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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Nov 23. 2021

(07. 어떤 세월) 아무리 울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세월호 7주기 뉴스를 보고


어떤 세월


나만의 상처가 깊듯이

당신의 아픔도 참 오래다

오래도 슬펐다


노오란 희망은

연약한 리본처럼

쉽게 풀어지고


약이 된다던 시간은

냉담한 시선처럼

얼어붙어 멈췄다


지겹지도 않게

그만할 때도 되지 않게


사무침은 물 밀듯이

억울함은 불 붙듯이

못다 한 성장을

가슴속에서 하고 만다


내가 놓아줄 수 없는 것을

누군 세월에 흘려보내라 한다


어떤 세월은

흐르지 않고


어떤 슬픔은

아무리 울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출퇴근길에 광화문 광장을 수시로 지나가면서도 몰랐다. 그날이 세월호 7주기였다는 것을. 2021년 4월 16일,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9시 뉴스를 보기로 했다. 왠지 뉴스를 보며 '세상 잘~ 돌아간다!'며 성질을 내고 싶은 날 중 하루였던 것 같다.


 뉴스에는 세월호 사건 유가족 인터뷰가 나왔다. 한 아저씨가 피켓을 들고 눈이 시뻘거진 채로 간신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유가족분들께 미안한 말이지만 사건 이후 몇 년이 지나고 나서는 그 일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 얼른 진상규명을 해야 하지 않냐느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냐느니 하는 의견도 없었다. 정치적인 이슈로 번졌다는 편견이 생긴 이후부터는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그저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마다 노랗게 불이 켜진 천막을 보며 '그런 일이 있었지'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울먹인 이유는 그날이 상기돼서도, 무관심에 대한 미안함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아직까지도 울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한두 해도 아니고 7년씩이나.


 누구나 가슴속에 참을 수 없는 슬픔 하나는 안고 살아간다. 상처로 남은 경험이든, 잊히지 않는 기억이든 이 긴 생을 스크래치 하나 없이 보낼 방법은 없으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을 잃은 상처에 비견될 순 없겠지만 내게도 아직 아물지 않은, 아주 오래된 상처가 있다.


 가끔 시간은 잔인하게도 약이 아니라 '망치나 몽둥이'가 되는 것 같다. 상처를 잊기보다는 곱씹으며 더 깊게 가슴속에 각인시킨다. 나도 술에 거나하게 취했을 때나, 모처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때면 그 상처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친한 친구에게는 여러 번 했다. 6년을 만난 남자 친구에게는 수백 번을 했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둘 중 하나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정말 힘들었겠다. 그래도 이제는 많이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다." 이게 아니면 "알겠어, 이제 그만 좀 해".


 위로를 받든 핀잔을 받든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나면 어쩐지 허무해진다. 애초에 어떤 반응도 상처를 아물게 할 순 없었다. 대화로써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그걸 알았다고 해서 내가 하소연을 그만두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가끔씩 떠올리고, 누군가를 붙잡고 얘기하고, 다시 허무에 빠지는 도돌이표를 반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웬 호언장담을 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을 옹호하고 싶기 때문도, 내 슬픔을 훈장처럼 내세우며 살고 싶어서도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저 세상 사람 모두가 인간이 망각의 동물임에 감사하며 가슴 한편에 저만의 슬픔을 묻어두고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누군가 아파할 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는 존중이 아닐까. 이 세상 누구도 타인의 슬픔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권리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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