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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Sep 23. 2021

5년 넘게 먹던 닭가슴살을 끊기 시작한 이유

양계장을 직접 보고 난 후 닭가슴살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그 날의 광경

퇴직을 앞둔 아버지께서 "양계장"을 양도받아 육계를 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축산업에 1도 관심없던 나는 "육계"란 단어가 무척 낯설었는데 대략적인 어감으로 닭고기를 목적으로 하는 양계의 일종인가라고 추측했다. 양계장은 크게 1) 산란계 2) 육계 로 나뉘는데 산란계는 달걀을 얻기 위한 축사이고 육계는 닭고기를 목적으로 하는 축사라고 한다. 육계에서 길러진 닭 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하림 등 닭고기 가공하는 곳으로 납품된다고 한다. 

아버지께선 법과 관련된 일을 하셔서 농축산업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갑자기 육계를 한다니 어리둥절했다. 아버지 친구도 퇴직 후 비슷한 양계장을 한다는데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쏠쏠한 벌이가 된다고 했다. 대략적인 인수 금액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금액이 커서 "으아, 이거 내가 좀 알아보고 조언을 해드려야 하나?" 라고 고민을 잠시했다. (혹시나 큰 돈을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한편으론 농축산업 같은 1차산업은 우리가 익숙한 산업에 비해 아직 데이터보단 경험화된 노하우가 더 통하는 곳인만큼 내가 이 육계 산업의 전망(?)을 객관적으로 찾아본다 한 들 어른들의 결정에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진 않았다. 


올해 초, 설날 연휴(추석연휴 아님)를 맞아 집을 내려왔는데 계약금을 치를 양계장을 보러가자고 하셨다. 일단 아버지의 큰 돈이 달린 결정인만큼 나도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한편으론 걱정이 되긴 했다. 이유는 내 식사는 '닭가슴살'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여느 보통 사람보다 약간 조금 넘치다 싶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먹는다. 운동을 꾸준히 한지 약 5년째, 단백질 집착증(?)이 생겨서 꾸준히 닭가슴살을 냉동실에 재워넣고 하루에 최소 닭가슴살 2봉지는 뜯어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닭가슴살 곁들인 샐러드, 저녁에 운동전에 또 닭가슴살 활용한 무언가. 그리고 요샌 닭가슴살 가공품이 맛도 다 훌륭해서 간식들도 핫바, 소시지바, 볶음밥 등이 내 일상 식사였다.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약속이 있는 날이 아닌 이상은 거의 닭가슴살 관련된 음식으로 삼시세끼, 간식마저 닭가슴살 만두, 핫바 등을 먹을 정도다. 밖에 나가서 외식할 때도 고기 위주 식사를 좋아하고 탄수화물 밥은 거의 안먹는다. 


그동안 채식주의자 입덕(?)을 부른다는 비인간적인 공장형 축사 영상 등을 보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것은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고 싶지 않은 심리적 요인 때문이었다. 머리로는 값싼 고기 공급을 위해 동물 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닭가슴살을 끊긴 힘들거 같단 생각이 충돌해 아예 그 진실을 외면하자라는 식으로 살아왔다. (그나마 간혹 마켓컬리에서 장을 볼 때 동물복지 달걀이나 고기 등을 구매하는 것으로 괜히 스스로를 안위했다) 

기존에 "양계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하면 겨우 서있을 만한 좁은 철창 케이스 1개마다 닭이 들어가있고 그 철창 케이스가 수직으로 빽빽하게 쌓여있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에서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그러한 양계장 그림말이다. 

그런데 고기를 목적으로 하는 육계장의 경우 수평이었다. 빽빽한 철창은 없었으나 살짝 어둑어둑한 실내 환경에 수많은 병아리와 병아리에서 조금 자란 중닭들이 땅 위에 서있었다. 어디 갇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작은 개체들이 어찌나 빽빽하게 있는지 저들이 돌아다닐 수는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되게 넓은 광장에 풀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그냥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러한 이미지는 꽤 강렬했다. 사람으로 묘사한다면 만원 지하철에 서서 옴짝달짝 못하는그러한 모습이랄까. 어둑어둑한 조명에서 이 병아리들은 태어나서 고기 가공업체로 넘어가기 까지 평생 저렇게 서 있다가 그냥 죽음을 맞이하는 건가. 태어나서 출하 (도축)되기까지 약 1개월 정도. 이 짧은 기간동안 병아리가 커봤자 얼마나 클까. 우리가 사실상 먹는 닭가슴살, 닭고기들의 그 작은 모양이 대부분 결국 살찐 병아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인가. 


