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왜 이러고 살아요?
아주 생생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저는 대기업에 다닙니다. 4년 차입니다. 정말로 대기업입니다. 연봉 7000만 원을 받습니다. 세금을 떼면 6300만 원 정도 되려나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취업 준비를 하느라 4000만 원만 받아도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두 배 가까이 되는 받고 있지요. 금융권에 있습니다. 앞서 사용한 표현에 연봉으로 레벨을 나누는 듯한 뉘앙스가 있습니다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인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시기가 있었고, 연고대 학생들도 연봉 4000이 채 안 되는 기업에 지원한다고 들었던 그 시기가 떠오릅니다.
한국 청년은 몇 명이나 될까요? 실제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시점을 국제나이 23살 정도라고 잡고, 마흔 살부터는 청년이라 부르기 좀 민망하니 36세로 끊어보겠습니다. 행정안전부 공식 통계에 의하면 920만 명입니다. 거의 천만에 가까운 숫자죠. 천만이라니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다 합치면 천만이니 내가 매일 스치는 이 사람들이 모두 청년이라고 치면 서울을 꽉 채울만한 인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요즘 좀 옅어졌다고 하긴 합니다만,
왜 그렇게 나누고 싶어 할까요? 다니는 회사로, 연봉으로, 졸업한 학교로, 가지고 있는 차로요. 상당히 물질주의적이고 차별적입니다. 명문대생들 올려쳐주는 문화가 실로 엄청납니다.
그중에서도 공대생, 상경계열이 아니면 쓸모없는 학과를 나왔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청년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 나이로 만 서른 하나입니다. 손흥민과 동갑입니다. 네이마르와 동갑입니다. 제가 축구는 잘 못하는데 스포츠는 좋아해서 보는 건 참 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손흥민 선수와 네이마르를 나온 대학으로 평가하나요? 네이마르는 연고대를 나오지 못했는데요. 손흥민 선수는 대학에 입학하지도 않았고 삼성, 현대, SK를 다니지 않습니다.
우린 스스로 특별하다고 지칭하길 포기하고, 야 너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수긍해,라고 서로를 다단계 종교처럼 세뇌시키며, 20대에 꺾이고 30대에 한번 더 꺾여서 고개 숙이고 프레임이 정해준 대로 삽니다.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세계가 값싼 항공료로 수없는 경우로 이어져도 우리는 아직도 그러고 삽니다. 부모 세대의 문화가 그대로 전이된 모습입니다. 누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아직 동심을 가진 어린애들이라고 치면 이것은 기성세대의 역작이고, 그들도 피해자라고 치면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제가 바라는 건 그렇다는 걸 일단, 부디, 확실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끌어내리자는 게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고 저도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 좋습니다. 대화가 즐겁거든요. 그런데, 왜 배관공은 덜 멋이고 바리스타를 하려고 해도 대학은 가야 할 것 같고, 대학 안 갔다는 게 놀라운 사실이어서 뉴스거리가 되는 세상에 살아야 하나요?
수긍하고 살기라도 하면 인간적으로 대우나 받으면 좋겠는데 우리나라 직장 문화가 또 만만치가 않습니다. 대뜸 초면에 반말하는 차 부장들, 윗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는 기회주의자들이 판을 칩니다. 저는 2019년도에 어떤 중견기업 제조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회식이 끝나고 술 취한 차장에게 전화기 너머 쌍욕을 들었습니다. 그런 게 일상인 회사였습니다. 대학을 이제 졸업한 남자애한테 왜 그랬을까요. 회사에 절여져서 정신이 나갔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 한 사건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요, 아주 비슷하고 고약한 일을 여러 번 겪게 됩니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뺨을 후려갈겨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게 한국이고 진실입니다.
대체 왜 이러고들 사는지, 일산 목동 분당 강남 또 어디 어디 교육열이 실로 대단한 지역에서 아이들이, 대체 부모와 학교와 학원과 사회와, 그러니까 어른들에게 무슨 세뇌를 받으며 자랐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써보겠습니다.
제가 벌써 부모님이 저를 낳아주셨던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생생하게, 한국에서 좋다고 말하는 것들이 전혀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