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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2. 2023

그 게 놈은 왜 내 손가락을 물었을까?

다시 만나면 반드시 놈의 다리를 자를 테다!

국은 두 그릇이었다.

어차피 쟁반에 가져가 바로 먹을 밥과 국이었는데 하나의 국사발은 랩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따져 묻지 않았다. 한 그릇은 내가 한 그릇은 지금 한창 식사 중인 다른 사람에게 갖다 주기 위한 것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던 중 랩이 씌워져 있지 않은 국그릇에서 집게발이 불쑥 나오더니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인 약지를 꽉 물었다. 약지에 반지를 끼운 것처럼 전체를 감싸게 문 게 다리는 손가락을 점점 더 세게 조였다. 통증으로만 말하자면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팔 한 짝이 잘려나가는 고통이었다. 그 정도로 조여 오는 데도 쟁반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쟁반을 더 세게 쥐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대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너무 아파요.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오!! “

하지만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직감하고 게 다리를 벌릴 도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한 걸음 옆에 떨어져 있는 가위가 보였고 한달음에 달려가 오른손으로 가위를 집어 들었다. 가위를 게 다리 사이에 욱여넣고 벌리려고 했지만 그놈의 힘이 얼마나 센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손가락이 잘리고 마는 건가?




아파트 취소 후 재공급 물량에 일반공급 청약을 넣었다. 경쟁률 5932:1.

옆 동으로 이사 오면 좋겠다며 청약에 넣을 것을 적극 권한 작은언니는 경쟁률에 뜨악하면서도 좋은 꿈 꾸라며 격려해 줬다. 그날 밤 꿈에서 집게발이 나를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청약을 넣었던 생각이 났고 혼자 킥킥 웃었다. 이런 생생한 꿈은 오랜만이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말도 안 되는 경쟁률을 보고 잠들었는데 게 다리를 만난 것이다. 나보다 덩치가 더 큰 돼지가 가슴팍으로 뛰어든 것도 아니고, 나무보다 더 큰 사과가 광채를 띄며 나를 비춰준 것도 아니고, 변기에 똥이 넘쳐흐른 것도 아니고, 몸통도 보이지 않고 집게발만 빼꼼 나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 그 게를 만난 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당첨이 된다면 꿈속에서 그 게 놈을 찾아내어 오른손 약지도 내어줄 작정이다. 이런 일이라면 통증 따위 전혀 상관없으니까!


꿈을 꾼 다음날 회사에서는 아침부터 불량 건 처리에, 재고 확인이 안 되어 긴급 구매를 하느라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도 그 정신없는 와중에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대체 그 꿈이 뭐라고 퇴사 위기에 있는 나를 그렇게 웃게 하는지. 만일 꿈대로 로또 같은 청약에 걸려들기만 한다면 퇴사 위기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대출금을 갚아야 하니 당연히 퇴사는 꿈도 못 꿀 것이다. 그렇다한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복권 당첨이나 다름없는 청약에 당첨된다면 기꺼이 회사를 다닐 요량이었다. 일주일 후면 청약 당첨으로 퇴사를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지금 사는 아파트보다 2배 이상 넓은 당첨 예정 아파트의 인테리어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거의 신혼집 인테리어를 방불케 하는 호화로운 가구와 가전, 조명을 찾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게 소원하던 창가 옆 작은 테라스를 꾸밀 가구도 골랐다. 가구와 가전 등에 예산 1천만 원을 잡고 그동안 사고 싶었던 제품들을 맘껏 골랐다. 고르고 배치할 생각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일이 많고 불통 동료들 때문에 골치를 앓았지만 퇴근 후에는 밤이 늦는 것도 잊은 채 새 살림 장만에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행복한 일주일을 보내고 드디어 당첨 발표 시간이 왔다. 자정이 되자마자 청약 앱에 들어가 당첨조회를 했다.

“귀하는 조회일 현재부터 과거 10일 동안 당첨내역이 없습니다.”

5932대 1의 경쟁률. 그 1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5931명 중 한 명이었다.


그날 이후 다시 퇴사 전쟁이 시작됐다.

청약에 의지해서라도 퇴사만큼은 피해 가려 했으나 하늘은 날 버렸고, 난 다시 퇴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 선포는 했으나 일방적인 패배만을 겪어야 하는 여러 종류의 고픔과의 전쟁이었다. 그놈의 게는 왜 내 손가락을 물었던 걸까? 청약이 아니라 로또를 샀어야 했을까? 아니면 개 꿈에 불과한 게 꿈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걸까? 이제 무엇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할까? 매일 청약을 넣을 수도 없고… 역시 복권을 사야 하는 걸까?? 내 안전보장이사회는 로또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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