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버둥' 이야기
'운명'은 나에게 주어진 것, '선택'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여섯 번째 회사를 퇴사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운명처럼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을 읽었다. 물론 소설을 읽고 퇴사를 결심한 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다다음주 나는 퇴사를 선언했다. 사회생활에서 누구나 토로하는 복잡한 인간관계와 정신적 스트레스, 바닥난 열정과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한계, 점점 벌어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등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회사 이직이 잦은 나에게 퇴사 과정은 어렵지 않았고, 그렇게 여섯 번째 회사를 나왔다.
문제는 이직할 회사를 구하지 않고 탈출에만 성공했다는 점. 30대 중반의 나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선택을 추진할 동력은 얼마나 될까. 세상은 여전히 너그럽게 나의 선택과 도전을 용인해 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현재,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과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소송>은 주인공 요제프 K가 어느 날 뜬금없이 소송에 휘말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소송 청구인이 누구인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어떤 소송 절차가 진행되는지에 대해 작가는 설명하지 않는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하지만 어디선가 소송은 진행되고 있고, 주변인들과 여러 상황은 갈수록 K를 압박해 온다. K는 법원 관계자들을 만나고, 조력자를 찾으면서 발버둥 치지만 이와 무관하게 그에 대한 최종 결론은 정해져 있다. 죽음.
카프카는 얘기하는 것 같았다. 당신의 발버둥은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고.
당신이 살아가는 동안,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소송(운명)'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며, 당신은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고민하고 행동하겠지만 결말은 같다. 죽음.
어쩌면 카프카의 얘기는 맞다. 누구의 스토리도 결말은 죽음이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본다면.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소송>의 큰 틀은 운명의 시작과 죽음이지만 이야기 면면은 결국 K의 발버둥, 그의 결정과 행동으로 구성돼 있다. 그가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행위를 했는지.
그래서 <소송>은 역설적으로 K의 '발버둥' 자체에 의미를 두게 한다. 그 발버둥이 소송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나중 문제다. 설령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주어진 운명 앞에서 한 사람의 선택과 행위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됐다.
결국 나에게 어떤 운명이 찾아왔는지, 왜 그런 운명이 펼쳐진 것인지, 운명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것인지는 부차적인 이야기다. 소설에서도 소송과 관련한 정보는 철저히 밝히지 않았듯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의 인과 관계를 속속들이 밝혀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건 '발버둥'이다.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할 것인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게 바로 K의 선택이고, 나의 선택이며,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고. 카프카는 얘기하는 듯했다.
나는 다시 선택 앞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진심을 다하여. 일곱 번째로 선택할 회사, 혹은 다른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