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줄이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더 내 직업을 싫어한다는 것을.
내 직업은 작은 그릇인 내게 아주 버겁다는 것을.
일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눈앞에 닥쳐온 일들을 처리해내느라 급급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일하는 시간 외에 다른 시간을 갖게 되니, 내가 내 일을 얼마나 힘겨워하는지 점점 더 실감났다.
그래서 관상쟁이 아저씨의 "너의 직업은 너에게 딱 맞다"는 말에 그렇게 화가 났던 것 같다.
나는 정말로 집에 있는 시간이 아주 좋고 편안한데,
왜 나에게 자꾸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예전 드라마에 자주 나오던 클리세 장면 - 화병이 난 아줌마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앓아눕는 것 -처럼 며칠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무기력하게 보냈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 관상쟁이가 맞으면 언젠가는 일하고 싶어지겠지. 그런 날이 올 때까지는 나 하고 싶은 대로 지내볼테다' 이런 오기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도서관을 찾았다.
그런 마음으로 이런 책들을 빌렸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법>
우선 하기 싫은 일부터 멈춰라!
<50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늘을 산다>
50대를 위한 쿨한 언니의 갱년기 탈출 프로젝트!
제목부터 얼마나 멋진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내 바람대로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현실적인 나는 항상 '지금'과 '미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미래'의 잔고가 얼마 남지 않은 이제부터는 '지금'에 비중을 두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늘을 산다.
(가네코 유키코)
일단 믿어보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도 된다. 마음대로 하며 살아가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거창한 욕구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자그마한 욕구조차 당신은 지금까지 억눌러왔으니까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작은 욕구로 채워 나가보세요. ‘하고 싶고, 즐거우며, 좋아하는 일’로 말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괜찮다. ‘하고 싶은 일’을 우선시하면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갈 겁니다. 그 기적을 믿어보세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다거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싫은 것’, ‘계속 인내하는 것’을 그만두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 ‘더 이상 참지 않는 것’에 조금씩 도전해보세요. 그렇게 삶 속에서 ‘설렘’을 찾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로 ‘설레는 인생’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법
(고코로야 진노스케)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내게 저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다들 이런 식이다.
이제까지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냐,
너무 힘들면 쉬엄쉬엄 조금씩 일하면 되지 않냐,
돈이 궁해지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일하게 될 것이다,
지금에 와서 달리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냐, 그래도 하던 일이 제일 쉽지 않겠냐,
변호사 일이 싫으면 법관 임용 시험을 봐라,
등등.
마지막에 법관 임용 얘기는 우리 엄마가 올여름에 내게 한 말인데, 듣는 순간 너무 기가 막혀서 한동안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당사자 일방만을 대변하는 변호사 일도 버거운데, 양쪽 주장의 옳고 그름을 최종 판단하는 법관이 되라니요... 왈칵 짜증이 솟았지만, 그 동안 내가 엄마에게 나의 생각에 대해서 별로 얘기를 하지 않았구나,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모르는 것은 내 잘못이겠거니 생각하며 꾹 참았다.
이런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문장들을 찾으러 도서관에 간다.
듣고 싶지만 아무도 내게 해주지 않는 말들을 찾아서.
나 스스로에게 들려줄 좋은 말을 열심히 고른다.
자신이 편안한 상태라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말자.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 큰일 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설레고 신나게 살아갈 일을 찾아라. 그런 일은 반드시 있다.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자유가 있다.
그렇게 찾아낸 문장들에서 내 뜻대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자꾸 도서관에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