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휘트니>를 보고
나의 음악 취향은 이것저것 들어 보며 좋은 노래를 찾아 떠도는 유목민같아서 특정 가수의 열성적인 팬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노래가사를 감정이입해 듣는 편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요를 더 많이 듣게 된다.(영어가사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이승환처럼 데뷔때부터 좋아했던 가수들에겐 끝까지 팬의 의리를 지키지만, 아주 많이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는 귀에 들어온다 싶은 노래만 듣고 '내가 아니어도 당신의 팬은 많으니까,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시오'라고 생각하곤 했다. 휘트니 휴스턴도 내게 그런 가수 중 대표적인 한 사람이었다. '앤 다이아이아~'로 전세계를 휩쓸었던 슈퍼스타이지 않은가.
2012년 세상을 떠난 우리의 디바
1992년 영화 <보디가드>로 정점을 찍은 그녀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본 지 몇 년,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녀에 대한 기사를 보며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이십년이 지난 2012년, 더 이상은 그녀의 새로운 노래도, 그녀의 라이브도 들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우리를 교회에서 키웠어요.
집안의 귀염둥이 막내딸이었던 휘트니 휴스턴은 조용하고 예쁜,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아레사 프랭클린의 백보컬 가수로 유명했던 어머니는 항상 바빠서 주로 오빠들과 같이 놀았고, 교회에 다니며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하게 됐다.
가수들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본 건, 그녀의 엄마 씨씨 휴스턴. 엄마의 독하고 엄격한 트레이닝을 통해 17살, 성공적인 첫 솔로 공연을 시작으로 그녀의 가수로서의 인생이 시작된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성공하려면,
더 큰 주류 문화에서 성공하려면
그 문화의 방식을 배우고
그 문화의 언어를 쓰고
그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걸요.
그럼 이중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건데,
그러다 보면
실제 내가 누군지 헷갈리죠.
내가 저것의 연장선인가?
저게 나의 연장선인가?
영화 속, 그녀와 음반 계약을 체결한 아리스타 레코드의 설립자인 클라이브 데이브스가 한 말이다. 그랬다. 그녀는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문화 속에서 성공한 흑인이었다. 자신이 가진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주류인 백인 문화의 옷을 입고 노래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 흑인 팬들은 그녀의 노래가 너무 백인들의 팝쪽으로 갔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이렇다.
음악은 음악이라고 봐요.
어떤 게 흑인스럽게 부르고
어떤 게 백인스럽게 부르는 거죠?
전 마음과 영혼을 다해 부를 뿐이에요.
알려진대로 그녀는 가수 바비 브라운과 결혼했고 그 결혼생활이 점점 그녀를 행복과 멀어지게 했다. 특히 영화<보디가드>로 그녀의 인기가 최절정에 이르면서 바비 브라운은 그녀에 대한 상대적 패배감으로 끊임없는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되어 그녀를 괴롭힌다. 그래도 그녀는 결혼을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 노력은 소용이 없었고 그들은 14년간의 결혼 생활 후, 결국 이혼을 선택한다.
아이를 사랑했지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몰랐다.
1993년 딸을 낳고 그녀도 어머니가 된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항상 떨어져 있었던 그녀는 아이를 사랑했지만,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고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몰랐다고 한다. 그 결과, 딸 크리시도 2015년 약물중독으로 엄마와 비슷한 사인으로 사망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은 그녀
휘트니 휴스턴의 곁에서 열심히 그녀의 일을 관리해주던 친구 로빈이 남편 바비 브라운에 의해 밀려나며 아버지 존 휴스턴이 그녀와 관련된 모든 일의 전권을 쥐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음반 관련 계약에 교활한 사람을 끌어 들였고, 이를 알게 된 그녀가 그를 해고하자, 그녀에게 1억 달러를 내놓으라는 소송을 한다.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리고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그녀는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걸고 세상을 적대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약중독이 더 심각해지고 급기야 대중의 가십거리로 더욱더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미 망가져버린 목소리로 공연을 하다 팬들의 야유를 받고, 많은 팬들이 중간에 나가버리기도 하는 믿을 수 없는 상황까지 맞는 그녀...
바빠서 자주 같이 있지 못했던 부모
어렸을적 친척에게 당한 성추행
16살 오빠들에게 받아 시작했던 마약
교회목사와 바람피운 어머니
아내 마음 아프라고 일부로 사고치는 남편
딸의 돈을 가로채는데 혈안이 된 아버지
흑인답지 못한 노래를 한다 쓴소리하는 팬들
그녀의 마약중독을 가십거리로 만드는 언론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말하는 꿈속에서 그녀를 쫓는 거인은,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이 커다란 심적 부담과 상처가 되어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약물에 더욱 의지하게 되며 급기야 마지막에는 모든 것에 대한 의욕도 관심도 없어진 것이 아닐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다시 듣고 싶다.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보고 싶다. 그녀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