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치와 가치

20년 묵은 옷

by 햇살나무 여운


날이 갑자기 추워져 겨울옷 꺼낼 때가 되었는데 정리도 할 겸 마침 잘 되었다. 20년 남짓 묵은 남편의 겨울 점퍼가 눈에 띈다. 나이키 정품에 충전재가 거위털이다. 뭐든 사기 쉽고 넘치게 흔한 요즘 같은 때에 이게 뭐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학교도 겨우 졸업했어야 할 만큼 혼자 힘으로 어렵게 살아온 남편에게 이 옷은 어쩌면 한참을 망설여 큰마음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사치’였을 것이다. 우리 옷장 안에서 여전히 손에 꼽을 만큼 가장 값비싸고 좋은 옷이기도 하다. 살짝 걸쳐보면 오랜 세월에 길이 들어선 지 부드럽게 몸을 감싸고 편안하다. 포근하고 따뜻하다. 사실 이 옷의 가장 큰 역할은 그 시절의 우리를 어김없이 소환한다는 점이다. 비록 여기저기 많이 해지고 낡았어도 여전히 남아있을 것을 보면 사치가 아니라 그만큼 ‘가치 있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안주머니에서 실종됐던 남편의 지갑도 찾았다. 횡재했네?








p.s. <세 줄 단상>이라고 시작했는데, 글이 점점 길어진다. 매거진 이름을 바꿔야 하나? 미션글쓰기를 하면서 최소 세 줄 이상 500자 이내로 쓰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카톡 대화창에 '전체보기'가 생기지 않을 만큼이 500자 이내라고 한다. 써 놓고 덜어내고 줄이고 바꾸고 또 덜어내고 하는 연습이 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래도 자꾸만 길어진다. 짧은 글이 좋은 글이라는데 뭐 이리 할 말이 많은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