전세계적으로 비건, 동물복지 등이 트렌드가 되어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주류는 육식주의자들이다. 그리고 육식주의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육류를 소비하기 위해선 결국 축사 환경은 저비용 고효율 방식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축사 환경을 마냥 비난할 순 없다. 결국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를 공급받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그 날 양계장의 모습을 목격하고 나는 냉동실에 있는 닭가슴살을 먹을 때 마다 그 때의 잔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돼지 멱따는 것을 보고 충격 먹어 어렸을 적 돼지고기를 한동안 못먹었던 것처럼. 그래서 냉동실에 쟁겨놓은 마지막 닭가슴살을 먹은 후 더이상 난 닭가슴살 제품을 주문하지 않았다. 닭가슴살을 대용할만한 다른 단백질을 먹어야 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마침 넷플릭스에서 "더 게임 체인저스 (The game changers)" 다큐가 알고리즘 추천으로 걸려 보게 되었다. 채식으로 기존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운동 선수들 사례를 보여주면서 채식으로도 충분히 근성장과 운동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다큐류 역시 여느 다큐처럼 특정 목적을 가지고 bias 한 시각으로 편집되었다는 것을 어느정도 인정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필요이상의 육류를 섭취하고 있고 이는 결국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것에 공감을 하게 됐다. 특히 닭가슴살 등 육류 단백질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통풍 걸릴 가능성도 많다고 흔히 그러지 않는가. 그래서 나도 이제 단백질 집착증을 버려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채식주의자는 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극단적으로 가면 그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 친구들이랑 편하게 술을 마실 때 어찌됐건 약간의 고기는 들어가는 메뉴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술을 좋아해서 어쩔 수가 없다) 비건이 비교적 흔한 유럽에서 생활을 할 때도 비건을 존중한다고는 하지만 내심 "은근 까다로운 친구들"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였다. 

그러다가 플렉시테리안이란 개념을 알게 됐는데 평소엔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유지하되 사회 생활하면서 고기를 먹어야할 땐 먹는 그러한 식습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실 "그냥 고기를 좀 덜먹는다"라는 것을 좀 있어 보이게 단어로 만든 거 아냐? 란 생각이 먼저 들긴 했는데 단순 "고기를 덜먹자"라고 다짐하는 것과 "플렉시테리언 생활을 해보자"라는 것은 은근 다른 효과를 준다. 즉, 혼자 먹을 땐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되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땐 적절한 육식을 하겠다고 의식을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채식은 아닌 셈이다. 채식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 혹은 고기를 덜먹고 채소를 더먹자는 개념 정도) 


 닭가슴살 쇼핑 대신 대체할 수 있는 식물성 단백질 식품들을 위주로 장바구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원래 콩과 두부 맛을 좋아하는 편이라 큰 거부감은 없다. 그렇다고 마냥 연두부, 순두부만 먹을 순 없으니 중국에서 먹던 다양한 두부 제품 (간두부 등)을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비건 하시는 분들이 면 대신 애용하고 있었다. 가격도 생각보다 괜찮아서 잔뜩 쟁겨놨다. 


옛날에는 닭가슴살이 가장 가성비 좋은 단백질원이라 생각해서 그리 집착을 했는데, 두부관련식품, 귀리나 통밀,호밀,견과류 등을 통해 은근 섭취할 수 있는 단백질이 많고 다행히 모두 내 입맛에 맞는 거라 그리 어려운 전환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난 그냥 운동이 습관이 되어서 운동한 후의 보람 (근육량 증대)을 위해 닭가슴살을 꾸준히 먹어왔던 건데 내가 뭐 바프 찍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 까지 집착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사실 양계장을 방문한 이후 매번 닭가슴살을 먹을 때 마다 그 날의 잔상이 떠올라 죄책감을 덜기 위해 플렉시테리안을 하기로 한건데 이후 플렉시테리안 생활의 장점 (결국 인류가 육류를 덜 먹으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조금씩 알아가며 나름 세상의 변화에 일조한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과거엔 채식주의자하면 동물 복지 등을 먼저 연결지어 생각했는데 요즘엔 기후 변화 등 환경적인 측면으로 범위를 확장해 거시적으로 접근하는게 트렌드인 것 같다. 


즉, 과거엔 채식주의가 개인의 신념, 종교적 문제로 실천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개인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삶을 생각하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모양이랄까. 공장형 축사가 기후변화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받는 만큼 그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인류가 육류에 대한 집착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1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0명의 플렉시테리안이 세상의 변화에 더 일조한다는 말이 있다. 나 하나의 식습관 변화가 결국의 의식변화로, 세상의 변화에 미약하게나마 일조하는 것을 경험하니 확실히 지속가능한 삶, 환경에 더욱 한발짝 나아가는 느낌과 뿌듯감이 든다. 가끔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일부러 마주할 필요가 있다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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