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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Dec 02. 2022

[새벽 버스] 유독 출근하기 힘든 날

직장인 공감 100% 도전

새벽 버스


해소될 리 없는 답답함이 지긋해

목을 꺾어 차창에 갖다 대


이마로 전해지는 냉기와 진동

이동식 물리치료 뭐 그런 건가


작은 입김에도 쉽게 뿌예지는 게 맘에 들어


그렇게 눈앞이 흐린 걸 즐기다가

돌연 선명한 걸 발견했어


천천히 내리는, 사선으로 빗발치는

어느 날엔 꾸역꾸역 몸체를 밀어붙였을


네 전신에 빼곡하게 새겨진 빗 자국


너는 너무 투명해서

온갖 슬픔을 무늬로 두고도

그대로의 풍경을 볼 수 있지


난 오직 모든 게 흐렸으면 했는데.


안에서 백 번을 문질러도 선명한 자국

아무리 눈물이 나도 왜 세상은 멈추질 않는가


그래도 매일을 꾸역꾸역 버스에 몸을 욱여넣어

차창을 보는 이들에게 말하네

슬퍼도 사는 게 맞다고

그래도 사는 게 맞다고




질주와 돌파가 필요한 날이 있다. 상황이 억셀수록 그렇다. 게임으로 치면 탱커처럼 살아야 한다. 두툼한 체력바를 방패로 슬슬 상황을 보다가, 이때다 싶을 때 한 번에 진도를 빼야 한다. 묵은 숙제들을 단번에 처리할 힘이 있을 때, 얼마나 속이 후련한가.

버티기에 재능이 없는 딜러들은 판도 모르고 열심히 살겠다고 달려들다가 죽고  죽는다. 필살기가  차면  번은 얻어걸리겠지. 불만족한 어제를 살고도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버스를 타는 직장인 같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손이 어는지도 모르고 혼자서 메모장에 시나 쓰는 지금도 그렇다.

연차를 쓰고 싶은 날이면 피차 곤란하다. 대부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컨디션이 눈에 띄게 안 좋은 날이 그러하다. 회사 지침은 유연하나 아픈 날 혼자서 집에 있긴 싫다. 짝꿍은 워낙에 성실해서 같이 쉴 생각이 없다. 12.02 연차, 누군가 무심하게 올려둔 카톡이 야속하다. 짝꿍의 상황은 어련할까. 아픈데도 자기 때문에 쉬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미련해 보일지. 공황장애인 것도 싫은데, '제발 혼자좀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 건 더 스트레스다. 연차도 휴식도 기분 좋게 하고 싶지 하루 종일 서로를 원망하고 싶진 않다. 서로를 지긋해하며 버스에서 각자 다른 일을 한다.

무지 무리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버스에 기대어 이런저런 공상을 하니까 회사 앞에 금방 도착했다. 담배를 한 대 피고 습관처럼 한대 더 피려는데 빈 곽이다. 담배도 없네. 담배도 없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빈 곽을 휴지통에 덩크슛하며 연거푸 말하다가 가방을 뒤져본다. 언젠가 넣어놓은 새 담뱃갑이 하나 들어있다. 내가 졌다. 그래도 살아가라고 밀어부친 건, 밀어부칠 수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어디에 하소연할 새도 없이, 꿈꾸고 일어난 것처럼 다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다. 이 기분을 표현하려고 지난날의 스트레스를 헤집다가 괜히 '스트레스 무새'가 된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힘들다'라는 단어가 잡혔다. 그냥 힘들다고 하면 되는 걸, 말하면 지는 것처럼 뭘 그리 돌려 돌려 지냈던가.


그래도, 힘들어도 출근했으니 일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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