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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신 케이 Oct 14. 2023

보스턴-도넛-자전거

스토리포토그라피100

스토리 3 - 보스턴-도넛-자전거


Yashica T4 safari, Fuji C200 / Sinagawa, Tokyo - May


'도넛'하면 보통 어떤 도시가 떠오르시는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뉴욕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뉴욕-도넛-경찰' 이렇게 뭐랄까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이니깐 말이다. 근데 나는 도넛 하면 보스턴이라는 미국 동부의 한 도시가 떠오른다. 대학생 때의 어떤 강렬한 한 순간 때문이다.


2011년 8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미국 중부-동부를 여행하고 있었다. 마침 보스턴을 지나게 되어 며칠 머물기로 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시티자전거를 빌려서 착-착-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싸돌아다녔다. 존 하버드 형님의 구두도 슥슥 번쩍번쩍 닦아주고(하버드 대학교 설립자로 동상의 구두를 만지면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MIT대학 근처의 한 카페에서는 그렇게 스마트하다는 학생들은 어떤 대화를 하는지 엿듣기도 하면서(얼핏 무슨 무슨 코인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나. 하하.) 또 찰스 강변을 자전거로 신나게 착-착-! 달리면서 꽤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큰 도넛을 하나 사들고 근처의 공원으로 갔다. 도넛을 우물우물 먹으며 행복하게 자전거를 밀면서 걸어가던 내게, 반대편에서 오고 있던 한 보스토니안이 이 세상의 온갖 의문이 응축되어 참다못해 폭발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아니 대체! 왜 시티바이크를 타요?! 좋은 자전거가 얼마나 많은데......."

갑작스러운 공격적인 질문에 나는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아아.. 전 그냥 방문객이거든요......"

그 남자는 잘 못 들었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뭐랄까, 미국인 특유의 큰 제스처를 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

"네? 아니 대체 그런 자전거를 왜! 타고 다니냐니깐요!?"

"어어... 음..."

뭐라 말해야 하는지 당황해하는 내 대신 옆에 있던 그의 여자 친구가 말했다.

"방문객이래. 여행 중이야."

"아아...~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그러고는 우리는 서로 지나쳐갔다. 정말로 5초 남짓의 순식간에 일어난 짧은 대화였지만 엄청나게 강력해서 아직도 표정과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 사람의 표정을 기억하자면, 며칠 지나 수분이 다 빠져버린 딱딱한 도넛을 씹었을 때처럼 "아니 찐따 같이 왜 그런 자전거를 타는 겁니까?? 대체 나원 차아아아암!"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곤 내 대답을 듣고 나서는 하수구에 엄청난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머리카락 뭉치처럼 ‘슈아 아아아 아아아악’ 소리는 내며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인간의 표정은 짧은 순간 정말 많은 걸 말해준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사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의 컨셉으로 보스턴에 온 건데.. 안타깝게도 순식간에 방문객이 되어버려 속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엔 시티바이크라는 게 사람들에게 그다지 정착하지 않았던 시대여서 편견 같은 게 있었던 건가 싶다. 뭐 어쨌든 자전거를 타면 그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콕 박혀버려서 도넛이라고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도시 보스턴이 되어버렸다. 이런 걸 심리학에서는 앵커링(anchoring effect)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보스턴-도넛-자전거 요렇게 세 개가 심각하게 앵커링 되어있다(뉴욕-도넛으로 다시 바꾸고 싶은데 방법을 아시는 분 있을까요. 하하.) 


@ 예전에 오사카에서 자전거를 아주 잠깐 무단 주차한 적이 있는데, 돌아와 보니 자전거는 없고 한자가 가득한 종이 한 장만 바닥에 붙어 있었다. “여기로 찾으러 오세요. 2만 원 가지고서.” 당시에 일본어를 전혀 못했지만 핵심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법을 지키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



길 가다가 깜짝 놀라 시선을 끄는 장면이 있다면 필름 사진으로 찍어서 기록해 보자. 나중에 한참 시간 지나서 다시 봤을 땐 새로운 이야기로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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