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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Oct 29. 2022

행복의 사회학

5

【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연기 불허 통보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출장가방을 챙기고 있을 때 인터폰으로 다급한 부장 목소리가 들렸다.     


-언능 뉴스 봐봐! 일 났어 일!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이자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이 불거진 박성춘 의원의 인천시장 재임 당시 비서관 김 모 씨가 오늘 새벽 5시 10분경 아침 조깅을 하던 시민에 의해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박 의원의 자금관리 인물로 알려진 전직 국가정보기관 직원인 김씨는 공덕동 오피스텔에 남긴 태블릿 피씨에 전 비서 안 모 씨와 중견 건설업체 P대표, 현직 시의원인 K의원 사업체인 모 투자전문회사와 B홀딩스 대표이사 O씨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미국에 있는 아내와 자녀에게 미안하다고 썼다고 합니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리모컨을 바닥에 확 집어던졌다. 캐비닛 앞에 있던 장대리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박살 난 리모컨 조각을 주섬주섬 주웠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를 끌어당겼다. 부장실 호출 단추에 빨간 불이 깜박였다.      


엄마가 한의원에서 침 맞고 집에 오는 길에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 왔다고 오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차가운 바람이 가슴과 얼굴께로 확 덮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얇은 셔츠 차림이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게릴라성 폭우에 온몸이 적셔진 듯 몸이 처졌다. 중학교 테니스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시동을 끄고 CD를 골랐다. 언거번거한 사람 목소리가 듣기 싫은 날이다. 결 고운 참빗으로 엉클어진 밤을 빗고 싶다. Hymn을 연속 재생으로 누르고 실내등을 껐다. 빌 더글러스 바순은 따뜻하고 구슬펐다. 의자를 뒤로 젖히자 눈물이 또르르 흘러 귀밑머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검은 나뭇잎들이 어둠 속에서 가만히 흔들렸다.     


안숙경을 다시 본 건 유튜브에서다. 새까만 털조끼를 아이보리 스웨터 위에 겹쳐 입고 눈웃음을 치면서 옆자리 앉은 백인 여성 두 명과 영어를 섞어 쓰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지역에서 헛기침께나 하는 인물로 보이는 교회 지인인 대머리 백인 남성과 약 효과에 관해 영어로 인터뷰를 나눴다. 윤기가 흐르는 발성에 낭창낭창한 태도와 환한 낯빛은 전기가오리가 내뿜는 발광체를 보듯 눈을 떼기 어렵다. 아니 전기가오리는 약하다. 안숙경은 만나는 남자마다 자기 세계로 흡입하는 바기나 덴타타이다. 거친 이빨을 보드라운 양턱 안에 숨긴 채 사냥감을 포획하는 데 최선을 다한 삶 앞에서 나도 모르게 안숙경의 찬란한 욕망을 게염 했을지도 모른다.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시장바닥에서 깨진 벽돌을 깔고 앉아 기침을 하며 새우를 팔던 안씨 부인이 생각난다. 한밤중에 찾아와 안숙경 이름을 부르며 대문이 부서져라 발길질을 하던 술 취한 군인과 콘돔 한 상자를 등나무 아래 서 있던 안씨 부인 면전에 던지며 욕을 내뱉고 간 나이 든 남자도 떠오른다. 안씨 부인은 이런 고무풍선은 어디에 쓰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영종도 요양원에서 섣달 그믐밤에 술에 취해 웅크리고 죽은 안씨는 한 줌 재가 되어 바다에 뿌렸다고 한다. 가루세제를 푼 대야에 딸 속옷을 넣고 한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해서 빨랫줄에 널던 등 굽은 안씨 모습이 유튜브의 행복한 안숙경 얼굴 위에 겹쳤다.      


업무 성취감과 만족도 검사에서 직무 수행 중 언제 행복하냐는 문항이 있었다. 답변을 궁리해 봤지만 그럴듯한 답변이 안 떠올라 빈칸으로 남겼다. ‘산소리’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말한 것처럼 “평범한 사람의 생애는 올해도 대충 살고, 설날에 말린 새끼 멸치나 말린 청어 알을 맛보는 것”이 행복인지 했다. 소박하고 자잘한 풍경들을 버리고 대의강박증에 시달리면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목적을 성취했을 때가 아닌 그때그때 중도를 지켜 살아가는 이성적인 활동 그 자체로 보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말대로라면 행복이란 일상에 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삶의 태도, 살아가는 방식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불행을 감염시킨다. 어쩌면 행복이란 행복하고 싶은 착각이 빚은 플라시보일지 모른다.


엄마는 낮에 런던에서 도착한 영양제며 관절염 약병을 이리저리 계속 돌려보면서 함박 웃었다. 모처럼 그늘이 없는 엄마 얼굴 옆으로 산 능성이가 활활 타올랐다. 텔레비전 화면 가득한 화염이 엄마가 쓴 돋보기 안경알에 이글이글 투사되고 있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검거된 용의자인 50대 후반 A씨는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한 형이 고향에 전원주택을 짓고 혼자만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화가 나서 미리 구입한 휘발유를 형 집에 뿌려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한 후 신용불량자가 된 A씨는 그동안 금전 문제로 형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형의 주택은 전소되었으나 부부가 집을 비운 상태라 인명피해는 없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불길이 옆집으로 붙어 70대 노부부 중 남편이 질식사했고 부인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는 소방당국이 병원에 옮겼으나 중태에 빠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주민 30여 명은 마을회관으로 긴급 대피했으며 대피 도중에 80대 주민 한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 화재로 인근 마을 다섯 곳이 현재 정전 중이며 사업체 아홉 곳이 밀집한 농공단지 가동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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