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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Oct 22. 2023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게이샤 커피 농장을 찾아가다

파나마, 게이샤 커피 농장 투어 

파나마가 커피 산지라고요? 

파나마 하면 운하다. 마침 파나마 운하 가뭄 증세로 전 세계 물류산업에 비상이 걸린 참이었기 때문에 파나마 운하를 꼭 가봐야겠다란 생각을 했다. 코스타리카에서 국경을 넘어 파나마로 건너갈 참이었는데 파나마 수도인 파나마 시티는 코스타리카 국경에서 거리가 꽤 멀었다. 


어쩔 수 없이 파나마 국경 도시인 다비드(David)에 하루 숙박하기로 했다. 원래는 하루 숙박만 하고, 다음날 바로 파나마 시티로 가는 버스를 탈 참이었다. 하지만, 다비드에서 약 1~2시간 버스 타고 올라가면 보케테(Boquete) 지역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게이샤 커피 산지라는 정보를 듣게 됐다. 


보통 중미 커피하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파나마는 다소 낯설었다. 아무래도 다른 국가에 비해 파나마는 단일 농작물 의존 경제 체제에서 벗어나 물류 및 페이퍼컴퍼니.. 사업 등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가이다 보니 커피 산업이 상대적으로 가려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곳에서 게이샤 커피 품종을 유일하게 기른다니. 세계에서 비싼 게이샤 커피를 저렴하게 현지에서 맛볼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나는 커피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커피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 When I tasted this coffee I saw the face of God in a cup" 

2006년 권위 높은 커피 품평회에서 한 심사위원이 파나마 게이샤 커피를 처음 맛보고 남긴 말이라도 한다. 일본의 게이샤를 연상하게 만드는 이 커피는 사실 일본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저 이 커피 품종이 최초로 발견된 지역이 에티오피아 게샤 지역이라서 게샤가 자연스레 게이샤로 불리게 됐다. 


에티오피아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지만, 생산성이 너무 떨어져서 아무도 재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파나마로 건너오게 됐는데 무심코 던져서 심은 커피콩들이 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1999년 수많은 커피 품종을 습격한 곰팡이가 발생했는데 이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바로 게이샤 커피라고 한다.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게이샤 커피는 기대 이상으로 맛이 엄청났고 세계 커피 품평회를 통해 그 명성이 전 세계로 알려졌다. 


게이샤 커피부터 다양한 커피를 맛볼 수 있었던 커피팜 투어 

게이샤 커피 산지 라 보케테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지극히 즉흥적이었기 때문에 버스 타고 가는 길에 찾은 몇몇 커피 농장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내 투어 가능한지 문의했다. 아쉽게도 대부분 오전에만 투어를 진행하거나 오늘은 운영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보냈다. 혹시나 오늘 농장을 방문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라 보케테에 있는 카페에서 게이샤 커피를 저렴하게 맛볼 생각이었다. 


라 보케테는 화산으로 둘러 싸인 곳으로 도보로 20분이면 중심가를 다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물론 커피 농장에 방문하기 위해선 별도 예약을 통해 픽업 차량을 타고 조금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몇몇 카페를 눈여겨보다가, "커피 투어"라고 광고물이 붙은 한 가게로 들어갔다. 혹시 오늘 투어가 가능하냐고 묻자 마침 30분 후에 투어 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투어 비용은 약 30달러(3만 원 9천 원). 게이샤 커피 1잔에 보통 10달러 넘는 가격에 판매되니 투어 자체로도 꽤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파나마 커피 농장 커피 나무 

커피 농장 투어를 맡은 후안은 말솜씨가 좋았다. 커피나무 앞에 서서 파나마의 커피 농장 현황에 개인 경험을 섞어 지루하지 않게 전달했다. 이 농장에서 기르는 커피 품종은 약 10가지 이상인데 게이샤 커피 이외에도 커피 품종별 차이 등을 알려주었다. 생산성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게이샤 커피나무는 확실하게, 다른 커피나무보다 맺혀있는 알알이 적었다. 난생처음으로 보는 커피 열매는 오히려 앵두를 연상케 했다. 커피 열매를 손으로 살살 터뜨리면 안에 있는 씨앗이 나오고 이 씨앗을 심으면 커피나무가 쉽게 자란다고. 게이샤 커피나무도 그렇게 우연히 이곳에서 싹을 텄다. 

커피 열매 

커피 농장 규모는 꽤 컸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커피나무들이 뿜는 피톤치드를 마음껏 맡을 수 있었다. 이후 커피 가공하는 창고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익숙한 이름을 가진 마대자루를 발견했다.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로 유명한 '테라로사(Tera rosa)'가 적혀 있는 것이었다. 그 테라로사로 보낼 '세척된 게이샤 원두'를 담을 마대 자루라고 한다. 후안은 내가 한국인이란 이유(?)로 내가 마대 자루를 잡은 모양을 사진으로 남겼다. 

테라로사로 보낼 게이샤 커피 

마지막 단계는 커피 농장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커피 시음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7가지 커피 원두를 모두 시음할 수 있었는데 각 컵마다 해당 커피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바리스타들이 커피 시음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스읍-하며 커피를 빨아들인다). 7종의 각기 다른 커피를 차례대로 맛보며 각자 취향에 맞는 커피를 이야기했는데 다들 게이샤 커피를 맛보는 순간 투어에 참가한 6명 모두 '달콤한 과일향'이 풍부하다며 감탄했다. 

게이샤 커피 포함한 7종 커피 시음 

게이샤 커피 마시기 전에 다른 6종 커피를 마시며 '이걸 무슨 맛이라고 표현해야 하지?'라고 갸우뚱 거리며 여러 커피 맛이 입에서 섞여 게이샤 커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살짝 걱정했던 것이 무색했을 정도로 게이샤 커피의 개성은 강했다. 제대로 된 드립 기구로 내린 것도 아닌, 분말에 물을 부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전문 바리스타들이 잘 내린 커피는 얼마나 맛있을까 궁금해졌을 정도였다. 각자 시음용으로 제공된 커피의 양이 많아 다 마실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게이샤 커피만 1컵 다 마시고, 나머지 6종 중에서 취향에 맞는 것만 반컵 정도 마셨다. 카페인에 민감하지 않아서, 커피 마시고도 잠 잘 자는 체질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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