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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2. 2023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먹는 일뿐일까?

치맥의 교훈

그는 지금 벌크업 중이다.

평소보다 많이 먹고, 평소보다 많이 운동한다. 전직 헬스트레이너였던 그는 몸을 컨트롤하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몸의 근육 하나하나를 짚어내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전문가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벌크업 중이라고 했을 때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그냥요.”라는 짧고 불분명한 답이 돌아왔다. 몸 전문가인 그가 그냥 몸을 불릴 리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근육으로 몸무게 100kg을 찍는 거라고 했다. 현재 90kg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어찌 됐든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런데 그는 목표점을 찍으면 바로 다시 살을 빼겠다고 한다. 원래대로 70kg대로 돌아갈 거라고. 이해가 안 됐다.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까지 단기간에 몸을 불렸다 줄였다 할 필요가 있을까?


언니들과 오랜만에 불금에 치맥을 했다.

처음 가보는 치킨집에서 맛본 적 없는 누룽지치킨을 시켰다. 7분 운동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난 때였다. 심정지의 위협이 있었던 둘째 날 이후로 술을 마시면 운동을 하지 않았기에 먹기로 마음먹은 그날은 치킨과 맥주를 양껏 먹을 작정이었다. 기다리던 치킨이 나왔다. 매운 소스를 뒤집어쓴 채 불판에 지글지글 끓고 있는 치킨이 먹음직스러웠다. 통닭으로 나온 치킨을 먹기 좋게 갈기갈기 찢어 소스가 많은 쪽 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매콤함을 먹은 보들보들한 살 맛이 일품이었다. 살얼음 맥주까지 한 모금 마시니 하루종일 시달렸던 몸에 고농축 영양제를 꽂은 것처럼 불끈 기운이 났다. 그 순간 벌크업 중인 그가 생각났다. 그가 벌크업을 하고 곧바로 벌크다운을 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젊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살고 몇 년 전 아내와도 이혼한 그는 원래 살던 지역을 떠나 작은 아버지가 계신 우리 동네로 이사와 혼자 살고 있다. 헬스장을 접고 생계를 위해 생전 처음 해보는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그의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자기 몸을 불렸다 줄였다 하는 일뿐이었던 거다.


누구나 사는 게 힘들다.

각자의 다양한 사정으로 인해, 뜻대로 되지 않는 많은 것들로 인해 피로가 쌓인다. 퇴사를 고민하며 하기 싫은 운동을 억지로 하고 있는 나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고민하고 쥐어짜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맛있는 치킨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일이라니 얼마나 꿈처럼 행복한가? 먹고 싶은 걸 먹고 먹기 싫은 걸 먹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던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먹는다는 행위가 유일한 것처럼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을 때 골라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여겨졌다. 사는 날이 많아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그만큼 많아지고 그럴수록 지쳐간다. 지치면 기운이 빠지고 그러다 보면 포기가 빨라진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것이라 판단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다 보면 점점 할 수 있는 게 없어지고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까지 의심하게 된다. 내 맘대로 되는 게 먹는 것밖에 없다면 동물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동물과 다르지 않기 위해 먹는 것 외에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걸 찾으려 하고 그렇게 도전을 시도했는데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또 실망하고 좌절하고 그렇게 다시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하고… 그래서 사는 게 힘든 거겠지?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계속하게 되는 쳇바퀴 속에서 무너짐을 경험하다가 끝내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회사는 많은 것을 앗아갔고, 많은 것을 주었다.

사람에 대한 불신과 부당함에 맞서지 못한다는 자책과 용기와 지혜라는 단어와 결별하였고,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비열함과 억울함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인내와 먹을 걸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대한 기대가 없다. 회사에서의 일이 궁극적으로 어떤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정당성을 찾으려 했던 초심은 이제 버렸다. 회사 내에서 바꾸려고 했던 여러 가지 혁신적인 것들에 대한 추진을 하지 않기로 했고 동료 직원들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게 됐다. 바꿀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조차도 바꾸기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 겨우 7분하는 운동을 가지고도 이리저리 쟤고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기꺼이 끌어안고 무모해 보이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바보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일까? 아니면 다음 생도 있다는 걸 아는 인생 n회차 인간일까?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도전하는 사람은 존경스럽다. 알든 모르든 그들도 도전을 결심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전진할지 후진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전진을 택하는 순간 더 큰 위협과 고통이 있었을 테지만 목표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기 위해 부단히 정신수련을 했을 것이다. 어떤 일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는 그 속에 몸 담고 있으면서 겪게 되는 정신적인 수난이 견디기 어려운 법이니까.


회사에 대한 기대를 접으면서 자발적 월급 루팡이 된 나. 이대로 삶의 의욕까지 접고 인생 루팡으로 살아야 할까?  

모든 걸 통제하고 이룰 순 없지만 삶의 일부에서나마 도전을 멈추지 않는 적극 참여형 인간이 돼봐야 하지 않을까? 회사에서의 좌절을 삶에 끌어들이지 않고 퇴근 후의 삶이라도 빛날 수 있게 좋아하는 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 맘대로 되진 않겠지만, 좌절을 맛볼 확률이 높지만, 무너짐을 경험해야 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자유. 회사에서 상한 마음은 삶에 끌어들이지 않고 삶에서 얻은 기쁨과 보람은 회사에 끌어들이는 이상적인 인생이 가능하다면! 해보지 않고는 누릴 수 없겠지? 누리고 싶다면 일단 도전해야겠지? 도전이 먹는 것처럼 내 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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