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기억해 줘
"선생님, 제 이름은 땡땡이인데 학교에서는 제니로 불러주세요. 출석부나 명렬표에도 제니로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여기 캐나다에서는 가능하다! 학기 초 보호자의 연락처, 주소, 아이의 건강상태 등을 작성하는 기초조사서에는 아이의 법적 이름(여권상 이름)과 preferred name을 적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 되었다. 한국에서부터 이어진 고민, 영어이름을 만들어줘야 할까?
나란 사람은, 고민을 항상 달고 지내지만 정작 결정을 잘 못하는 타입의 사람! 예를 들어 생일선물을 뭘 해줄지 고민하다 정작 이상한 선물을 해주거나 지나고 나면 이 선물을 사줄걸, 후회하는 사람! 아이의 영어 이름을 두고서도 영어이름을 만들어줄까 말까, 어떤 이름을 해야 하나 고민만 하다 캐나다까지 왔다.
그리고 나의 결정은, 결국 영어이름 대신 한국이름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한글 이름도 이름마다의 이미지가 있는데 내가 영어이름 각각이 가지는 이미지를 알지도 못한 채 아이에게 붙이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김철수 식의 한국이름을 만들지 않는데 왜 우린 외국에 왔다고 영어식 이름을 만들어야 할까. 에 대한 고민이 두 번째 이유였다. 마지막 이유는, 내가 어릴 때 친구들을 사귀었던 과정을 생각해 봐도, 내가 친구가 된 수많은 이유들 가운데 '친구의 이름이 쉬워서'가 이유가 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친구라면, 이름을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 친구라면, 이름을 기억해 주게 되지 않을까.
캐나다 학교에서는 스낵을 먹는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씨가 춥든 덥든 항상 나가서 논다. 학년별로 노는 장소가 지정이 되어 있는데 다른 반의 친구들하고도 어울려서 노는 일이 많다. 어느 날 방과 후 시간에, 같은 반 친구가 아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봤다.
"저 친구들이 네 이름 알아?"
"아니."
"그럼 너 어떻게 불러줘?"
"Hey, dude."
아이도 이름을 알려줬겠지만 친구들이 낯설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대신 내 아이는 dude가 되었다. 그리고, 이름을 알지 못해도 함께 어울려 논다.
곧 시간이 지나 아이친구들이 정확한 발음으로 내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듣게 되었다. 오가는 길에 나와 아이가 함께 걷고 있는 것을 본 친구 엄마는 내 아이 이름과 내 이름을 함께 정확하게 불러준다. 이름을 불러주는 게 감동할 일이겠냐만은 아이와 내 이름이 쉽게 발음되는 이름은 아니기 때문에 처음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 번 스쳐 지나가고 말 사이가 아니니까, 우린 여기에서 여러 계절을 보내게 될 테니까, 이름을 기억하게 될 거라 생각했고 그 생각이 맞았다.
그래서,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같은 이름 같은 사람으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호시탐탐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고민하는 중이다.
나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고민만 하다 끝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