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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집이란 무엇일까?

창과 문

by 햇살나무 여운





집이란 무엇일까?

당신에게 집은 무엇인가? 누구인가? 어디인가?


나는 ‘마음이 사는 곳’이 집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 몸이 먹고 자고 싸면서 일정하게 기거하는 물리적인 공간도 집이 될 수 있겠지만, 몸은 그곳에 있으나 마음이 떠나면 집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비록 몸은 멀리 있더라도 내 마음이 가장 크게 오래 머무는 사람이 내 집이 될 수도 있고, 책 또한 마음이 담긴 글이 엮여 정박하는 곳이니 종이로 된 작은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집은 사람이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사람이다. 사람이 집이다. 마치 세상에 온 목적이 사람을 배우기 위함이기라도 한 듯이 나의 관심은 온통 사람이다. 몸도 마음도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집 같은 사람이 좋다. 집다운 집, 안전한 집을 누려본 적이 없는 어릴 적 결핍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마음 기대어 쉴 수 있는 집 같은 사람이다.


어쩌다 집이란 집은 다 돌아다니는 일을 하게 되면서, 사람이라는 집은 그 사람이 기거하는 공간만큼이나 각양각색으로 다양하다는 걸 몸소 보고 배우고 체감했다. 그리고 마음이 머물러 사는 사람도, 그 사람이 사는 집도 창과 문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창문 밖 뷰에 따라 각기 다른 값을 치르며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언젠가 유리창과 거울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투명한 유리창은 밖을 볼 수 있는데, 왜 같은 유리에 번쩍이는 은가루를 입히면 자기 자신밖에 볼 수 없는 거울이 되어 버리는 것일까? 물론 집이라는 공간에 자신을 비추는 거울도 중요하지만, 밖을 통해 세상과 타인들을 바라볼 수 있는 맑은 유리창도 꼭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과 문은 열려야 한다. 제대로 제 역할을 해서 빛과 바람이 통하고 사람이 드나들어야 집이 건강하다. 겉보기에 분명 창과 문인데 열리지 않으면 무늬만 흉내 낸 꽉 막힌 벽과 다름이 없다. 눈이 멀고 숨이 막힌다. 마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가가호호 다니며 기록한 그동안의 나의 글이 작은 창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지 않고, 때로는 조금 불편하고 불쾌하더라도 보고 싶지는 않지만 봐야 하는 우리네 삶의 이면도 비춰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욕심일까? 다들 자기 살기 바쁘고 버거워서 남들이 어찌 사는지 크게 관심 두지 않는다고도 말하지만, 그 집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집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각할 수 있어야 마음이 무뎌지지 않는다. 그래야 살아 숨 쉬는 마음이다.


나를 되돌아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오직 나만 보고 사는 것은 위험하다. 나를 보는 만큼 남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내가 살아가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별것 아닌 사소한 부분이지만 내 눈에 들어오고 내 마음이 자꾸 쓰이면, 이미 가지고 있는 손길 좀 나누고 보태어 서로 돌보면서 살 일이다. 그래야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이 빛바래고 낡아가는 속도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겠는가. 집도 고치고 더불어 마음도 어루만져 살리고, 서로 돕고 돌보면서 그리 살고 싶다. 덕분에 우리도 살고.


집도 사람도, 몸도 마음도 돌봄이 필요하다. 소소하게, 꾸준히. 집은 살아있다.




이것으로 <뛰는 사수 위에 나는 조수> 시즌2를 갈무리합니다.

애써 서른 편을 다 채우기보다 가끔은 모자르면 모자른 대로 둡니다. ^^


숨 고른 후 에너지 충전하고 마음 환기해서 깊어지는 가을에 또 새로운 연재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늘 감사드립니다.


- 여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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