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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조각까지 껴안는 마음

기다리다 (윤하)

by 레몬트리



오늘은 시 한 구절로 시작해볼까 해요.

너무나 유명한 시 정현종 님의 [방문객]입니다.



[ 방문객 ]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음어 볼 수 있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시인 정현종 님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상 작가의 대학교 스승이기도 하고, 이 시의 첫 구절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는 교보문고 현판에 걸려 시를 모르는 이도 한 번쯤은 보았을법한 사랑과 인연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게 해주는 시지요.


인연이 시작될 때, 사랑이 시작될 때, 처음의 시작은 상대방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 끌림을 느끼고,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해요. 현재의 외모, 현재의 성격, 현재의 가치관, 현재의 여러 여건과 환경까지를 포함해 지금 그(그녀)의 모습이 지금 내가 바라는 모습과 어느 정도 이상 맞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지요.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호감이 점점 깊고 진정성이 있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건,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수입니다. 지금의 나, 지금의 그를 만드게 된 수많은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 없이는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마음속 깊이, 영혼까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거죠.


일반적인 연인들이 하루종일 재잘거려도 시간이 모자라고, 밤을 새우며 통화를 해도 못다 한 말이 남은 건, 이런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것이고, 이 사람과 일평생을 함께 해오진 않았지만, 사진으로, 이야기로 전해 듣는 한 사람의 일생을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심어나가는 시간일 거예요.

그래서 흔히 말하는 원나잇의 가벼운 관계에선 이런 과정이 귀찮고 불필요한 과정으로 통째로 생략되곤 하는 거겠죠.


그러다 보면 우리는 상대의 유년시절의 추억과 상처, 또는 지나간 사랑의 기억, 도전에 대한 성공과 실패 등 그 사람이 지나오며 경험한 팩트도 알게 되지만 그 경험들을 하며 그가 가지게 된 사상, 마인드, 가치관도 이해하게 되어, 비로소 아,, 그래서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또는 그 사람에게서 건들지 말아야 역린이 무엇인지, 아킬레스건은 무엇인지, [ 너 사용법 ]도 점차 숙지하게 되고, 그러한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의 모습뿐만 아니라 함께할 미래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고, 서로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를 조금씩 맞춰나가는, 그것이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죠.


듣다 보면 좋았던 기억도 즐겁게 듣지만,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도, 지나간 사랑의 슬픈 상처도, 또는 인생에서 경험한 쓰디쓴 실패의 경험도 전해 들으며, 유독 아팠던 경험에, 힘들어했던 기억에 조금 더 애틋하고,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에게 둘도 없이 좋은 사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고, 과거의 아팠던 기억이나 흔적마저 품어주고 싶은 마음. 그런 애틋한 마음이 어제의 나를 오늘 조금 더 분발하고 의욕이 넘치게, 내일 더 노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기부여, 동력이 되어줍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비극은 모든 마음들이 지금까지 나열한 이상적인 모습으로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점이지요. 그의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에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고, 그의 미래를 기대하는 과정에서 암담함을 느끼고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그에게 내 자리가 없다는 걸 알고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 그대로 사랑은 이론처럼, 이상처럼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고,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낼 수 없고, 운명의 실타래처럼 시작도, 포기도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영역이겠지요.



그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보글보글 끓어올라요, 주전자에서 끓고 있는 찻물처럼

보글보글 정다운 소리도 내고, 감출 수 없는 향과 온기를 내뿜으며 주전자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가 공간을 채워버리듯, 내 삶은 내 일상은 그로 가득해요.

나를 둘러싼 공기, 모든 것이 그로 가득 차고, 그의 영향을 받지요.


하지만 아무리 끓고 있는 마음이라도, 정작 그에겐 내가 아무 영향력이 없다는 걸 느낄 때,

내가 그를 향해 끓여낸 마음도, 향기도, 따뜻한 온기도 그에겐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그에게 부담이 되고, 마음의 무게를 지우게 한다는 마음이 들면, 어느 순간, 초점 잃은 눈동자처럼, 우리의 마음도 방향을 잃고 헤매고, 중심을 잃고 휘청입니다.

