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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2. 2023

복권 당첨 vs  퇴사 확률, 어느 쪽이 높을까?

오늘은 기필코 로또를 사야지!

“나랑 같이 동업할래?”

수기는 대뜸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카페를 차리고 싶어 하는 친구는 늘 내 경력을 마음에 들어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더 나이 들기 전까지 다니던 회사나 계속 다니겠다고 했을 텐데 ‘정말 그래볼까?‘ 하는 유혹이 앞섰다. 나와는 다르게 발랄하고 유쾌한 수기의 입담과 자본력에 나의 바리스타 경력을 합하면 동업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퇴사 가능성을 비쳤던 한 달 전, 수기는 남편 얘기를 했었다. 15년 이상 한 회사에 재직했던 수기의 남편은 회사에 다니는 동안 한 번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고 타고난 회사원처럼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스트레스성 급성 당뇨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퇴사했다. 수기는 남편에게 급성 당뇨가 왔다는 걸 믿기 어려워했다. 남편은 매일 헬스를 하고 러닝을 뛰는 스포츠맨이었다. 운동을 싫어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며 매일 운동을 하던 그에게 당뇨가 오다니… 내가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병명이었다. 퇴사 후 수기의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냈다고 한다. 왜 그렇게 화를 내냐고 물으니 회사 다니면서도 참았는데 지금도 참아야 돼? 라며 또 화를 냈단다. 그러면서 타고난 회사원은 없다는 말로 남편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회사에 다니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경영주가 아닌 직원으로, 회사에서 원하는 일을, 최소의 시간 동안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직원은 그야말로 ‘찍’ 소리 내지 말고 돈을 받는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 과거에는 부당해고라는 회사에 유익한 제도가 있어 받는 만큼 일하지 않는 직원을 해고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부당해고를 할 수 없는 현재에는 직원이 회사를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받는 만큼 일하지 않고 뺀질 대는 근무 태만 직원들이 바로 그 케이스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일하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받는 만큼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팀장이나 경영진에게 부당함을 말하지 못한다.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하다가 나가떨어지는 직원이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개선안을 건의해 볼 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다. 그렇게 손목과 어깨가 나갔고 매일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나에게 남는 건 뭘까?


퇴사를 하면 난 뭘 얻게 될까?

퇴사를 하면 난 자유를 얻을 것이다.

퇴사를 하면 난 건강을 얻을 것이다.

퇴사를 하면 난 시간을 얻을 것이다.


퇴사를 하면 난 뭘 잃게 될까?

퇴사를 하면 난 자유를 만끽할 돈을 잃을 것이다.

퇴사를 하면 난 건강을 유지할 돈을 잃을 것이다.

퇴사를 하면 난 시간을 이용할 돈을 잃을 것이다.


자유와 건강과 시간까지 돈으로 사야 하는 것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부분 그렇다.


회사를 다니면서 난 돈만 얻었나? 적어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그랬던 것 같다.

매월 같은 날에 같은 돈이 통장으로 입금된다는 건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한 그만한 혜택이 없다. 갖고 싶은 걸 갖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조카들에게 용돈을 주고도 적금까지 부을 수 있는 돈이 매달 생긴다는 건 거부 못 할 특권이다. 그 돈이 없다고 생각하면 전국 방방곡곡 가고 싶은 곳에 가지도, 1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티켓팅한 콘서트에도 갈 수 없다. 그러니 퇴사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격하게 퇴사를 하고 싶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로또를 사고 주택연금복권을 사고 스포츠 토토를 해야 할까?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퇴사할 확률보다 높을까?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퇴사를 하지 못해 말라죽을 확률보다 높을까? 퇴사할 확률이 퇴사를 하지 못해 말라죽을 확률보다 높을까?


내가 원하는 건 퇴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쉽지 않다. 포기해야 할 게 많아 깔끔하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그만두고 싶다. 그렇다면 이직이 답일까? 이직이 쉬울까? 세상에 쉬운 게 있기는 할까? 오늘 나는 기필코 복권을 사러 갈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어 미련 없이 퇴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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