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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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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Jan 12. 2020

고양이 R

23화

집과 길이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오종종한 애들을 간신히 데리고 왔다. 벌벌 떠는 애들을 핥아주고 젖을 물렸다. 기운이 없어 눈앞이 핑핑 돌았다. 젖을 먹고 난 애들이 몸을 포개고 눈을 감자 나는 슬며시 일어나 길 아래로 내려왔다. 바스락이 냄새가 나던 아이가 살던 집을 힐끔 보고 큰길 쪽으로 내려갔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집집마다 큰소리로 떠드는 인간들이 가득 찼다.    

       

길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나처럼 밥을 찾아다니는 녀석을 만났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밥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자리를 떴다. 집을 나온 첫날은 예민했다. 애들은 계속 양양 투정을 부리며 품을 헤집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애들을 품고 까무룩 잠을 잤다.      

      

_어머나, 고양이 가족이네. 얘들아 안녕~          


어둠이 가실 무렵 한쪽 뺨에 검은 무늬가 있는 인간이 나와 내 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애들을 등 뒤로 숨기고 학~ 학~ 이빨을 드러냈다. 인간은 내 앞에 뭘 내려놓고 몇 발자국 떨어져 나와 애들을 지켜봤다. 물건에서는 썩 괜찮은 냄새가 났다.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인간은 믿을만한 족속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였다. 인간은 내가 망설이자 꼬불꼬불한 길 끝으로 가버렸다. 인간이 안 보이자 나는 내 애들이 웅크리고 있는 구석 위에서 펄쩍 뛰어 내려가 인간이 놓고 간 밥 냄새를 맡았다. 아주 괜찮았다.       


하루가 다르게 다리에 힘이 붙은 애들은 서로 껴안고 자빠지고 물고 핥아줬다. 애들이 클수록 밥을 주는 인간을 더 자주 봤다. 인간이 갖다 준 밥은 좀 질척하면서 부드럽고 냄새가 좋았다. 인간이 밥을 갖다 주면서 큰길로 나다니지 않았다. 꼬불꼬불한 길 구석 집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애들에게 젖을 물리고, 애들과 몸을 포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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