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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9. 2022

행복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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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안숙경은 어렸을 때 버릇대로 입을 삐죽 대며 콩알만 한 땅에서 쥐눈이콩 볶듯이 볶아대는 한국이 시시해서 떠났다고 했다. 얼굴을 찡그릴 때마다 윗입술과 인중 사이에 세로로 자글자글 팬 주름살 사이로 두껍게 바른 파운데이션이 숙성이 안 된 밀가루 반죽처럼 성글게 뭉쳤다. 삼촌뻘 되는 나이 차이지만 능력 있는 목사 남편 만나서 아이를 셋이나 낳고 풀장 딸린 집에서 잘 사는데 왜 거짓말을 하겠냐고도 했다. 미국은 큰 땅이 사람을 담대하게 품어주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에는 관용이 생겨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거 나 거짓말하면 천벌 받을 일인 줄 잘 알고 있거든. 그때 신입이라 암것두 몰라요. 언니도 나름 소스가 있겠지. 근데 시장님 공식 스케줄 외에는 내가 아는 게 없어

-너 이러지 마. 니 아버지 계좌는 어떻게 그쪽 사람들이 사용한 건지 해명이라도 해봐

-언니, 근데 우리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얘기 해야 해? 아유, 세상이 슬퍼지려고 그러네. 왜 이렇게 삭막해. 그거 통장만 빌려준 거야. 난 한 번도 못 봤어. 내가 그 통장에 어떤 돈이 얼마나 있는 줄 어떻게 알아. 난 그때 열심히 교회 다녔잖아. 지금 남편도 거기서 만났고. 정말야 언니

-그러게 너는 알잖아. 그 통장 실제 사용자 말이야. 김 아니잖아. 우리 쉽게 얘기하자

-그래 좋아요. 언니가 다 알고 있겠지. 내 과거사 다 나오네. 박시장이 정계에 진출하면 큰 물에서 놀 수 있으니까 둘이 그렇게 살자고 김명수가 날 꼬드겼어. 우리 같은 밑바닥도 호마이카 같은 광 한번 내보자고 하는데 혹할 수밖에. 쥐뿔도 없는 내게 언제 그런 기회가 오겠어. 솔직히 우리 집 무시하던 그 동네 잘난 것도 없는 인간들이 굽실거리게 만들고 싶기도 했고. 근데 그 새끼가 자긴 총각이라고 속였어. 애 가졌을 때는 한 번만 애 지우고 2년 있다가 결혼하자고 꼬셨거든. 그래서 순진하게 애도 지웠고. 낙태 후유증 때문에 언니 방에서 내가 하혈하면서 생리라고 거짓말했지. 언니도 눈친 챘을 거야. 우리 집 연탄아궁이가 시원찮아서 기름보일러 쓰던 언니 방에서 춥지 않게 재워 준 건 지금도 고마워해요. 난 그런 따듯함이 고팠어. 어쨌든 애를 두 번이나 지운 내가 상등신이지. 나중엔 다른 놈 씨 아니냐고 하는데 없던 정도 떨어지데. 나랑 갈라서고 승승장구하더만, 개새끼. 거봐 사람들은 다 지 행복만 찾지 남이사 죽든 말든 신경 안 써

-말 이상하게 돌리지 말자

-아니야. 난 친언니처럼 다 털어놓고 싶어. 내가 친정이 있어 뭐가 있어. 내가 어렸을 때 속으로 언니를 조금 질투했거든. 언니가 대학생일 때 뭘 빌려달라고 언니 방에 갔더니 책상 위에 비싸 보이는 만년필도 있고, 두꺼운 책들도 있는데 멋져 보이더라. 이래서 사람들이 대학엘 가는구나 싶었어

-아, 모나미. 그 만년필 비싼 거 아냐

-그때 나는 땟국물에 쩐 꾀죄죄한 헌 신발짝 같았으니까. 굳이 이유를 대자면 언니가 행복해 보여서지. 부럽고 질투 나고. 다 철없던 시절 얘기야

-나 그때 아버지 돌아가셨잖아. 집에 집달관들이 들이닥치고. 온갖 알바 하면서 등록금 댔는데

-언닌 주인집 딸이잖아. 여하튼, 그랬다고요. 김명수 그 자식이 순진한 날 시장 비서로 앉히고 내 몸과 영혼을 막 주물렀다니까. 실컷 단물 빨아먹고 버렸어. 그 새낀 지금 와서 나한테까지 혐의를 씌우는 모양인데 속으면 안 돼요. 거짓말을 눈썹 하나 까딱 안 하고 얼마나 감쪽같이 잘하는 인간인데. 사람 후리는 기술은 도가 텄다니까

