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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작가 Dec 21. 2024

9화 옵저버

타로(Tarot)

  드르르륵- 드르르륵- 전화 진동이 다섯 번째 울리고 있었다. 준아는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잠이 깨자 어제의 사건들이 전광속화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어렵게 왼 손을 뻗어 전화기를 들었다.


  "네, 강준아입니다-"


  "여보세요. 강준아 학생입니까. IT대학장입니다. 전화를 다섯 번이나 했어요. 오늘 수업 들으러 학교에 오나요? 잠깐 봤으면 해서 연락했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오늘 수업은 없지만.. 제가 기숙사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찾아 뵐 수 있어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제가 학과 대표인데.. 혹시 학생회 관련된 일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만나서 얘기하시죠. 그럼 오후 세 시에 제 사무실로 오세요."


  "네, 세 시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휴대폰으로 시계를 확인해 보니 오후 12시 30분이었다. 문자가 두 개 와 있었다. 아린과 성진이었다.


  '형, 이메일로 자료 좀 보냈어.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도와줄 테니 보고 연락 줘."


  준아는 좋은 친구를 얻은 것 같아 잠결에도 빙긋 웃는 표정이 나왔다. 아린에게 온 문자를 보고는 선 뜻 연락하기 살짝 망설여졌다. 우선 성진의 메일을 읽어 보기로 했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성진이 보낸 자료는 학교의 지난 이력들과 여러 사건들에 대한 학생들의 제보들이었다. 게시 글을 보니 학교 측에서 권력을 악용하여 무분별하게 등록금, 계적학기비를 인상하고, 학생들에게 특정 비용을 착취하고 통제하는 사건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마치 그들이 운영하는 그들만의 세상은 사이비 종교 단체와 같은 느낌이었다. 피해자들은 온라인 카페까지 만들어 법적 대응을 위한 증거 자료들을 모으고 있었다. 


  같은 시각 본관 기획실에서는 기획처장이 윤지혁 교수에게 보고 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강준아의 신상 기록이었다.

  "학점이 4.5 만점? 이거 특이한 놈이로구만. 지방 출신의 가난 뱅이가 서울에서 우등생도 모자라 학과 대표를 하고 있네."


  본관의 가장 오른편 탑층은 아린의 방이었다. 오후 1시 강의를 위해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 많이 놀랐을 준아를 생각하니 마음에 걸렸다. 그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이제 준아까지 떠나면 이 곳에 유일한 친구란 아무도 없었다.


  강의장까지는 본관 입구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아린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윤아린! 너 어제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


  도희였다. 아린은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가 경영관으로 발을 옮겼다. 도희는 아린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내 감시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넌 나 없이는 안돼. 후회할 행동하지 마. 거기 안 서!"


  아린은 잠시도 망설임 없이 경영관 입구로 들어갔다.


  도희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써서 발송 버튼을 눌렀다.

  '기획처장님,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IT공학관 학장실에는 화가 나 굳은 표정을 짓는 IT대학장이 팔짱을 껴고 앉아 있었다. 그 앞에 과잠바와 슬리퍼 차림의 준아가 영문을 모른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학장은 땅이 꺼지게 히유우- 한 숨을 쉬고는 준아를 쳐다보았다.

  "준아 학생, 내가 다 학생을 생각해서 하는 얘기인데 학점도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훌륭하고 학과 대표로 평판도 좋다는 것을 익히 다 듣고 있네."


  "아, 별말씀을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머, 어제 일도 본부로부터 전해 들었다네.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도."


  준아는 갑작스러운 누군가와의 만남 언급에 먼저 의심이 갔다.

  "네, 근데 왜 그러시는지.."


  준아의 방어적인 반응에 학장의 눈이 치켜 올라갔다.

  "그건 알 거 없고. 중요한 건 본부 측 사람과 연락하는 건 옳지 않아. 내가 다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올 거야."


  준아는 무슨 얘기인지 조금 더 들어봐야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당황스럽네요. 무엇인지 얘기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학장님을 믿을 수 있죠."


  학장은 엉덩이를 뒤로 빼 자리를 다시 고쳐 앉으며 목소리를 더 키웠다.

  "이거.. 말이 잘 안 통하는 친구군. 준아 군이 받고 있는 장학금. 기숙사 혜택, 학점, 심지어 주위 평판까지! 내가 장담하건대 학생이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야."


  준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이상한 놈들에게 잘못 걸렸다 싶었다. 준아의 경제적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등록금을 위해 장학금은 꼭 받아야만 했고 과외를 하며 기숙사 비용과 용돈을 충당하고 있었다. 학장 얘기대로 라면 극단적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

  준아는 자신도 모르게 어이가 없을 때 나오는 탄성이 터졌다.


  "일단, 알겠습니다.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행동을 잘할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급하게 일어나는 준아의 뒤통수에는 지켜볼 거라는 학장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말귀를 알아들은 건지, 쓰읍- 못 알아들은 건지. 일단 뭐 전달했으니.."


  학장실을 나선 준아는 곧장 IT대학 학생회실로 갔다. IT대학 학생회장 한재훈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 준아 왔냐. 꼴을 보니 어제 얼마나 늦게까지 논거야. 어제 그 연예인급 스타와는 잘 된 거니."


  "아.. 뭐, 쑥스럽네요."


  갑작스럽게 아린과의 어제 기억을 떠올리니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라 말을 돌렸다.


  "그보다 잠깐 시간 돼요? 형한테 할 얘기가 좀 있는데"


  재훈은 평소와 다르게 진지모드로 바뀐 준아가 어색했으나 짐작 가는 게 있는지 바로 자리 박차고 일어나 앞장 섰다.


  "그럼- 안 그래도 담배 한 대 피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옥상으로 올라가자!"


  IT대학 건물 엘리베이터 문은 꼭대기 12층에서 열렸다. 그들은 한 층 계단을 걸어서 옥상에 도착했다. 옥상 입구에 도달하자 운동장 건너편 저 멀리 인문대 옥상과 중앙도서관이 보였다. 중앙 도서관 대각선 아래쪽에는 어제의 사건이 일어났던 본관이 위치하고 있었다. 준아는 어제의 일들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대한 저택이자 아린의 집, '저기 어딘가에서 아린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래, 할 말이라는 건 뭐니? 갑자기 진지해지니까 되게 궁금하네."


  재훈은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여 준아에게 건넸다. 준아는 그것을 받아 길게 한 모금을 빨았다.


  "저번에 얘기했던 다음 선거요. IT대학 학생회장 선거요.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던 거 고민 좀 해 보았거든요."


  "아.. 그래? 그거였구나. 고민 좀 해 봤니? 내 밑에 군대 가는 놈들이 많아서 다음 대를 어떻게 꾸릴지 요즘 걱정이 많거든. 이번 축제에 네가 기획한 프로그램들이 대박 났잖아. 안 그래도 한 번 더 제안해야겠다 싶었거든."


  "네, 고민을 좀 해 봤는데 제가 꼭 하고 싶은 게 좀 생겨서요. 학과 대표를 해 보니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준아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가 재훈에게 향한 시선을 다시 운동장 쪽으로 돌렸다.  


  "저 한 번 도와 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럼, 당연하지! IT대학 기획국장 자리에 너만큼 적임자는 없어. 하하"


  준아는 천천히 고개를 두 번 저으며 말했다.


  "기획국장 말고요."


  "아.. 어! 너 설마 집행부장 생각하는 거?"


  준아는 말이 없이 재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저은 후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말했다.


  "학생회장. 형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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