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실은 안 좋은 기운이 가득한, 결코 좋은 터의 집이 아니라고 알려준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우리 가족이 전월세에서 간신히 돈을 모아 다시 전셋집으로 이사를 간 후, 우리는 전셋집 서러움을 정말 많이 겪었다.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초긍정마인드인 어머니 마저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난 현재에도 그때 집주인을 떠올릴 때면 '정말 나쁜 놈'이라고 말하곤 하신다. 그렇게 설움을 겪다가 낡은 다세대 빌라집을 사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는지!
그 집은 집 자체도 낡았지만 지하 차고 쪽이 허락받지 않은 지저분한 낙서로 가득해서 (그 그림을 남긴 사람들은 멋진 '그라피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누구든 손님을 맞이할 때면 '와 밀키네 집 정말 쫄딱 망했구나'라고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집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은 이보다 더 처참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여서 아예 손님을 초대할 생각 자체를 못할 정도의 집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 다시 우리 가족 명의의 집이 생겼기 때문에 이 집에서 마음 놓고 두 다리 뻗고 살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와 감격을 느꼈다.
이 집은 다세대 3층이어서 전면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왔고, 우리는 이곳에서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이 되면 전면창을 비닐로 꼭꼭 덮는 작업을 해가면서도 우리는 '우리 집'에게 감사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는 이곳에 생쥐처럼 모여 살았다. 정말로. 우리는 낡은 집에 사는 행복한 생쥐들이 되었다. (아버지로 인해 순간순간 정기적으로 불행했지만)
이 다세대주택은 각 층마다 2개의 집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건너편 2층집에 사는 분과 어머니가 교류하게 되었는데, 이분들은 약간 특이한 분들이었다. 이 낡은 빌라에 살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꽤 있어 보이는 분들인데 왜...?
한참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분들은 사업을 해서 나름의 자산이 있었다. 그런데 점쟁이가 이 집 터가 좋아 이곳에 살면 사업이 잘된다고 해서 이곳에 계속 산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걸 보면 참 유전적으로 시베리아 샤먼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어머니에게 귀띔을 해준 것이다. 점쟁이가 자기들이 사는 왼쪽 라인은 터가 좋지만 오른쪽 라인은 터가 좋지 않다고 했다면서-정확히 말해 운이 막히는 집이라고 했다- 집을 옮기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우리 가족들은 어떤 마음이 되었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단 한 명도 이 말을 쌀알 한 톨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고 여전히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여전히 이 집을 사랑하면서 말이다.
우리 가족은 이 낡은 집에서 6년을 넘게 살았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러면 시멘트만 발라져 있는 삭막한 옥상에서 아이는 버려진 시멘트 벽돌을 끙끙거리며 잘도 갖고 놀았다.
그 순간 정말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부자로 살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좋은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아이는 꽃 한 송이는커녕 풀 한 포기 없는 낡은 다세대 주택 옥상에서 시멘트 벽돌을 갖고 놀다니.
나 자신이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식이 가난한 것을 바라보는 것은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나 가난한 환경이라도 아이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가난을 경험하며 이 사실도 알게 됐다. 아이는 가난하다고 불행하지 않다. 아이는 사랑을 못 받을 때 불행하다. 이 점을 기억하고 혹시라도 지금 가난하다면 나의 가난을 너무 슬퍼하지 말자. 대신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는데 마음 쓰자.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날 것이다.)
나는 6년간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옥상에 올라가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는 저 아파트에 입주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자라면 나무와 풀이 있는 정원을 걷게 하고 그곳에서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고 씽씽이를 타게 하고 말겠다고. 다세대 연립주택과 빌라만 가득한 동네에서는 나무를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까, 우리 집 형편은 점점 좋아졌다. 그러나 낡은 다세대주택에서 새 아파트로의 진입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낡은 빌라에서 오랜 시간을 산 탓에 꼭, 지은 지 너무 오래되지 않은 새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우리 가족은 돈을 모으며 때를 기다렸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기 1년을 남긴 상황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1년만 더 이 집에서 살고 대출을 받아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희망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1층집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고, 2층집과 사이가 안 좋아지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2층집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바닥 전부를 뜯어내버렸고 2층에서 물이 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우리 집은 3층이었기 때문에 1층집 물샘에 대해 듣기는 해도 신경을 쓰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우리 집이었고 나와 가족들은 1층집에 내려가 천장에 물이 새서 곰팡이가 핀 것을 보며 진심으로 마음이 아파졌다. 그 집도 2명의 아이를 키우는 집이었다.
나도 모르게 요술에 걸린 것처럼 입에서 말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저희들이 너무 무심해서 죄송합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어떻게 이렇게 곰팡이가 필 때까지 저희가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저희들이 너무 죄송합니다. 단지 3층이라고 생각해서 관련이 없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희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이웃으로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나의 사과를 듣고 있던 1층집 가족들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천장에 핀 곰팡이를 보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그런데 나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나니 어린아이들조차 표정과 마음이 풀어지던 모습이었다.
우리 가족은 너무나 죄송해서 돈을 아낄 생각도 없었고 마음에 드는 벽지시공업체를 부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줄 케이크를 사서 다시 들렀다.
1층집 사람들은 화가 나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벽지 시공을 하던 날에는 나도 일하러 가지 않고 1층집에 다시 들렀다. 물샘사건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곰팡이 핀 벽지를 뜯어내는 것을 보자 그렇게 마음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내 집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소중한 집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선하게 행동하자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이미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과정을 경험해 본 2층집에서 일상생활책임보상 보험에 가입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귀띔을 해준 것이다.