-불행서사 그만해. 뇌물수수 비리 사건을 사랑과 이별 막장 드라마로 연출하지 말고. 그 돈 네가 혼자 쓴 걸로 엮이면 출국금지 당해. 네가 몰빵 당하다시피 다 뒤집어쓰는 건 나도 싫어. 현 정권 검찰 칼날이 꽤 세지만 업무추진비 횡령 같은 자잘한 건 안 다룰 테고. 그러니까 여기에 동의 서명만 하면 이 조사 끝나는 거야

      

김명수와 안숙경의 농밀한 관계는 양 떼를 모는 예수가 지켜보는 방에서 들었다. 김명수는 별거 중인 부인과 이혼하고 안숙경과 결혼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안숙경은 산부인과를 다녀온 후 호주에 골프장을 소유한 시의원 아들과 교제하면서 일방적으로 김명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몇 겹의 마음을 분리해서 별도로 작동하는데 능숙한 사람은 상처가 없다. 진실은 상처를 남기지만 거짓에 상처가 남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김명수란 존재는 거의 완벽한 신분세탁에 성공한 안숙경에게 흉한 얼룩을 남긴 인생의 이물질임이 분명했다. 지우고 싶고, 잊고 싶고, 치우고 싶은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흔적을 안숙경은 할 수만 있다면 손톱이 다 닳도록 박박 문질러 없애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김명수와 몸은 천리만리 떨어졌어도 김명수의 일거수일투족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내가 김명수 이름을 가장자리에 물망초가 수 놓아진 우윳빛깔 데님 식탁보 앞에서 더 많이 꺼낼수록 조급한 안숙경은 가라타니 고진이 ‘윤리 21’에서 지적한 것처럼 관계망상과 피해망상, 주시망상에 낚일 조짐이 커진다. 문득 무언가 방향을 잘못 들어선 느낌이 들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김명수가 제공한 안숙경 관련 파일 사본 세 장을 안숙경의 반짝이는 큐빅 손톱 앞으로 깊숙이 들이밀었다.     


-아, 이거. 이 통장은 김명수가 관리했다니까. 세상에나 돈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왔었어? 그리고 이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나네. 그 새끼 때문에 내가 이런 모욕을 지금까지 당하고 있다니까. 왜 한국 사는 것들은 죄다 나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냐고욧! 내가 무슨 죄를 지은게 있다고. 똑바로 좀 봐봐요, 언니. 비빌 언덕은커녕 부모 혈육 하나 없던 내가 피해자에요. 피해자인 내가 참고 살았어! 그 인간이 한창 예쁜 내 청춘 갈기갈기 파투 낸 것도 부족해서 여전히 날 죽이려고 하는데. 흥, 벌써 지옥으로 꺼져버렸어야 할 개보다 못한 잡놈을 두고 언닌 대체 누구 편이야!


울기 직전이던 안숙경이 돌연 어금니를 꽉 물더니 표정을 바꿨다.  

  

-나 다 기억 안 나니까 언니 마음대로 해. 출국금지를 하고 싶으면 하든가. 우리 남편도 어바인에서 인맥이 좀 있거든. 어차피 언니가 사법 권한도 없고. 나, 갈게요

-정말 출금할 수도 있는데. 대사관이 나설지도 몰라. 그럼 일이 커져

-그럼 그러세요. 미국 대사관이 요샌 미국 시민권자를 체포하는데 동조하나 보네?     


