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원 vs 성시경
차 안에서 블루투스로 멜론 내 플레이 리스트에 있는 음악을 듣는데, 욱이는 옛날 노래들이라 자기가 아는 노래가 하나도 없다고 불평하더니 이리저리 노래를 찾았다. 그러다가 최성원의 '제주도 푸른 밤'이 나오자 이 노래는 안다며 반가워했다. 욱이는 들국화의 최성원을 모르지만 성시경이 리메이크 한 노래를 원곡으로 알고 있던 것이다. 잠시, 누구의 노래가 더 좋은 지에 관한 짧은 논쟁이 있었다. 욱이는 성시경의 노래가 훨씬 낫다고 했고 나는 성시경도 잘 부르지만 원곡의 멜랑콜리한 느낌이 더 좋다고 했다.
얘기는 성시경으로 이어져서, 내가 성시경이 가수로서도 인간적으로도 꽤 멋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했더니 욱이도 반색을 하며 맞다고 했다. 여기까지 했어야 했다. 욱이의 호응에 힘입어 나는 무리수를 던지고 말았다.
"아빠도 좀 멋있지 않냐?"
"아뇨, 하나도 안 멋있어요."
"그래도 멋있는 면도 있잖아."
"예전에 어릴 때는 아빠가 멋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에요. 특히, 이번에 함께 미국 와서 지내면서 아빠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아빠랑 살면서 엄마가 왜 힘들어했는지 이해하게 됐어요."
엄마 얘기에 난 웃음을 터트렸지만 내가 정말 같이 지내기 힘든 인간형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여기까지만 하고 나의 반성 모드로 들어갔으면 좋았는데 나는 반격을 한답시고 한발 더 나갔다.
"너도 알겠지만 너희 엄마랑 사는 것도 쉬운 일 아니야. 아빠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해."
"아, 예~훌륭하십니다."
글로 읽으면 심각한 대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욱이의 얘기에 시종 웃었다. 왜냐면, 첫째, 나는 내가 좀 멋있는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 이제 나는 아들에게 멋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쓰는 아빠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의 기준 또는 규범이 좀 강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나 자신의 코드가 확실한 편이다. 남들은 이런 나를 '고지식하다', '융통성이 없다', '외골수 같다', '고집이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듣기 좋은 말로 '모범생이다'라고 한다. 이런 나를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조금 불편한 경우가 있었겠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자신의 특성을 통제하여 잘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같이 지내는 가족들은 힘들었을 수도 있다. 가장 편한 가족에게 내 코드가 가장 확실히 드러날 테니까. 아내는 늘 말했다. '당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반복해서 얘기하면서 내 말을 잘 듣지 않아요.' 욱이도 항상 얘기했다. '아빠는 아빠의 생각을 제게 강요해요.'
남을 향한 이런 고지식함은 내적으로는 약간의 강박으로 작용한다. 나는 욱이가 서너 살 때부터 아빠가 늦잠 자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내가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지,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욱이도 그렇게 성장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멋있는 아빠가 되기 위해 시간을 쪼개 쓰며 열심히 살아왔다. 아내도 욱이도 아빠가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아빠'가 '내가 좋아하는 아빠'가 될 거라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내도 성장기의 욱이도 아빠에 대한 반감을 자주 표현했다. 내 기준이 너무 높고 강해서 옆의 사람들이 답답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한 십 년만 더 일찍 깨달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물론 예전부터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내가 얼마나 힘들게,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이런 아빠를 비난하다니, 하며 오히려 서운해했다. 이제는 더 이상 멋있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멋있는 모습이 욱이에겐 별로 멋있지 않다. 대신 만만한 아빠가 되고 싶다. 허점도 많고 실수를 할 지라도 따뜻해서 언제나 의지가 되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
욱이와의 미국 생활이 이제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 아빠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 이상 멋있게 보일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나는 더 이상 총명하고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던 빠릿빠릿한 예전의 내가 아니다. '청년 다방'을 '청년 싸롱'으로, '캡틴 아메리카'를 '아메리칸 솔저'로 잘 못 말해서 아들의 구박을 받는 그런 아빠다.
멋있는 아빠는 이제 없다. 만만한 아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