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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2. 2023

회사에서 내가 곰인 이유

+ 여우가 되지 못하는 이유

회사에서 나는 멍청이이고 곰이다.

대학에 다닐 때 동아리에서 내 별명은 ‘곰’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곰으로 불렸다.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대학 선후배 동기들은 여전히 나를 곰이라고 부른다. 나는 내가 왜 곰이어야 하는지, 내가 곰처럼 둔한 사람인건지 납득이 안되어 가끔은 그 호칭에 반발하며 발끈한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나는 곰이 맞다.

회사에 와보니 알겠다, 내가 왜 곰인지. 둔해서도 멍청해서도 아니다. 충분히 똑똑하고 눈치도 빠르다. 내가 곰인 이유는 나를 불쾌하게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불쾌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나를 유쾌하게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유쾌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여우가 아닌 곰인 이유는 불쾌하게 하는 사람이든, 유쾌하게 하는 사람이든 그들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1차원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그 순간 그걸 받아쳐 내지 못한다. 그저 기분이 나쁘고 그걸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야 직성이 풀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참는다.  ‘저 사람이 나한테 왜 저러지? 내가 뭐 잘못했나? 잘못했다 한들 저건 너무 심한 거 아냐?’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곰과 여우의 차이는 여기서 확연히 드러난다. 곰은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반면 여우는 그 순간 기분이 상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농담처럼 받아넘기고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 살짝 건드린다. 그러면 상대는 방어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공격을 잠시 멈춘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우 같은 것!”하며 발을 뺀다. 순간을 참지 못하는 곰 같은 나와 순간을 기회로 만들 줄 아는 여우 같은 사람의 차이다.


회사 생활이 힘든 이유에 대해 여러 각도로 생각해 봤다.

체계가 부족한 시스템의 문제, 고객사의 갑질, 불의와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 나태한 팀원들과 팀장. 이 모든 것 위에 있는 것이 내가 곰이라는 사실이다. 여우들 혹은 여우가 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곰으로 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걸 헤쳐나갈 ‘깜’이 안되어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지쳐 쓰러지기 때문이다. 여우가 되는 방법을 알면서도 여우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시달릴 대로 시달리다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참아야 하는 걸까? 그래도 누군가 도와주겠지 하며 환상 속의 기사님을 기다려야 할까?


내가 아는 여우는 두 부류로 나뉜다.

착한 여우와 얄미운 여우다. 두 여우 모두 상대방을 이용하지만 착한 여우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반면 얄미운 여우는 자기 실속만 챙긴다. 여우의 길을 가고 싶은 나는 당연히 착한 여우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착한 여우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어떤 개지랄을 떨어도 일단은 참아내야 한다. 다 이해한다는 듯 받아주어야 한다. 그렇게 참으며 한 방을 노려야 한다. 그 한 방으로 그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게 바로 착한 여우의 전략이며 난관이다. 어떻게 보면 얄미운 여우가 되는 편이 훨씬 쉽다. 상대방을 홀려 원하는 바를 성취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얄미운 여우는 내 가치관에 반한다. 얄미운 여우는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인간과에 속하기에 인생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 한 그런 인간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착한 여우가 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인내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회사에서의 나는 인내심이 없다. 상대방의 개지랄이 모욕처럼 느껴지고 그를 이해하려다 내 숨이 넘어갈 것 같아 똑같이 되받아치게 된다. 곰에서 여우로 탈바꿈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방송국에서 서브작가를 하면서 여우 같은 막내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여우는 나를 아들 없는 데서 며느리를 깔보는 시어머니처럼 대했다. 나중엔 아들도 진실을 알게 되어 시어머니는 퇴출되었지만 그전까지 맘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쓰리다. 그 여우는 메인작가 앞에서는 성실했고 서브작가인 내 앞에서는 근무태만이었다. 많은 잡다한 일을 내게 떠넘겼고 일이 잘못되면 내 탓인 양 메인작가에게 일러바쳤다. 막내작가에게 쓴소리 한마디 못하는 나를 바보 취급했다.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는 방송계에서 당당하게 칼퇴를 하며 나를 꼰대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물론 메인작가가 있을 때 그 여우에게 퇴근 시간이라는 건 없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메인작가는 그 여우를 두둔하기 일쑤였고 나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었다. 막내에서 서브가 되기까지 2-3년을 버텼고 그렇게 또 2-3년을 서브작가로 살아간 나를 그렇게까지 무시하는 막내작가를 처음 접하게 되자 그 억울함은 도저히 달랠 길이 없었다. 고자질하긴 싫었지만 살아남아야겠기에 메인작가에게 그동안의 일을 말했다. 오히려 내 말에 반신반의하던 메인작가는 혼자 밤샘하는 나를 본 날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 여우를 잘랐다. 그 여우는 마지막까지도 내게 미안해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여우는 금수저였고 작가지망생도 아니었다. 방송국 체험을 위해 막내작가로 위장한 사기꾼이었다. 메인작가에게만 잘 보이면 서브작가까지도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위장취업을 한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브작가였던 나를 그렇게까지 무시하고 얕볼 것까진 없었을 텐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선 나 같은 피라미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던 걸까? 그 여우는 얄밉고 못된 여우의 표본이다.


회사에서 나는 여우가 되고 싶다.

착한 여우가 되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론 곰으로 살고 싶다. 착하다 해도 여우는 여우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부당해도 항의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피해가 없는 쪽으로 최대한 안전한 선택을 한다. 어쩌면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쩐지 난 그러고 싶지가 않다. 나만 살아남으면 되는 편에 서고 싶지 않다. 그런 면에서 여우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여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곰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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