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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Dec 24. 2021

인간군상과 공동체

존 스타인벡의 Cannery Row (원서로 읽기)

반년 간의 캘리포니아 생활 중에는 국내 소설을 잠시 접어두고 미국 작가의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영어 원서로. 무모한 욕심인 것을 알지만 미국에 있으니 도전해 볼 만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자칭 문학도로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못 읽어보았다는 것은 면이 안 서는 일이다. 


헤밍웨이가 제일 먼저, 다음으로 마크 트웨인이 떠올랐다. 헌책방과 지역 도서관에 있는 Friendship Bookstore (주민들이 기부한 책을 정리하여 싼 값에 파는 헌책방)을 뒤져서 이 두 작가의 소설을 샀다. 그러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1902~1968)이 북부 캘리포니아 살리나스(Salinas)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도 사 모았다. 


그렇게 사 모은 책이 책상 위에 십여 권 탑으로 쌓여갔지만 읽는 것은 너무 느렸다. 헤밍웨이 책 한 권 읽기도 벅찼다. 마크 트웨인은 책장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헤밍웨이 중단편을 몇 편 읽고 나서 드디어 캘리포니아 출신 작가 존 스타인벡으로 넘어갔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바닷가 도시 몬테레이(Monterey)를 배경으로 한 소설, 통조림 골목(Cannery Row)이 내가 만난 첫 존 스타인벡 소설이다.


작품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한 번 얘기했듯이, "창녀들, 포주들, 노름꾼들, 그리고 개자식들이다," 이 말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할 수 있다. 그가 다른 구멍으로 들여다본다면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성자들, 천사들, 순교자들 그리고 성스러운 사람들" 그는 이 말로 같은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Its inhabitants are, as the man once said, "whores, pimps, gamblers, and sons of bitches," by which he meant Everybody. Had the man looked through another peephole he might have said, "Saints and angels and martyrs and holy men," and he would have meant the same thing.


이 작품에서 작가는 바닷가 작은 항구 도시에서 밑바닥 인생들을 중심으로 인간 군상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이 사는 모습은 비참하기도 하고 때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냥 보면 온갖 잡놈(또는 잡년)들이다. 하지만 작가가 위의 서문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선입견이라는 것을 한 꺼풀 벗겨내고 그들을 삶을 들여다본다면, 그 안에서의 선한 의지와 공동체를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이야기가 살아서 기어올라 오도록 놔두는 방식으로 이 작품을 쓰겠다고 했다(And perhaps that might be the way to write this book-to open the page and to let the stories crawl in by themselves). 캐릭터들이 살아서 자기 얘기를 하는 소설, 그게 진정한 좋은 소설이다. 


철저히 돈을 중심으로 사는 중국계 리총(Lee Chong)과 그의 식료품 가게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 작품은, 생물 실험실을 운영하며 지역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의사(Doc), 간이 숙소와 식당이었던 오래된 건물(Palace Flophouse and Grill)에 사는 건달들인 맥과 청년들(Mack and the boys), 아가씨들이 있는 술집(whorehouse)인 Bear Flag의 주인인 도라(Dora)와 아가씨들, 이상한 중국인(Chinaman), 화가 헨리(Henry)를 등장시켜서 이들이 밑바닥 인생을 사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 작품의 주된 스토리는 맥과 청년들이 의사(Doc)를 위해 파티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에피소드이다. 초반부에는 어렵게만 느껴지던 소설이 이 부분에 오면 흥미진진해지며 빨려 들게 된다. 돈도 없는 이들이 의사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겠다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참담한 실패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다. 이들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잡은 개구리들이 결국 달아나서 온 마을을 돌아다니는 장면은 이 소동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덜떨어진 인물들을 애정의 시선으로 깊게 들여다본다. 이들은 타고난 환경이 좋지 못했을 뿐이고 가난해서 싸우기도 하고 실수할 뿐이지 결코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결말부에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의사를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파티를 열어주는 장면에 이르면 따뜻한 공동체의 온기마저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작품으로 존 스타인벡을 만났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 진주(The Pearl)> 같은 그의 다른 작품도 구했다. 이 작품들을 다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읽고 싶다. 나는 존 스타인벡을 더 만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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