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을 되찾은 진진이는 먹고 싶은 음식의 리스트를 세웠고, 평일에는 병원에서 정한 식단을, 주말에는 자주 외식을 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우리 가족은 푸드트럭을 4~5군데 돌면서 간식류로 한 끼를 채우기도 하고, 비싼 소고기집에서 한우 등심을 잔뜩 구워 배불리 먹기도 하고 파스타집에서 3명이 4가지 메뉴를 시켜 마음껏 탄수화물을 섭취하기도 했다. 수개월간 음식이 '행복'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진진이를 위해, 우리 부부는 마음껏 지갑을 열었다. 간혹 진진이는 본인이 너무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면 엄청나게 괴로워했는데 이런 상황의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 사이, 괜찮다던 학교 생활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다. 어느 날은 하교 후 집에 돌아와 펑펑 울면서, 반 친구들이 본인을 다 미워하는 것 같고, 수업시간에도 집중이 전혀 안된다 하였다. 학교가 너무 싫고, 자퇴하고 싶다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입학 후 불과 한 달 정도 지난 시기였는데, 단 몇 주간 심경이 급격하게 변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돌이켜 보니, 이것은 전형적인 거식증의 현상이다. '절식 끝은 폭식'이란 말이 틀리지 않은 것이, 똑똑한 우리 뇌는 절식을 경험하면 몸에 방어기제를 형성하여, 식욕이 돌아오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잃었던 체중과 영양을 제한 없이 흡수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아이는 처음에는 돌아온 식욕에 기뻐하다가, 이후 넘치는 식욕과 살찌기 싫은 마음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그러다가 단기간 해소되지 않는 식욕에 긍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자기 비하', '피해의식', '폭력성'등을 통해 감정을 폭발하고 만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데, 모두 먹어버리면 뚱뚱해질 것 같은 대치 상황이 뇌 80프로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아이의 사회성이나 학습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외부 환경은 차단하고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라 하셨지만, 친구들 사이 인기도 많고 공부도 잘했던 중학생이 된 아이를 두고 내 고민은 깊어만 갔다.
치료 만 4개월 차인 5월. 진진이의 예민함은 극에 달하였다. 어떤 날은 회사에 있는 나에게 엉엉 울며 전화를 하여 편의점에 가서 5분 만에 크림빵을 4개나 사 먹어 버렸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며 울부짖고, 하루는 집에 있는 모든 간식을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워 버렸다고 하며 이런 본인이 끔찍하다고 괴로워했다. 같은 아파트에 할머니와 이모가 살아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전혀 없다시피 하였으나, 섭식장애는 은밀하게 우리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치료 초반의 나에게 의지하던 우리 아기가, 이 순간만은 미운오리가 된 것 같았다.
특별히 집안에 병을 오래 앓은 가족이 없었고, 나 역시 건강 체질로 자라왔어서, 아픔에 둔감한 편이었다. 누가 아프다고 하면, 얼마나 아픈 건지, 어떻게 치료하는 건지, 그 가족들은 어떤 마음 상태인지 헤아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분신 같은 우리 아이에게 찾아온 병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겼고 그에 파생된 수많은 감정을 낳았다. 병은 다른 세계 일에 불과하고 나와 내 가족, 가까운 친구들만 괜찮으면 된다고 여겼던 오만함을. 병이 조금이라도 차도를 보이면 금세 그때의 간절함은 잊어버리고 마는 나의 경솔함을. 방심하면 다시 악화되니, 오랫동안 단속 해야 함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내 아이가 아픈 건데, 내가 더 앓을 수밖에 없는 모성을. 대신 아파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또다시 밤을 지새우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5월의 봄 내음은 한없이 따뜻한데, 내 마음에는 아직 봄이 찾아오려면 멀고도 멀다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