안씨 부인이 죽은 날이 생각난다. 남편이 바다에 간 사이에 단칸방 문지방에 엎어져 있었다고 한다. 문지방에 떨어진 붉은 핏자국 때문에 눈매가 부리부리한 경찰 열댓 명이 대문을 들락날락했다. 대문 앞에 벌떼처럼 모여든 구경꾼과 구둣발로 꽃밭을 밟고 다니는 경찰과 기자들의 성가심에 지친 엄마는 청심환을 먹고도 한숨 못 잤다. 안숙경은 화장장에서 양어머니를 산골 처리하고 자가용을 몰고 어딘가로 떠났다. 부인이 없는 집에 돌아온 안씨는 밤새 술에 취해 한 맺힌 짐승처럼 울었다. 세상 가엽기로는 저만한 이들이 드물 거라며 엄마는 이튿날에도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닦았다. 나중에 엄마에게서 들은 바로는 안씨 부인이 죽기 전에 안숙경이 매일 다녀갔다고 한다. 안씨 통장에 갯벌 매립 어업활동보상금 3천만 원과 선박보상금 1천만 원이 입금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출입국관리소 담당 검사에게 출국 연기 신청을 하고 옛집을 갔다. 하얀 아크릴 판넬에 제법 멋을 부린 붉은 명조체로 쓴 낙원가든 입간판 옆으로 노란 은행잎이 폭신하게 쌓였다. 수나무만 심었는지 은행 알을 맺지 못한다고 아버지는 나무 장사꾼에게 속았다며 끌탕을 했다. 뒤채는 허물고 기역자였던 한옥 본채에 평평한 징크 건물을 덧대 볼품없는 모양새였다. 5월이면 연보라색 등꽃에 몰려든 꿀벌들의 붕붕 대는 날갯짓 소리가 방안까지 들린 등나무와 담장 옆 아름드리 후박나무가 사라졌다. 가을에는 커다란 후박나무 잎사귀에 마종기나 최승자 시 한 구절을 베껴 써서 책갈피에 끼웠다.

 

배롱나무는 별채 앞으로 옮겨져 담장을 끼고 옆으로 돌아야 나타났다. 우키요에 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와 그의 딸 오에이 일화를 다룬 애니메이션 ‘백일홍 : 미스 호쿠사이’ 한 장면인 쪽마루 앞에 핀 배롱나무 장면을 컬러 프린터로 뽑아 사무실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봤다.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옛집과 아버지, 부학장네 적산가옥의 다다미가 깔린 서재와 금박을 입힌 책들이 반짝거리던 책장, 웃을 때마다 옴폭 들어가는 한쪽 뺨의 보조개가 귀여웠던 부학장 딸이 생각났다. 6년 동안 손을 잡고 다닌 친구는 중학교에 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돼지저금통을 깨서 사준 분홍 털목도리를 두르고 나비넥타이와 함께 밴쿠버로 떠났다. 비행기 활주로에 싸락눈이 하얗게 쌓인 날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시간이다.       

 

옛집에서 마음을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무드셀라 증후군이 심각한 엄마는 텔레비전에 한옥만 나와도 배롱나무와 작약이며 백목련을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허둥지둥 옛집을 헐값에 넘길 때는 키키 키린이 연기한 ‘걸어도 걸어도’에 나온 엄마처럼 아무것도 못 버리게 야단을 쳤다. 뚜껑이 깨진 가마솥과 몇 대 할머니부터 전해온 씨간장이며 새우젓을 담근 조랭이 항아리부터 남 주고 남은 항아리 십여 개를 가져가야 한다고 이삿짐센터 직원과 말싸움을 벌였다. 심지어 금이 간 대추나무 찬합, 사진사 조씨 부인이 옷을 짓던 현 양장점에서 얻어온 자투리 옷감 한 보따리와 종이 쇼핑백, 비닐끈 묶음까지 이삿짐에 챙겼다.      


엄마는 작은 고모 동창이 소개한 고덕동 시민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 가을이면 계절성 정서장애 증상이 깊어졌다. 기분이 침잠되어 밥상이 부쩍 부실해진다. 손이 많이 가는 녹두 양갱이나 밤묵 먹고 싶다는 말은 입 밖에 못 내고 오빠와 전어회나 백합죽 얘기만 꺼내도 라면 밖에는 못 끓이는 니들이 어쩌고 하면서 팔자타령을 읊었다. 아파트 단지에 핀 노란 국화를 한 아름 꺾어 왔다가 경비 아저씨에게 혼난 적도 있다. 꽃 갖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가슴이 메마르다며 며칠 동안 경비 아저씨 흉을 봤다. 이모들과 내장산 단풍구경 가서는 단풍은 너무 예쁘고 인생은 너무 짧다고 1박 2일 동안 울다가 왔다.      


낙원가든 간판에 불이 켜지자 엄마가 기억에 꽁꽁 묶어둔 옛날 장소에 자동차가 하나 둘 모였다. 발그레한 얼굴로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내가 돗자리를 깔고 여동생과 그림을 그리며 놀던 마당을 왁자지껄 가로질러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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