포드는 원형통 모양에 일곱 개의 팔, 다리가 달린 모습이다. 그들은 소리를 통해 어표의 언어를 사용한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에 '전방'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글자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어요. 고도로 근사한 방식이로군.'


헵타포드의 언어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음성 언어 '헵타포드 A'와 문자 체계 '헵타포드 B'를 나누어 사용한다. 2차원적 문법인 셈이다. 학자들은 조사한 언어를 바탕으로 수학적, 물리적 이론을 나눈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한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에 해당된다.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헵타포드의 언어는 순서가 있는 언어가 아니다. 그들의 언어는 한 번에 모든 것을 포괄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언어다. 한 마디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언어가 아니라 온 시간을 한 번에 관통하고 있는 언어다.


그들에게 있어 언어는 정보 전달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음에도, 언어를 통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는 모두 '수행문'이라고 표현된다. 결혼식에서 선언문이 읽힐 것을 알면서, 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미래를 알면서도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만 언어를 사용한다.


뱅크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고, 그들의 언어로 사고하면서 미래를 지각할 수 있게 된다. 시간상 현재가 아닌 자신의 전체 시간을 살게 된 것이다. 모든 시간을 관통해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순간에는 아직 낳지 않은 미래 자신의 딸이 스물다섯 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도 인지하게 된다.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알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아니 어쩌면, 묵묵히 자신의 미래를 수행해 나간다.





keyword
화, 토 연재
이전 14화조용한 위로 - 영화<드라이브 마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