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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블랙 Mar 16. 2024

습작3

1부 : 스무살

윤정을 처음 본 건 우연이였다.


편의점 알바를 하기 전, 그러니까 3월에 처음 개강을 하고 빈 공강시간에 벤치 등지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신입생이세요?”

“네.. 그런데요?

“아.. 다름이 아니고, 혹시 동아리 가입한데 있어요?”

“동.. 동아리요? 아니요? “

“아 잘됐네~ 혹시 점심 먹었어요? “

“예…? 아뇨, 아직..”

“따라와요, 원래 신입생들은 3월에 밥 먹을 때 자기 돈 쓰는 거 아니에요.”


뜬금없이 등장해서 나에게 말을 거는 이 여자. 동아리를 물어보더니, 갑자기 밥을 먹었냐니, 따라오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뭐라 대꾸도 할 새도 없이 그녀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고, 하는 수 없이 기현은 그녀에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잔디를 지나 허름해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한 뒤, 그녀는 이곳을 <중앙동아리회관>이라고 소개했다.


“과마다 동아리도 있는데, 이런 중앙동아리들은 과에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양해서 좋아요”라며 덧붙였다.

“지금 저 데려가시는 데가 그럼 동아리예요? “

“맞아요. 동방 가고 있어요. 가서 누가 있는지 보고 같이 점심 먹어요”

“뭐 하는 덴데요?”

“밴드예요. 재즈밴드”


‘재즈? 재즈가 뭐지? 스타벅스에 나오는 노래들인가? 아니 나는 악기를 해본 적도 없는데..’

볼멘 생각을 하며 그녀를 따라 복도를 지나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들어와 본 중앙동아리회관(줄여서 중동이라고 부른다)은 신기한 곳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취미가 있고, 그것들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놀라웠다. 그와 동시에 기현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라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기현을 1층으로 데려갔다. 한 층씩 내려갈수록 희미하게 들려왔던 악기소리들이 점점 커졌다. 1층은 그렇게 큰 소리가 나는 동아리들을 모아놓은 공간인 듯했다. 어떤 방에서는 합창소리가, 어떤 방에서는 전자기타 소리가 지잉지잉거렸고, 옆방에선 장구소리가 났다. 마침내 그녀와 기현은 1층 113호에 도착했다. 문 앞에는 <Blue Train>이란 이름이 크게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는 이 밴드에서 직접 공연을 했던 사진들, 포스터들이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끼익-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

“오빠들 잼 하고 계셨어요?”

“…. 원, 투, 원투쓰리“


그녀가 들어온 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동아리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본인들끼리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고, 드럼세트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구호에 맞춰 연주를 시작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음악이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멜로디와 구성이었다. 합주를 하더니 갑자기 악기마다 독주를 하더니 다시 합주를 하다가 드럼과 피아노가 약속이라도 한 듯 번갈아가며 연주를 하고 그리고 다시 합주를 하다가 연주가 끝나버렸다. 기현은 내가 도대체 뭘 본거지 하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했다. 음악이 끝나서야 연주를 하던 그들은 시선을 문쪽으로 돌리었다.


“어 윤정이 왔네”

“아니 선배들, 아무리 집중하고 있어도 인사는 좀 받아줘요! 내가 신입생도 데려왔는데..”

“아.. 미안미안.. 인사하는 거 못 들었다. 너도 알잖아 정기공연 전에 더 맞춰봐야 되는 거.”

“알겠어요, 선배들 밥 먹었어요? “

“아니.. 뭐 같이 시켜 먹을래?”

“네. 그리고 여기 신입생도 밥 좀 사주세요”


그들은 기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름이 뭐예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입학한 경영학과 홍기현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다른 동아리는 가봤어요?”

“아뇨.. 여기가 처음이에요”

“아 그럼 다행이네(웃음). 다른 동아리들은 신입생이 동아리방에 오면 엄청 환대해 주거든, 그러다가 우리 동방에 오면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냐면서 그냥 가버리더라고. 기현 씨는 다른 데 가보지 말고 그냥 우리 동아리가입해요. “


‘이렇게 쉬운 건가?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기현은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멀뚱거렸다.


“밥 안 먹었지, 우리 거의 매일 시켜 먹는 제육덮밥집이 있는데 같이 먹을래요?”

“네..”

“오늘은 처음 온 거니까 저희가 살게요.”

그러면서 그는 연주를 한 친구들에게 “3천 원씩 엔빵 하자”며 그냥 그렇게 결정해 버렸다.


낯선 사람들.. 낯선 공간과 낯선 음악.. 동아리활동은 생각도 못해본 기현은 갑자기 후루룩 재즈밴드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쩐지 소속감이 생겨서 든든했다. 그리고 나를 여기로 이끈 그녀에 대한 궁금함도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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