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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소공 May 06. 2024

프롤로그

상실감과 불안에 시달리는 딸을 위해...

딸에게 편지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됐거든요.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학생인 제 딸이 지난해 여름 자신은 "엄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이모, 그러니까 제 언니한테 저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고 했습니다. 


가장 핵심은 "엄마는 어릴 때 어떤 사람이었는가?"였습니다. 다행히 우리 언니가 저에 대해 아주 나쁜 말을 한 것 같지는 않더군요. ㅎㅎ


딸아이가 나중에 놀라웠다는 듯이 제게 말합니다. 


"엄마, 이모가 그러는데. 엄마가 어릴 때 거의 울지 않았다던데?"

"응, 남들 앞에서는 별로 운 기억이 없어!"

"나는 엄마가 울보인 줄 알았어. 아빠 죽고 엄마가 너무 많이 울어서"

"그거야 뭐...(말잇못)"

"그리고 엄마가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 말이 없었다며?"

"그랬지"


딸은 이런저런 얘기와 함께 "엄마가 어릴 때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았는지 몰랐다"면서 "엄마가 진짜 궁금하다"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엄마에게 관심 가져주는 딸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더군요. 도대체 아이에게 내 인생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해주어야 하나 고민도 됐습니다. 


그게 참, 어떤 계기가 있어 단편적인 얘기를 할 수는 있지만, 각 잡고 앉아 "엄마 인생은 이랬어!"라고 얘기하기는 쉽지가 않잖아요. 


그러다가 최근에 세 가지 책을 거의 동시에 발견하게 됐습니다. 


하나는 '광수 생각'으로 유명한 박광수 님의 최근 책 <엄마, 죽지 마>(RHK 출판), 또 하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 한성희 님이 쓴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란 책이었습니다(메이븐 출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정재영 님의 <삶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란 책이고요. 



박광수 님의 <엄마, 죽지 마>는 치매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절절히 담아낸 책이었지요. 


하지만 이 책에서 박광수 님은 자신이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에 대해 한탄하고 자책하더군요. 


돌이켜보니 저도 제 엄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딱히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고요.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게 됐지요. 


그러니 제 딸이 엄마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엄마 입장에서 뭐든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딸아이가 걸핏하면 제게 했던 "엄마, 죽지 마"란 말이 이 책 제목과 오버랩되면서 가슴을 찔러 왔습니다.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는 한성희 님이 최근에 펴낸 책이고요. 2013년에 이미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를 써서 20만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책은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에게 엄마가 주는 편지 형식이지만, 오랫동안 마음이 아픈 환자를 돌봐 온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식견도 녹아 있습니다. 


이들 책을 알게 되면서 저도 딸에게 편지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물론 저는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누구보다 많거든요. ^^


사실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면서 "아, 이 글은 우리 딸이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정재영 님이 <삶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에서 자녀에게 미리 마지막 편지를 써보라는 말이 큰 자극을 줬습니다. 


이 책에는 또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더 많이 사랑하지 않은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점이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제가 참 공감능력도 부족하고 무뚝뚝한 사람이라, 이 사랑표현을 제대로 못한 것 같더군요. 게다가 제가 한동안 길을 잃어, 아빠 잃은 아이의 상처와 불안조차 제대로 어루만져 주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두려움처럼, 제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일은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그걸 또 누가 알까요. 남편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예기치 않은 죽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테니, 저 또한 예외가 아니겠지요. 


만약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우리 아이는 무얼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가나'라고 생각하니 참 안타깝고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뭔가 버팀목도 되고, 등불도 될 만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딸아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빠를 잃고, 불안과 공포, 두려움을 껴안은 채 살고 있지요. 


특히 죽음에 대한 딸아이의 공포는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고요. 


때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게 달려와 펑펑 웁니다. 엄마가 죽는 꿈을 꿨다고 하면서요. 또 10분 이상 저와 이유 없이 연락이 안 된 어느 날도 "엄마에게 사고가 난 줄 알고 걱정했다"면서 펑펑 울더군요. 


그리고는 "엄마, 죽지 마"라고 말합니다. 


뇌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던 딸아이는 아빠가 없는 그 시간을 견뎌 내는 동안, 자신감이 완전히 바닥을 치면서, 대학을 가지 않겠단 말까지 했답니다. 물론 지금은 호주에서 공부 잘하고 있지만요. 


하지만 딸아이는 여전히 미래의 불안까지 가불로 끌어와 복리로 걱정하는 성향은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자신이 불안과 걱정이 많은 아이라는 점만 알아챈 상태죠. 


그래서 딸아이에게 편지글로 엄마의 마음을 전해 보려고요. 엄마의 인생 얘기도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조언도 해주는 그런 편지 말입니다. 글이 많아지면 책으로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면서요. 


가끔 제 앞에 펼쳐지는 어떤 우연들이 '정말 우연일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이 딱 필요로 하는 순간에 제 앞에 나타날 때 말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너무 피곤해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좀 덜하고 사세요!"란 글이 눈에 띄었듯이요. 


이번에 우연처럼 제 눈에 띄었던 저 책들도 어쩌면 제게 길을 알려주는 하나의 나침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제 무의식이나 우주의 어떤 힘이 끌어당겼을 수도 있고요. ^^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딸은 당분간 제 글을 보지 못하겠네요. 한국어가 서툴러서요. 엄마 글 읽고 싶으면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야겠습니다.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에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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