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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에도 동파 걱정뿐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by 김효원 Feb 03. 2025

무소유를 설파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이 오늘따라 가슴에 와서 꽂힌다. 법정스님은 난초를 소유하게 되면서 집착과 욕심으로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난초를 처분한 후 자유를 느끼게 되면서 무소유의 홀가분함을 대중들에게 전파했다.

시골집이 있는 강원도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 사진=김효원시골집이 있는 강원도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 사진=김효원

소유하면 걱정하게 되고 걱정하면 힘이 든다. 과연 무소유가 답이다.


시골집이 요즘 내 뇌 구조도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단어다. 시골집은 흔히 말하는 '세컨 하우스'다. 그 말인즉슨 생존을 위해 거주하는 집이 아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 시골집을 가지게 되니 계절별로 크기와 무늬가 다른 걱정들이 밀려들어온다.


일 년을 크게 두 토막으로 나눠보면 여름은 습기 걱정, 겨울은 동파 걱정이다. 둘 다 물과 관련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름철 습기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물먹는 하마를 수십 개 배치해 놓아도 화장실, 싱크대에서 피어나는 곰팡이를 막을 수 없다. 실내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수시로 문을 열어 환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5도 2촌이다 보니 환기를 제때 하지 못해 곰팡이에게 습격당하고 만다.


세컨하우스의 습기를 잡기 위해 제습기를 24시간, 여름 내내 돌린다는 분도 있다. 쉼 없이 제습기를 돌리다가 불이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제습기를 여름 내내 돌리는 방법은 시도하지 않았다. 만약 나중에 집을 짓게 된다면 자동환기 시스템을 구축해 언제 어디서든 제어할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동파 걱정은 걱정이고 눈이 오면 일단 눈오리를 만들며 놀아야 한다. 사진=김효원동파 걱정은 걱정이고 눈이 오면 일단 눈오리를 만들며 놀아야 한다. 사진=김효원

겨울의 동파 걱정에 비하면 여름철 습기 걱정은 아주 작고 사소하고 귀여운 걱정이다. 동파는 습기와는 비교가 안 되게 무시무시한 뒷감당이 필요하다.


일단 동파가 되면 얼어 터진다. 수도와 보일러가 얼어 터지는 주인공인데 둘 다 심각한 후폭풍을 가지고 온다.


수도가 얼어터지면 물이 철철철 넘쳐흐른다. 실내에서 터진다면 집안이 수영장이 되고 집 밖에서 터진다면 마당이 스케이트장이 된다.


매일 거주하는 중 동파를 만난다면 바로 처리할 수 있지만, 2촌러에게는 즉각 대응이 어렵다. 특히 농사철이 아닌 농한기는 5도 2촌이 아니라 12도 2촌, 19도 2촌이기 때문에 동파를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몇 날 며칠 물이 쏟아진대도 알 길이 없다. 시골집에 가서 얼음폭포를 만나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


보일러가 얼어 터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보일러 본체 부근이 얼었다면 드라이어나 뜨거운 물 등으로 녹여본다지만, 방바닥에 깔려있는 고무호스가 언다면 꼼짝없이 방바닥을 뜯어내야 한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춥지 않았으면 싶으면서도 눈오리가 오래오래 녹지 않았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 사진=김효원춥지 않았으면 싶으면서도 눈오리가 오래오래 녹지 않았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 사진=김효원

동파에 대비해 보일러와 수도를 담요로 꽁꽁 감싸주고, 일정 온도 이하로 떨어지면 보일러가 알아서 가동되도록 설정해 놓았다. 또한 화장실과 주방 수도를 틀어놓아 물이 졸졸졸 흐르게 했다. 그리하여 나의 시골집은 겨우내 보일러와 수도를 매일 돌리며 동파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다.


아깝지 않냐고? 물론 아깝다. 그러나 보일러를 돌리고 수돗물을 틀어놓는 것은 나중에 동파돼 대공사를 해야 하는 것에 비하면 저렴한 지출이다.


수도와 보일러가 동파되지 않을 수준으로 대비해 놓았다지만, 강원도의 혹한에 잘 견뎌낼지 아닐지 알 수가 없어 매일 강원도 날씨를 들여다보며 안절부절이다.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됐으니 이제 좀 안심해도 되려나 했는데, 어쩐지 날씨는 더 추워졌다.


날씨앱을 열었더니 "오늘 밤에는 영하 16도까지 힘껏 내려가보겠어요"라고 친절하게 예보해 준다.


나의 수도와 보일러가 힘을 내 동파의 습격을 물리쳐주길, 멀리서 응원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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