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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31. 2020

우아한 할머니

몸의 계절


봄날의 싱그러움과 여름날의 화창함도 아름답지만, 낙엽 밟는 계절은 눈부심의 절정을 보여준다. 깊은 하늘과 오묘한 빛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시선을 매혹하고 겨울 냄새도 풍겨온다. 나는 계절의 거짓 없고 부지런한 흐름에 경의를 표한다. 지금 나의 계절은 푸르른 여름쯤일까? 남편과 나는 산책을 하며 나이 들어감에 대해, 가을과 겨울의 삶에 대해 대화 나눈다. 우리는 곧 생각에 물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습관 낙엽이 떨어진 가을날의 몸을 껴안으며 살아가겠지.


바삭 바삭 낙엽을 밟는 느낌은 참 좋다.


몸의 계절 (자작시)


흙을 뚫고 올라오는 싱그러움

보드라운 앳된 생명

봄날의 몸


촘촘한 푸릇함

힘 있게 손발을 뻗은

여름날의 몸


생각에 물든 얼굴

습관 낙엽이 겹겹이 쌓인

가을날의 몸


소복소복 내린 눈길

걸어온 발자국을 지울 수 없는

겨울날의 몸


어떻게 물을 들일까

무엇을 쌓아 올릴까

나는 오늘

여름의 몸을 입고

가을 몸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젊음을 붙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꿈꾸는 자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 같은 말들은 용기를 주는 듯 하지만 결국 늙음을 피해야 하는 상태로 표현하기 때문에 공허하다. 튼튼한 아이, 건강한 청년, 부자 아저씨 그 누구도 노화를 거스를 수 없다. 더군다나 평균 수명이 80이 넘은 요즘, 이삼 십대의 파릇한 시절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로 살아갈 날이 더 길어졌다. 나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늙음을 좋지도 나쁘지도, 멋지지도 추하지도 않은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매끄러운 피부와 꽤 괜찮은 기억력, 팔 다리의 에너지. 이런 것들이 사라진 후의 나를 상상해본다. 젊음 후에도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것,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그 가치들이 내가 진짜 누구인지 알려줄 것이다. 젊음의 화려한 가면이 벗겨졌을 때, 나의 주름진 얼굴에 남아있는 모습이 후회스럽지 않도록 이 여름날을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엄마와 호텔 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신 겨울날이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중 장년, 노부부가 많았는데 털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털 코트, 명품 가방이 가득한 공간에서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예전이야 동물의 털과 가죽이 보온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아직까지 꼭 모피로 부와 무지를 자랑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털과 가죽들은 본래 누구의 것이었을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벌의 모피 코트를 위해 30마리 이상의 밍크, 10마리 이상의 라쿤이 산 채로 털 가죽이 벗겨진다고 한다(죽은 후에 털을 벗기면 뻣뻣하고 윤기가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말 그대로 피와 고통으로 만들어진 제품인 것이다. 진지한 상상 한 번 만으로 구입과 사용이 꺼려진다. 우아함은 어디서 오는가? 적어도 가죽 가방이나 털 코트 따위에서 오는 것 같지는 않다.


반면 유난히 맑은 인상의 어르신들을 마주할 때면 희망이 새록새록 차오른다. 주름이 가리지 못한 그들의 총명한 눈빛과 마알간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비밀을 캐고 싶은 나의 호기심이 마구 발동한다. “그런 얼굴빛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 어르신, 어떤 삶을 사셨나요?” 직접 여쭤보지는 못했지만 찬찬히 그들의 몸에 밴 관대함, 눈빛에 깃든 친절함을 관찰한다. 빛나는 보석이나 화려한 옷을 걸치지 않았음에도 단정한 태도에서 풍겨 나오는 우아함을 느낄 수 있다.


존경하는 메리 올리버 선생님처럼 나이들고 싶다.





‘관대하다’라는 것은 무엇을 준다는 뜻이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약자에게, 나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주는 것이다. 당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머리를 굴리는 나인데, 모르는 존재들과 나눈 다는 것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 이전에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움켜진 두 손의 힘을 조금 풀어보는 것부터 연습해본다.


‘우아하다’ ‘Graceful’은 부드럽고 절제된 형태의 모습 또는 움직임을 뜻하는데 특히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럴 수 있음을 나타낸다. 즉 우아한 부, 우아한 젊음, 우아한 건강은 모순적이다. 우아함은 표면에 드러난 모습이나 행동의 파편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속에서 흘러나오는 말, 생각, 눈빛의 연속성이다. 작은 노력과 인내가 겹겹이 쌓여 어느 순간 몸에 배어버린 배려와 절제 속에서 우아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몸에 밴 관대함과 태도에서 느껴지는 노년의 우아함을 감히 탐내본다. 어쩌면 더 많이 행하는 것이 아닌, 조금 더 포기하고 내려놓음에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는다. 생명과 맞바꾼 털, 가죽으로 치장한 화려함이 아니라, 단정한 면 티와 에코백만으로도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자의 세련됨을 배우고 싶다. 요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나누는 친절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가르치기보다는 읽기와 쓰기를 좋아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갖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표현하는 할머니가 아닌, 조금씩 절제하고 분별력 있게 내려놓을 수 있는 욕심 적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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