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래리 Oct 27. 2024

0km : 나는 운동 크루랑 안맞나봐

내 생애 크루 가입은 처음이라

방어는 11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이라 살이 오동통 오른다던데, 나는 사시사철 인간인가 보다. 배가 고파서 문득 배를 내려다보았는데 배가 불러있었다. 불러있는 배를 보고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참으로 이질적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고사항으로 말하자면 나는 임신 중인 여성이 아니다. 병력이 없는 20대 후반의 건장한 남성이다. 화장실에 가서 내 배를 바라보았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주름 잡힌 모자처럼 접힌 뱃살과 마시마로같이 눌려진 배꼽이 나를 힘겹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선으로 접힌 배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배불뚝이 30대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해!'. 


  당장이라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이 뱃살이 준 경고가 현실화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의 이 짤막한 의지는 싸구려 핫팩처럼 30분간 활활 불타오르다 바로 식어버릴 것 같았다. 나의 의지를 강제로라도 지속시킬 수 있는 건 없을까 고민하다가 요즘 유행이라는 '운동 크루'를 찾아보았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나를 행동하게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핸드폰에서 소모임이라는 어플로 집 주변의 운동 크루를 찾아보았다. 테니스, 러닝, 배드민턴 등 무수히 많은 크루가 있었다. 내가 관심 있는 세상은 더 잘 보인다더니 운동 크루 가입에 관심을 보이자 집 주변에 있는 무수히 많은 소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운동해요! 
✅즐겁게 운동하실 분들이라면 누구나 가입을 환영합니다.
✅초보도 환영합니다.
✅실력별 그룹을 나누어 대진합니다. 

어느 배드민턴 크루의 모집 공고에서 본 포용적인 멘트에 이끌려 바로 배드민턴 크루에 가입했다. 모임장은 나에게 카카오톡 단체방에 초대를 해주고 모임 일정을 공지했다.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운영이 되는 것 같았어 '이 모임 들기 잘한 것 같아'라는 마음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을 감춘 채,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하고 첫 모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첫 모임, 새로 산 배드민턴 채와 여분 셔틀콕을 들고 공지된 코트로 나섰다. 내 또래처럼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XXX님 맞으시죠?'. 모임장이었다. 모임장은 익숙한 멘트인 듯 크루에 대해서 짧게 안내해 주었고 그중 다른 크루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모두 도착 후 2시간 동안 배드민턴을 쳤다. 스트레스가 풀리고 몸이 가벼워지자 나는 신문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마음속에서 소모임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배드민턴같이 혼자 하기 힘든 운동을 같이 할 수도 있고, 같이 치니까 힘이 많이 안 들기도 해서였다. 가능하다면 꾸준히 나와서 이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임장이 끝나고 가능한 사람끼리 뒤풀이를 하자고 공지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와 같이 비공식적 번개모임이 잦은 크루였었다. 마침 일주일 전에도 크루원들끼리 단합 MT를 갔다 왔다더라.


그런 크루의 결속력이 나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운동도 하고 친목도 다지면 좋겠지만, 내가 처음 크루를 가입한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친해질 사람들을 만나러 아니라 운동을 함께 사람들을 찾으려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친목위주의 모습들과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그 모임에 나가는 게 꺼려졌다. 결국 이사를 핑계로 그 모임은 탈퇴를 고하고 다시 나가지 않았다.(물론 이사는 가지 않았다.) 


한 번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크루에 가입 후 탈퇴하니 새로운 모임에 가입하는 것이 꺼려졌다. 정말 '운동만 같이 하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그런 모임은 없을까?' 생각해 보니 그나마 불참에 부담이 적은 러닝크루가 떠올랐다. 1시간 이내의 모임이기도 하고, 참여자에 따라 코트를 대여하지도 않기 때문에 부담이라면 당일에 나가지 않으면 될 것이었다.


다시 소모임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 "러닝"을 쳐보니 무수히 많은 크루들이 보였다. 많게는 200명, 적게는 40명까지 다양한 크루들이 있었다. 다소 잦은 친목 모임의 크루에 가입 후 탈퇴한 이력이 있기에 모임 후기 사진을 먼저 찾아보았다. '뒤풀이 모임 없고, 믿음직해 보이는 모임장, 그리고 자주 모일 수 있는 러닝 크루.' 결국 모든 조건에 맞는 소규모 러닝 크루를 찾았고 가입 버튼을 눌렀다.


"다음 주 월요일 정기런 때 뵙겠습니다 ~^^" 

바로 귓속말로 모임장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번엔 오래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혼자 달려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3년 동안 달린 계기가 된 러닝 크루의 첫 가입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