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다. 미라클 모닝을 하겠다며 산 아침달력은 댠 두 줄이 써져 있는 채 쓸쓸하게 내 서랍 안에 갇혀 있다. 올해는 꼭 영어공부를 하겠다며 다짐하고 6개월 전에 산 영문 책도 잘못된 주인을 만나 28 페이지까지 밖에 읽히지 못하였다.
인간의 의지란 왜 이리 약한지. 그리고 나란 사람의 의지는 왜 그보다도 약한지. 처음 러닝 크루에서 달리기를 할 때 생겼던 뜨거운 열정은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자 아침 기온처럼 차갑게 식었다. 영어 공부나 미라클 모닝처럼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내 의지를 이길 수 있는 관성이 필요했다. 내 의지를 이기고 뛰어나가는 사람이 되려면 관성적으로 뛰어야 할 것 같았다.
하나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참여 신청을 누른 후에는 무조건 나가는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이란 것이었다. 나의 박약한 의지를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은 나의 손가락이었다. 소모임 어플을 통해 참여 신청의 클릭을 누르는 나의 손가락이 나의 의지를 대신해 주었다. 한 번 누른 참여 신청은 내가 가기 싫어도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우선 열리는 러닝 크루의 모든 정기런에 참여 신청을 하자. 그리고 한 달만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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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3킬로도 뛰지 못할 것 같은 내가 5킬로를 5:40초 페이스로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했던가. 이제는 5km를 뛰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습관은 의지보다 강하다, 좋은 습관을 들이자."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에 교훈이었다. 뻔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잊고 살았지만 네. 습관이 의지를 이기니 10년 만에 그 의미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10km를 한번 뛰어볼까?
하프 마라톤을 한 경력이 있는 크루원에게 물었다. "제가 아직 5km만 달려봤는데 10km 뛸 수 있을까요?" 크루원은 답했다. "5km 뛰실 수 있으시죠, 그럼 어거지로라도 완주할 수 있어요."
깨달았다. 부족한 것은 내 실력이 아니라 내 의지였구나.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을 써보기로 한다. 네이버에서 마라톤 대회를 쳐본다. 그리고 10킬로 코스에 지원을 한다. 신청완료. 이제 내가 어떻게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