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자주 모순투성이다. 뜨겁지만 차가운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람은 좋지만 또 사람이 너무 싫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원칙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부럽다. 이상주의자이지만 현실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한다. 모순되는 생각들은 머릿속을 늘 어지럽힌다. 이런 나에게 삶의 모순은 당연한 일이라고 다독여준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소설 <모순>이다.
이 책은 1998년 나왔는데 거의 20년이 지나 다시금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역주행 책인 셈이다. 시대적 배경도 현재와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의 모순은 어떤 강한 울림을 주는 듯하다.
<모순>은 주인공 20대 여성 안진진의 이야기다. 그녀에겐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가 있는데, 둘은 결혼을 기점으로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어머니는 폭력과 가출을 일삼는 아버지와 불우한 가정을 꾸려 집안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반면 이모는 철두철미한 성격의 이모부와 부유한 가정을 꾸려 전형적인 사모님 생활을 누린다. 안진진의 시선에서 이모는 자신의 엄마였으면 좋았을, 동경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모의 삶은 너무 평탄한 나머지 심심하고 단조롭게 흘러간다. 마냥 평화롭고 잔잔하다. 자녀들은 모두 해외에 거주하고, 남편은 시간표에 맞춰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러한 평탄함은 멀리서 봤을 때 남들의 부러움을 살 법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모에겐 치명적인 삶이 된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반면에 엄마는 끝없이 찾아오는 불행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넘어간다. 남편의 가출과 아들의 범죄, 또다시 찾아온 병든 남편의 간호까지도. 지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간다. 자신만의 불행의 과장법을 가지고.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이모의 이러한 삶은 안진진이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대 결혼을 선택한 그녀가 누구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자신에겐 과분한 안정적인 사람일까.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녀들의 인생은 정체된 듯한 나의 삶에도 어떤 이정표나 해법이 될 것 같다. 나만의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삶에서 불행은 어떤 의미인지도.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