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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레밸 Sep 18. 2022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습니다.

직장인 희로애락

출근차량으로 빽빽하게 가득 찬 도로를 지나고, 옆사람의 체온을 느낄 정도로 부대끼는 지하철을 타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하... 집에 가고 싶다.'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PC를 켜고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가슴과 머리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말이다. 


직장인에게 월급은 생계를 책임지고, 여행을 떠나게 하며, 자식을 키우는 등 삶을 영위하는 경제적 토대를 제공해주는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 그러다 보니 매일 같이 출근하기 싫다며 침대에서 5분만... 을 소리 없이 외치면서도, 학창 시절 그 어느 때보다도 성실하게 사무실로 향한다.


특히 취업이 어려운 시대가 되다 보니, 때로는 내게 월급을 주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아주 가끔... 찰나의 순간처럼 머리에 스치는 생각일 뿐이다. 이것이 머리에서 입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그렇게 불평과 불만을 가진 채로 하루의 업무를 시작한다.


그래도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야 한다는 막연한 각오를 다진다. 따닥따닥... 무기력한 오른손으로 메일함을 클릭하고, 동태 같은 눈으로 메일을 확인하며 해야 할 일을 정리한다. 퇴근한 사이 도착한 메일들을 열어볼 때마다, 마음속에 화가 차곡차곡 쌓인다. 예상치 못한 업무 메일과 통제 불가능한 문제 상황이 가득한 메일을 읽다 보면 다시금 진정성 있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진짜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매가리 없이 업무에 임한다. 타다닥 타다다다닥... 조금은 힘찬 타이핑을 시작할 때면, 입사동기가 사내 메신저로 인사를 건네 온다. 이것을 열어보기도 전부터 어떤 인사인지 감이 온다.


"하... 집에 보내줘..."


입사동기의 소리 없는 외침에 나는 차분하게 답한다. "나도..."

그러고는 의미 없는 이야기들로 대화를 이어간다. 같은 회사를 다니며 자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그럼에도 매일 같은 패턴인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동질감을 나누는 부족원끼리의 숭고한 의식이려나... 그렇게 하루의 가장 활기찬 순간을 맞이 한다. 어쩜 이리 무의미한 대화에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일까... 이번엔 좀 더 집중도를 높여서 업무를 이어간다.


이때부터는 사뭇 달라진 태도로 업무를 처리해간다. 하나씩 일이 처리될 때마다, 오늘 TO DO LIST를 지워갈 때마다,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낀다. 왠지 오늘따라 나 자신이 조금 멋있게 느껴진다. 일의 능률이 좋다고 느끼니, 조금 더 집중력을 발휘해서 칼퇴하겠다는 당찬 꿈까지 꾼다. 난 마치 충분한 열을 받고 식용유까지 두른 프라이팬이다. 이제 남은 것은 내게 주어진 계란을 멋진 프라이로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점심 먹고 합시다."


난 재빠르게 가스레인지의 불을 꺼버리듯, 자리에서 바로 일어난다. 점심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오늘따라 점심도 맛있고 하늘도 예쁘다. 그러다 보니 다시 스멀스멀 진정성 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딱 놀러 가면 좋을 텐데...'


기분만큼은 정말 좋았던 점심시간을 마치고, 다시 PC 앞에 앉았다. 출근 때와는 다르게 업무에 바로 집중이 가능하다. 타타타타타닥 타다타닥타다다닥... 자신감 가득한 타이핑 소리로 사무실의 적막을 깨기 시작한다. 사무실의 적막이 사라질 수 록, 나의 업무도 하나씩 사라진다. 오늘따라 일이 잘된다는 행복감에 휩싸일 때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휴대폰이 올리더니 또 다른 업무가 생겼다. 난 참 복이 많은 것 같다. 일복...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집에 진짜 가고 싶다...'


오늘 하루에만 몇 번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난 성실한 직장인이다. 아니... 성실한 직장인이어야만 한다. 내 삶을 영위하고, 대출금을 갚고, 여행을 가기 위해선 월급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지속해서 이어나가야 한다. 내 역할을 똑바로 해내고, 내 가치를 계속적으로 증명해야 월급을 계속 받을 수 있다. 힘을 내서 야근만이라도 피해보자! 그러나 다짐이 무색하게 일을 남겨둔 채 퇴근을 했다.


내일의 나를 믿으니까!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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