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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Dec 18. 2023

공치는 날

길 위의 일상


남편과 함께 새로이 집수리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다. 회사로 치면 인턴십 기간이 지난 셈이다. 가을부터 시작해서 한 계절을 지나고 겨울이 깊어간다. 몇 개월째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부초처럼 길 위를 떠다녔다.  (이 귀한 경험을 남편도 글로 기록하고 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hngisahomecare


우리의 첫 목표는 ‘공치는 날’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불규칙한 만큼 불안했다. 일이 한 건도 없는 날이 이어지기도 했고, 갑자기 몰려 하루에 서너 건을 처리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주말이나 휴일도 없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쫓아다녔다. 밤 11시가 되어 집에 돌아올 때도 있었고, 늦거나 급할 때는 길 위에서 차 안에서 김밥이나 햄버거로 식사를 때우기도 했다. 그마저도 감사했다. 한두 달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적응도 되고, 그날그날 당일에 닥치는 대로 해오던 일도 조금씩 며칠씩 미리 일정 조정도 가능해졌다. 이제는 약속을 빼먹지 않기 위해 그때그때 스케줄을 확인하고 메모를 한다. 이제 제법 다음 일주일의 절반은 미리 채워지는 정도가 되었다. 아직 여전히 변수는 많지만 그래도 잘 버텨냈고, 불규칙과 불안은 차츰 잦아들고 있다.     


그러나 부초처럼 떠다니는 길 위의 일상은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매번 이것저것 있는 대로 잔뜩 싣고서 다닌다. 자재나 장비들이 차츰 늘어간다. 우리는 작업을 마무리하면 뒷정리를 말끔히 하고 발생한 쓰레기와 폐기물도 하나도 남김없이 챙겨 나오기 때문에 차 안에도 집안에도 그 또한 자꾸만 쌓여 간다.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이 항상 대기 중이라는 상황과 정리정돈되지 않은 일상이 나에게는 한 편의 피로감과 무기력으로 쌓여가고 있기도 했다. 몹시 바쁜 와중에도 뭔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게으름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치가 필요했다. 

      

일과 일이 아닌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건 중요했다. 첫 백일 동안 해볼 만하다는 검증이 웬만큼 되었으니 이제 정식으로 사업자를 낸 자영업자로서의 ‘거점’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커지는 것을 우리는 계속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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