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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yeong Oct 28. 2023

과거의 ‘너’는 지금도 네 안에 있어

매일 쓰는 편지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데다, OTT 앱에서도 영화를 주로 보는 편이야. 그러니 요즘 TV에서 뭘 하는지 잘 몰라. 유튜브 클립을 접하고 나서야 본편을 찾아서 보는 것 같아. 지난 9월 28일 방송된 KBS 대기획 <ㅇㅁㄷ 지오디>도 그런 경우야. god(이하 지오디)가 1999년 데뷔해 곧 25주년이 된다고 하더군. 지오디는 지금은 세계적인 프로듀서가 된 박진영과 방시혁의 주도로 탄생한 그룹이야. 무수히 많은 히트곡을 남긴 대중그룹이지.

 

나도 대중의 한 명이었으니 그들의 노래를 잘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것 같진 않아. 다만 그들이 친근한 이미지를 지닌 대중그룹이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어. 그때만 해도 인기 가수들은 엄청 무게를 잡았거든. 학원 폭력이나 교육 문제가 주로 노랫말의 화두가 됐는데, 그건 그들의 타깃이 10대이기 때문이겠지. 반면 지오디의 노래에는 되게 대단하다거나 특별하다는 느낌은 없었어. 근데 계속 듣게 되는 대중 노래였던 거지. 부모님과 함께 들어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100회 콘서트를 할 만큼 공연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

 

생각해보면 지오디의 각 구성원은 천재라거나 특별하진 않았던 것 같아. 노래를 잘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유명한 보컬리스트 수준 같지는 않았고, 춤도 다른 아이돌만큼 잘 춘다는 느낌은 아니었지. 노래들이 강렬하다거나 특이했던 것도 아냐. 익숙한 멜로디와 구성을 반복했을 뿐이야. 다만 가수라고 하면 관객과 호흡하며 놀 줄 알아야 하잖아. 지오디는 그걸 잘하는 그룹이었어.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아직도 지속해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야. 1999년 즈음 데뷔한 아이돌 그룹 중 과연 몇 팀이나 살아남았을까? 당시 1세대 아이돌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활동 중단기도 있었고, 멤버 탈퇴 같은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2023년 현재 그들은 그때와 변함없이 같은 다섯 명이 함께하고 있잖아. 그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지. 가만히 있어도 환하게 빛나는 청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저물어. 우리는 시련과 회한 속에 살다가 차츰 시간에 굴복하는 법을 배우게 돼. ‘내가 낡아간다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어른이 된다고들 하지. 물론 지오디 멤버들은 지금 40~50대 나이지만,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보면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던걸. <ㅇㅁㄷ 지오디> 공연 영상 클립을 며칠 전 유튜브에서 보고선 본편 공연 영상을 뒤늦게 찾아봤어. 그걸 보고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지오디는 여전히 낡지 않았다는 것, 지금도 ‘청춘의 한가운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거짓말’, ‘관찰’, ‘길’처럼 당시에 이미 좋아하던 노래들을 듣는 것도 좋았지만 ‘0%’ 같은 곡은 이번 공연에서 새로 발견한 느낌이었어. 이렇게 신나는 곡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지. 지오디는 관객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뛰면서 무대를 즐기고 있더라고. 공연을 보는 내내 내 20대 시절이 떠올랐어. 어느 순간 보다가 눈물이 날 뻔했어. 그러다 “뛰어!”라는 공연 멘트에 정신을 번쩍 차려 나도 몸을 들썩였지. ‘뭐야, 나 지오디 좋아했네?’ 지오디라는 그룹을 좋아한다는 말을 과거에는 안 했어. 홍대 인디 밴드를 발굴해 즐기면서 남들이 잘 안 듣는 노래를 찾는 게 좋았어. 그게 내 존재의 의미라고 생각했거든. 입 밖으로 지오디 좋아한다는 말을 차마 꺼내기는 싫었나 봐.

 

근데 이제는 내가 남들이 다 좋아하는 노래를 좋아하는 게 싫지 않더라고. 공연의 관객뿐 아니라 TV나 스마트폰으로 이 공연을 즐긴 그 많은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게 참 좋았어. 소속감은 날 편안하게 해주거든. 그 공연을 보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었던 것 같아. 멀리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도 나처럼 즐거워하다가 가끔은 울컥했겠지. 그러고는 자신의 지난 시절을 떠올리다가, 지금 자신을 함께 들여다봤을 거야. 그러면서 이렇게 느끼지는 않았을까. ‘내 청춘은 아직 저물지 않았구나. 난 아직 이렇게 살아있구나!’

 

20대 시절을 그리워하고 이제는 그 시절과 단절됐다고 믿으며 살아가던 내게 이번 지오디 공연은 특별한 의미로 느껴졌어. 그러니까 공연을 보며 내가 무수한 대중과 연결돼 있음을 느꼈듯, 내 과거와 현재 역시 연결돼 있다고 느꼈어. 내 청춘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믿어도 된다고 지오디의 공연이 말해주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공연 중 지오디가 자주 말했듯, 우리도 가끔은 걷지만 말고 뛰어보자는 거야. 괜찮아. 과거의 ‘너’는 어디로 간 게 아냐. 아직 네 안에 있어. 그러니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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