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윤 씨 고택과 천일식당
30년 후에 가 본 남도답사일번지
강진 백련사를 떠나 해남으로 향한다. 책에서도 해남은 많은 작가들을 배출한 예향으로 소개된다. '혁명가적 지사적 오롯함의 김남주, 80년대식 감성주의 황지우'의 고향이며 얼마 전 작고하신 김지하 시인과 소설가 황석영이 80년대 초에 머무르며 문학활동을 한 곳이 바로 해남이라고 한다.
해남 윤 씨의 고택을 찾았다. 책에 소개된 대로 조선후기의 가사문학의 한 획을 그은 고산 윤선도와 선비화의 대가 공재 윤두서 등이 살았던 고택이다. 고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푸른 잔디밭과 단풍나무가 잘 정비된 느낌을 준다.
책에 의하면, 해남읍에서 대흥사 쪽으로 가면 나오는 너른 들판이 삼산벌인데 논밭은 원래 해남 정 씨의 소유였으나 자손균분 상속을 통해 나누어 주었고 처갓집 땅을 나눠 받은 어초은 윤효정은 일찍부터 장자상속을 윤 씨 집안의 원칙으로 하여 자산을 집중시켜 불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재산을 바탕으로 인물을 많이 배출했는데 윤효정의 4대손으로 고산 윤선도가 윤선도의 증손대에 공재 윤두서가 이 집안에서 났다. 윤선도가 정치적으로 남인이어서 노론이 주도하는 18,19세기의 정국에서 소외되었지만 재산형성만큼은 장자상속의 원칙을 통해 이어져 왔다고 한다.
윤선도는 나중에 보길도에서 유유자적한 삶(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불우한 삶이 아니다!)을 살게 된다. 보길도에 남아 있는 세연정, 곡우당, 동천석실을 얼마 전에 가보았는데 이 유적들 또한 보길도의 왕처럼 지냈던 윤선도와 윤 씨 집안의 재력을 짐작케 한다.
아 그런데, 해남 윤 씨 고택은 하필 내가 갔던 4월에 보수 공사 중이었다.(6월 초까지라고 되어 있었으니 글을 쓰는 지금쯤은 다시 개방했을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없었고 이 집의 사랑채인 녹우당 또한 볼 수 없었다. 책에서 유교수님이 망측스러움이 촌티의 극치를 달린다고 비판한 유물전시관과 관리실도 볼 수 없었다. 추측컨대 유교수님이 책에서 비판한 시설들은 이후 지자체에서 당연히 보완을 했으리라. 이곳도 유물전시관 대신에 그 이후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는 한옥형의 고산 윤선도 박물관이 있었는데 이 또한 문을 닫고 있었다.
고산 윤선도 박물관에는 책에도 소개된 국보 240호 공재 윤두서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을 것이다. 당시 윤교수님은 직전에 발생한 미인도(공제 윤두서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다고 한다) 도난사건의 여파로 진품이 아닌 사진 복제품을 전시해 놓은 것을 해괴한 처사라고 하며 안타까워했었다. 다음에 오면 이 작품도 꼭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유교수님이 좋아해서 복제품 족자를 연구실에 걸어놓았다는 윤두서의 <동국여지지도>도 박물관에 있을 텐데 이 지도는 공재 윤두서가 선비화가일 뿐만 아니라 실학에 보인 관심을 나타내준다고 하셨다.
유교수님은 책에서 이 유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면 얼마나 빛나는 대접을 받았을까 하며 사회환원을 얘기하셨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검색을 해보니 자손으로 보이는 윤형식 씨 소장이나 해남 윤 씨 종가 녹우당으로 소장처가 되어 있다. 사회환원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인 것이다.
아쉬웠지만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집 앞의 거대한 은행나무를 보고 집 주위를 한 바퀴 돌다 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걷다가 닫힌 문틈으로 보이는 사당 같은 집을 들여다본 게 전부였다. 내게 조만간 다시 와 볼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해남 윤 씨 고택을 나섰다. 길 맞은편에 백련재 문학의 집이라는 이정표가 보여서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 보았다. 작가들의 창작공간으로 제공되는 문학의 집은 지자체 별로 하나씩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해남은 예로부터 문학의 고장이라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옥 기와집 두 채를 잘 지어놓은 문학의 집에는 댓돌 위에 신발들이 한 켤레씩 놓여있어 작가들이 지금도 열심히 글을 쓰고 있겠구나 싶었다. 김남주와 황지우를 배출한 고장의 후예로서 치열하게 작은 방에서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을 작가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문학의 집 아래쪽에는 땅끝순례문학관도 있었는데 해남의 문인들과 그 작품을 소개하는 문학관이라고 한다. 이 또한 아쉽게도 문을 닫아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이래저래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답사를 마치고 유교수님이 소개한 조선한정식의 3대 맛집 중 하나인 해남의 천일식당을 찾아갔다. 지난번 강진 해태식당에서 1인 식사가 안된다고 해서 쓰라린 좌절을 맛보았던 터라 미리 전화를 드렸더니 사장님이 와서 조금 기다려보라고 했다. 희망을 품고 달려가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드디어 이 집의 대표메뉴인 떡갈비 정식을 먹을 수 있었다. 천일식당은 해남 읍내에 있었는데 가운데에 마당이 있는 구조로 되어있고 화초가 많아 옛스러운 정취가 있었다. 다들 여러 명이 일행으로 와서 밥을 먹는데 혼자 한 상을 받아놓고 먹으니 좀 뻘쭘하기는 했다. 그래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소개한 3대 한정식집 중 한 곳을 드디어 와 보게 된 것에 만족했다. 떡갈비와 생선구이를 비롯해서 반찬들이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맛으로 식당 안은 많은 손님들로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