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호랑이 Apr 17. 2019

[생후22일] 집에서 잔 첫날

이런 게 부성애일까?

/생후22일/

희온이가 집에서 잠을 잔 첫날.

아내와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잠을 청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금방 잠들기로 유명할 정도로 잠이 빨리 드는 편이다. 누워서 베개를 배면 1분 안에 잠이 든다. 어떤 상황이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잠이 쉽게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 축복 때문에 死선을 넘을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 축복(?)은 군대에서도 유효했고, 군생활 중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바로 취침 점호였다. 취침 점호란, 잘 준비를 끝낸 채 누워서 하는 점호이다. 당직사관이 오면 각 생활실마다 인원점검을 하는데 한 명씩 순서대로 자기 번호를 말해야 했다. 당연히 점호가 끝날 때까지 잠이 들면 안 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나는 안 그래도 하루 종일 뛰어다닌다고 피곤했기에 베개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눈이 감기자 옆에 누워있던 선임이 나를 툭툭 치며 거친 말투로 자지 말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집 나간 정신을 다시 붙잡고 눈에 힘을 줬다. 그렇게 30초쯤 지났을까? 다시 스르륵 눈이 감겼다. 선임이 더 흥분한 상태로 거친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기서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서라도 깨어있었어야 했다. 적어도 군대에서는 잠에 빨리 드는 것이 축복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옆에서 조용히 보고 있던 악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너무 피곤했지? 수고했어~ 얼른 편하게 자"


결국 점호가 끝난 후에 나는 막사 뒤로 끌려갔고,

그 뒷이야기는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희온이가 자다가 새벽에 깨면 일어나야 할 텐데.

주변에 지인들은 나를 잘 알기에 새벽에 일어날 수 있겠냐고 자주 물어보았고, 나는 꼭 일어날 거라고 대답했다.

사실 '진짜 일어날 수 있을까?' 나도 나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괜찮다고 자신이 일어나면 되니깐 자도 된다고 얘기해 줬지만, 주변에 먼저 아빠가 된 선배아빠들이 아내가 자라고해도 절대 자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해줬던 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겠다고 마음먹었다.


AM 12:00

희온이도 자고 우리도 잠에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응애응애" 귓가에 아기 소리가 들린다.

눈이 번쩍 떠졌다. 아내와 동시에 잠에서 깼고, 희온이가 밥 먹을 시간이 되었으니 분유 좀 타오라고 했다.

성공이다.

잘 일어났다는 안도감과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동시에 들었다.

별 것 아닌 거지만 '이런 게 부성애일까?'라고 거창하게 생각하며 새벽 두시에 분유를 탔다.








이전 06화 [생후8-21일] 두 사람에서 세 사람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