2층집 역시 우리 집에 화가 안 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진심을 담아 죄송하다는 말을 하자 그분들도 마음이 누그러졌고 우리에게 이렇게나 중요한 팁을 알려준 것이었다.
그 결과 가족 중 일상생활책임보상 특약에 별생각 없이 가입한 사람이 있었고 (1000원도 되지 않는다!) 자기 부담금 20만 원을 빼고 나머지 100만 원이 넘는 도배비 등 모든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보험사에 전화했더니 상세히 절차를 설명해 주었고 보험회사에서 조사 차 사람이 나왔다.)
심지어 도배 업체 사장님은 도배시공을 보러 간 나와 우리 가족들을 보더니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며 요즘 사람들이 돈만 주고 말지 이렇게 물 샜다고 아랫집 시공을 보러 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우리에게이득을 주기 위해금액을 더 부풀려 영수증을 써주겠다는 제안까지 하셨다. (보험사에서 돈을 더 타내 아예 자기 부담금 20만 원도 메꾸라고) 그러나 우리 가족은 마음 써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된다고 하하 웃으며 거절했다.
도배 공사가 끝나고 1층집이 환해진 이후에 우리 가족은 그제야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었다. 1층집의 곰팡이 핀 천장을 본 뒤로 공사를 할 때까지 너무나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물샘 사건이 결정적으로 나로 하여금 계획보다 빨리 이사를 결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것이 행복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이때 물샘 사건을 계기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강한 결심이 섰고 부모님에게 아파트를 알아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는 사이 한 달간 갑자기 집값이 요동치며 뛰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일주일마다 아파트값이 2천만 원씩 뛰는가 싶더니 거기에 다시 가속이 붙는 상황이었다.
결국 한 달 만에 아파트 값이 원래 가격보다 너무 뛰어 내가 옥상에 올라가 그토록 바라보던 아파트에는 입주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때의 그 실망감이라니!
그렇게 간절한 것을 눈앞에서 놓친 그 마음은 정말로 쓰디 쓴 맛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아파트는 대출을 4억을 받아야 했다. 그건 정말 우리 가족에게 지나친 무리였다. 동생들과 함께 대출을 갚기로 했지만 4억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너무나 속이 허탈했다. 단지 한 달 만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실망한 나는 우연히 동네에서 좀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들렀던 일이 떠올랐고, 가격을 고려하여 우리 가족은 그곳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나중에는 이곳으로 와서 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혀 알지 못했지만, 가격은 이곳이 떨어져도 이곳 아파트 단지가 오히려 아이를 키우기에는 훨씬 더 나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꼭대기를 재개발 한 곳이라 자연환경이 더 좋았다.
나의 아이는 이곳에서 내가 꿈에 그리던 대로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잔디가 깔린 언덕을 올라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거나 아파트 단지 안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이 오히려 내가 진정 원했던 이유와는 멀었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던 아파트 단지는 역세권에 가격은 훨씬 비쌌지만 놀이터도 많지 않았고, 아무래도 위치 때문에 조경도 부족했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3 가지를 깨닫게 됐다.
첫째. 나쁜 일이 생겼다고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
물샘 사건은 나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사를 결심하게 해 주었고, 그 결과 집값이 뛰는 초반에 빠르게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이 물샘 사건이 우리 가족이 다시 부자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때 이사하지 않고 계획대로 1년후에 움직이려 했다면 집값 폭주로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도저히 이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물샘 사건이 하늘이 우리 가족에게 보냈던 신호였다고 생각하고 우리 가족 모두 이 사건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둘째. 사람은 간절히 무언가를 원하지만 사실 그것이 정말로 자기에게 좋은지는 잘 알지 못한다는 것.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6년간 바라보던 아파트는 포기해야 했지만, 우리는 다른 아파트로 이사해 오히려 재산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고 지금의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올 수 있었다.
셋째. 언제나 진심으로 선하게 행동할 것.
선한 마음은 반드시 보상받고 나의 선한 에너지가 주변으로 퍼질 때 나는 부로 가는 길을 걸으며 인생의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점쟁이가 운이 막힌 터라고 말했던 낡은 빌라 집을 우리는 행복하게 살며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지금 와 돌아보면 우리 가족의 선한 에너지와 낡은 집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나쁜 운까지도 이겨냈던 것 같다.
우리는 6년간 살던 빌라를 떠나 아파트로 이사하며 집에게 편지를 썼다.
점쟁이가 볼 때는 운이 막힌 집이었는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가난뱅이 생활 끝에 다시 처음으로 우리 명의가 된 자랑스러운 집이었다. 그러한 긍정적인 마인드와 에너지가 안 좋은 터의 운명도 극복해 냈다고 느껴진다.
아직 글자를 완전히 익히지 못했던 아이가 쓴 편지다. 나의 도움을 받아 썼다.
우리는 이 편지를 붙박이장 안쪽에 몰래 붙여놓고 나왔다.
새로 이사 오는 분들이 이 낡은 집을 우리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사 당일 그분들을 보니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나는 마음을 놓고 발길을 돌렸다.
선한 에너지는 나쁜 운명을 이겨 낼 힘을 준다. 나의 선함을 잃지 말자. 그것이 나와 가족을 부의 길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