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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2. 2023

일몰과 일출 사이에서 별이 되는 순간

또다시 별이 되다

그를 만난 곳은 태안이었다.

기름유출사고로 전 국민이 모여들던 태안에 그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나도 있었다. 가장 빛나는 시간을 태안에서 보냈다. 그와 함께. 그와 헤어진 지 10년이 지났지만 태안에 가면 그가 생각난다. 꽃게 살을 정성스레 발라주던 그의 섬세한 애정이 기억난다. 환하게 웃는 내 미소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하얀 거짓말이 기억난다. 그의 옆에 있을 때에는 누구보다 빛나던 내 모습이 선명하다. 매일이 일출을 볼 때처럼 새롭고 활기찼다.


다시 태안이다.

이번엔 퇴사의 무게를 안고 왔다. 내 옆엔 아무도 없고 내 얼굴은 무표정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저 바다처럼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있는 이곳은 태안이지만 예전의 그곳이 아니다.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예뻤던 그녀는 어디 갔을까? 단지 그와 같은 사람이 옆에 없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에 의욕이 없다. 격려하기 위해 전화 한 친구에게도 나처럼 되지 말라며 짜증을 내는 나.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한 커플이나 가족들에게 일부러 다가가 최고로 멋진 각도를 찾아 셔터를 눌러주던 나는 지금 없다.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말기를 바라는 나만 남아 있다. 별 가루가 쏟아져 내린 것처럼 쉴 새 없이 반짝이는 눈부신 바다를 보고도 한숨이 난다. 다시 태안에 와도 과거의 나를 찾을 수가 없다. 일몰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다.


태안에 있는 성당에 갔다.

신부님은 강론 중에 세 가지 말에 대해 말씀하셨다. 참말, 필요한 말, 친절한 말. 참말은 누구에게 듣거나 소문으로 알게 된 말이 아닌 내가 직접 보고 느낀 말을 말한다. 필요한 말은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뺀 말이며, 친절한 말은 말 그대로 친절을 담은 말이다. 회사에서 내가 세 가지 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면 난 큰 어려움 없이 버틸 수 있을까? 나만 세 가지 말을 사용한다고 회사의 거친 언어들이 정화될까? 친절을 자부했던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분노로 가득한 사람이 됐다. 상대방에게 직접 화를 내진 않지만 상대로 인해 끓어오른 화를 오랫동안 참지 못해 부르르 떤다. 그 떨림의 횟수가 잦아지면서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욕설 뒤에 감춰진 상대방의 참말과 필요한 말과 친절한 말을 걸러내지 못하게 됐다. 내가 해야 할 참말과 필요한 말과 친절한 말도 잊어버렸다. 퇴사만 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태안에 오면 달라질 줄 알았나?

태안은 나를 반짝이게 만든 곳이면서 나를 파괴한 사람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인생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와 헤어질 일도, 헤어짐으로 망가질 일도, 지금 이 회사에 다시 다닐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게 내 선택으로 인한 내 잘못이지만 어쩌면 내가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란 무모한 기대를 지울 수가 없다. 이 모든 원망을 태안에, 아니 그에게 되돌리면 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멍게 맛을 알게 해 준 그가 생각나 멍게를 먹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멍게를 먹으며 그와의 추억을 씹어 삼켰다.

태안에 올 때마다 그와의 행복한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찾아와도 그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 사람과 헤어진 이후로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그를 소환해 모든 원망을 쏟아붓는다.


낙조가 아름다운 서해 그리고 태안.

일몰이 아름다운 만큼 일출도 아름답다. 사진만 보면 해가 뜨는 건지 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일출과 일몰의 모습과 색깔이 비슷한 곳이 서해이다. 사실 두 모습이 똑같은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입장에서 일출과 일몰이 있는 것이지 우주 속의 지구 입장에서는 구분이 없을 테니. 일출과 일몰은 언어만 다를 뿐 같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그 첫 시작의 마음을 간직하려 한다. 새해 첫날 일몰을 본다면 어떨까? 일출을 볼 때와 같은 마음은 아닐 것이다. 회사에 다니는 게 새해 첫날 일몰을 보는 것처럼 꺼림칙하고 거북했다. 언제 봐도 기분 좋은 일출 같은 첫 입사 때와는 다르게. 하지만 이제부터 매일 아름다운 일몰을 보며 일출을 떠올리는 태안의 오늘을 기억한다면, 회사에 갈 때마다 매일 일출만 보는 지구를 떠올린다면, 조금은 다를까? 그를 원망하지 않아도, 새롭게 태어나지 않아도,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오후 2시.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2시간 전보다 더 반짝인다. 반사된 빛에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을 정도다.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던 새벽, 길을 잃고 헤맬 때 보았던 시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별 군단이 떠올랐다. 길을 잃었지만 그 별을 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던 날. 길을 잃어서 오히려 감사했던 순간! 퇴사의 갈림길에서 길을 잃은 내게 다시 나타난 별 군단. 반짝임에 압도당한 나는 또다시 길을 잃어서 감사했다. 별을 볼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어쩌면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인력충원을 약속하자마자 부장은 채용공고를 냈다.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업무분석표를 작성했더니 맡은 업무를 모두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하루 37시간이었다. 업무의 반만 처리한다고 해도 18.5시간이다. 근무시간이 8시간 길어야 10시간인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던 건가? 그 많은 일이 소화되지 않은 게 당연했다. 구조조정 당시 신입사원을 해고하지 않았으면 좀 나았을까? 업무분석표를 본 대표도 추가 인력 채용을 단번에 허락했다고 했다. 채용 공고를 낸 지 2주가 지났지만 지원서는 단 3건뿐이었다. 언제 인력 충원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몸이 닳았는지 부장은 언제 뛰쳐나갈지 모를 나와 방대리를 위한 대변인이 되었다. 그동안 그렇게 바라왔던 바람막이를 이제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서 일 다 하려고 하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부장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일을 떠넘기기 일쑤였던 팀에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고, 불통 직원과의 소통을 자신이 떠맡아 처리했다. 부장이 언제까지 우리의 업무를 대신해 줄지 알 수 없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의 애쓰는 모습이 어쩐지 고마웠다. 태안에서 만난 별 때문인지, 다급해진 부장의 일시적인 변화 때문인지 몰라도 길을 잃었음에 다시 감사했다. 어쩌면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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