사랑 - 그 마음의 본질은 내가 상대에게 기쁨이 되고 싶고, 행복이 되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상대를 사랑할수록 그 욕심의 갈증은 커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수많은 노래와 시에서 사랑해서 사랑하지 않는 법, 사랑해서 잊혀지겠다는 다짐, 사랑하므로 내 마음을 접겠다는 고백 등 구구절절 그 애절한 마음을 노래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소개할 노랫말도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기다리다 ] 윤하


어쩌다 그댈 사랑하게 된 거죠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 있죠
한번 누구도 이처럼 원한 적 없죠
그립다고 천 번쯤 말해보면 닿을까요
울어보고 떼쓰면 그댄 내 마음 알까요

그 이름 만 번쯤 미워해볼까요
서운한 일들만 손꼽을까요
이미 사랑은 너무 커져 있는데
그댄 내가 아니니 내 맘 같을 수 없겠죠
그래요 내가 더 많이 좋아한 거죠

아홉 번 내 마음 다쳐도 한번 웃는 게 좋아
그대 곁이면 행복한 나라서
싫은 표정 한번 조차도 편히 지은 적 없죠
그대 말이면 뭐든 다 할 듯했었죠

천년 같은 긴 기다림도 그댈 보는 게 좋아
하루 한 달을 그렇게 일 년을
오지 않을 그댈 알면서 또 하염없이 뒤척이며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들죠

나 언제쯤 그댈 편하게 볼까요
언제쯤 이 욕심 다 버릴까요
그대 모든 게 알고 싶은 나인데
언제부터 내 안에 숨은 듯이 살았나요
꺼낼 수 조차 없는 깊은 가시가 되어

아홉 번 내 마음 다쳐도 한번 웃는 게 좋아
그대 곁이면 행복한 나라서
싫은 표정 한번 조차도 편히 지은 적 없죠
그대 말이면 뭐든 다할 듯했었죠

천년 같은 긴 기다림도 그댈 보는 게 좋아
하루 한 달을 그렇게 일 년을
오지 않을 그댈 알면서 또 하염없이 뒤척이며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들죠

그댈 위해 아끼고 싶어 누구도 줄 수 없죠
나는 그대만 그대가 아니면
혼자인 게 더 편한 나라 또 어제처럼 이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예요



내 마음 아홉 번 다쳐도 한번 웃는 그대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

내 마음만큼 날 사랑하지 않는 걸 알지만, 그댈 향한 마음이 커서 다른 이에겐 허락할 수 없는 마음

그대 모든 게 알고 싶고, 천년 같은 기다림에 단 한순간을 보게 되더라도 기어코 기다림을 선택하게 되는 마음

노래 속 주인공은 그 애틋한 마음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희망을 놓지 못했어요.


하지만,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내 마음이 그에게 기쁨, 위로, 희망이 되어주지 못하고, 후회와 부담과 두려움이 된다면, 통곡하며 그 마음을 지워내고 끊어내려 할 수도 있어요.

그에게 짐이 되는 건, 모르는 남이 되느니만 못한 것일 테니까요.


아마 노래 속 주인공도 기다리고 기다리고, 하염없이 그의 웃는 모습, 내게 올 날을 기다리지만, 그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또는 내가 그에게 짐이 되고, 후회가 된다는 걸 알게 되면, 나의 기다림마저 그에게 죄책감을 지우게 된다면 그냥 내가 아픈걸 선택할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걸 원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테니까요.

진짜 사랑한다면요.


그래서 이제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그만둔다는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어릴 때는 사랑하는데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겁쟁이들이나 하는 비겁한 변명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와 돌아보니 사랑하는데 그 절절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아프고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사랑은 고달픈 것이고, 아픈 것이고, 시작도 끝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어려운 숙제임에 틀림없어요.


하지만 사랑은 피해 갈 수 없는 비처럼 마음에 내리는 것이니

이렇게 아픈 사랑을 하고 주저앉았던 이에게도 어느 날은 봄비같이 반갑고, 봄햇살처럼 따스한 그런 날도 오겠지요. 어쩌면 기적처럼 상대방이 그 마음 돌아보고, 알아보고 조금 늦었지만 저 멀리서 숨차게 달려올지도 모르고요.

다만 간절하고, 애틋하고, 속절없던 그 마음에 수고했다, 애썼다. 토닥이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전합니다.



※ 원곡을 들으시려면


https://youtu.be/_6C5-abCx6g?si=95gFR5YB91IIQt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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