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집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시원하게 여름을 보냈다. 세상에 이런 여름 날씨가 존재했다니! 성가시게 하는 모기도 없고, 언제 끝날지 모를 긴 장마도 없으며, 살갗을 파고들 듯 따가운 태양도 없다. 대신 서늘하고 산뜻한 아침, 늦게까지 지지 않는 해, 그리고 아름다운 해안가와 숲이 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9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다.
한국에서는 학년이 3월 2일에 시작하지만, 캐나다의 첫 학기는 9월 첫 번째 화요일에 시작된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길, 처음 이 학교를 구경하러 왔던 날이 떠올랐다. 학교 건물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낯섦과 불안함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학교 근처로 가는 것조차 망설였고, 결국 우리는 먼발치에서 건물만 바라보다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날과 오늘 사이에는 차곡차곡 채워진 밴쿠버에서의 시간들이 있다. 차를 타고 학교 앞을 지나갈 때마다 학교 이름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했고, 학교 옆 스플래시 파크에서 캠프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았다. 더 이상 아이에게 이곳은 낯선 곳이 아닌,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어쩌면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의 새 학기 첫날은 늘 분주하다. 반 배정을 확인하고, 담임선생님을 소개하고, 학생 인적사항을 체크하고, 학급 규칙과 학교 교칙을 안내하고, 교실 자리와 사물함을 배정하고, 지난 학급의 흔적을 정리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각종 유인물을 나누다 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보낸 첫 등교일은 완전히 달랐다.
이곳의 학생들은 단 한 시간만 학교에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새 학년 반편성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 기존 학생들은 지난 학년의 담임선생님과 며칠을 더 보내다가 새로운 반으로 이동하고, 우리 아이처럼 새로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도서관을 임시 교실로 사용한다. 마이크도 없이 강당 앞에 선 교장선생님의 간단한 소개를 듣고, 함께 1층부터 4층까지 학교를 둘러본 후 밖으로 나오니 커피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슈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차 티백이나 인스턴트커피가 아니라, 동네에서 사랑받는 카페에서 후원해 준 커피였다. 학부모들은 자연스럽게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이어갔다.
손에 든 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아이의 학교 첫날 일정이 끝나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캐나다의 학교에서는 선생님도, 학부모도, 아이들도 모두 편안해 보였다. 새 학기 첫날이 되기 전 끝내야 하는 많은 것들 대신 긴장을 빼고 여유롭게 시작하는 새 학기의 모습이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면 나는 첫날부터 지고 말았네. 하지만 괜찮다. 한국에는 집에서 준비해야 하는 도시락 대신 급식이 있다! 급식이라면 한국이 다 이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