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시작했을 때와 달라질 때가 있다. 끓이면 끓일수록 깊어지는 곰탕처럼, 쓰면 쓸수록 하고 싶은 말이 깊어져서 처음 맹물 같은 가벼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글 쓰는 과정을 통과하며 전하려던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품었던 사람이 성장한다.
하지만 모든 글쓰기가 깊이 있는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글쓰기는 사람을 더 독단적으로 만들며, 고집과 아집에 불을 지핀다. 글쓰기가 "나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라며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전락한다. 점점 더 교만이라는 깊은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육체는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성장을 멈추고 점점 노쇠하여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생각은 선택적인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자랄 수 있다. 마치 생명이 끊어질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고 100미터 이상으로 성장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레드우드(redwood) 나무처럼, 인간의 생각도 글쓰기를 통해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 깊어져 가치를 얻은 생각은 글 쓰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다른 사람이 그 유지를 이어받기도 한다.
성장하는 글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자에게 유익이 되고 오래 살아남을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3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지금 무슨 말을 쓰고 있는 걸까?
나에겐 이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나는 독자를 배려하고 있을까?
글쓰기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이다. 내 글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독자는 내 글을 어떻게 이해할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아무리 정확하게 말해줘도 말의 의도를 오해할 때가 있다. 그러니 오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글을 다듬어야 한다.
전문용어 사용을 지양하고 쉬운 말로 풀어서 쓰자. 지양(止揚)의 뜻은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하여 어떠한 것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전문용어 사용을 줄이다 보면 어떤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은 단계로 업그레이드된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은 어린아이에게도 그 개념을 설명할 줄 안다.
글의 의도에 대한 오해를 줄이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쉽지만 적합한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아무 단어나 쓰지 말고 정확한 뜻을 알고 쓰자. 평소 자주 쓰는 단어라도 정확한 뜻을 다시 한번 찾아보자. 이제부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과 친해지자. 출판사 편집자들도 표준국어대사전을 켜놓고 작업한다. 이곳에 있는 단어들이 "표준어"다.
참고로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우리말샘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신어, 방언, 전문 용어 등을 다루는 웹사이트다. 우리말샘의 내용은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있으며, 표준어가 아닌 (국어사전에서는 없으나 실제로 쓰이는) 단어와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참고자료이나, 이곳에 있는 단어들은 아직 공식적인 표준어가 아님을 기억하자.
글 쓰는 사람은 내가 쓰려는 주제에 관한 나의 전문성을 독자에게 알려 내 글을 읽어야 할 이유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나는 내 글의 주제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 나는 그 주제에 대해 깊이 알고 깨닫기 위해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는가? 이 질문들에 성실히 대답하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방향이 보이기도 한다.
내가 쓰려는 글에 대한 나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공부, 행동, 그리고 성과.
나는 내가 쓰려는 주제와 관련된 어떤 공부를 했는가? 내가 쓰려는 것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정규/비정규 교육, 독서, 강의 등을 이용한) 공부를 했는가?
(예) 내 글의 주제는 "글쓰기"다.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 후 글쓰기에 관한 50여 권의 책을 읽었고, 1,000시간이 넘는 온라인 강의를 들었으며,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수업과 나태주 시인의 시 쓰기 수업을 들었다.
내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자. 기록은 배움의 동반자다. 무언가를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하면 그것도 공부다.
나는 내가 쓰려는 주제와 관련된 어떤 경험과 행동을 했는가? 공부로 배운 것들을 어떻게 실천했는가?
(예) 내 글의 주제는 "글쓰기"다. 나는 지금까지 1,000편이 넘는 글을 썼고, 10번이 넘는 공모전에 응모를 했으며, 5년째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당신은 이론만 빠삭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아니면 이론을 실천해 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독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쓰려는 주제와 관련된 어떤 성과를 이뤄냈는가?
나의 행동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가? 이것은 상이나 직책처럼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성과일 수도, 늘어난 매출이나 줄어든 몸무게 같은 숫자 일 수도, 혹은 나의 변화에 대한 배우자의 인정 같은 타인의 평가일 수도 있다.
(예) 내 글의 주제는 "글쓰기"다. 지금까지 내 글은 대학 문학잡지에 실렸고, 미국방부가 발행하는 3개의 저널에 실렸으며, 신인문학상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또한 나는 미국·영국·루마니아·크로아티아 4개 국가의 군인 800여 명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의 작전명령 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뤄낸 성과가 꼭 대단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배움과 행동을 실행하며 얻은 결과에 대한 솔직한 서술이면 된다.
글쓰기는 사람을 성장시키지만, 글을 쓰는 목적은 읽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있을까, 아니면 내 글을 읽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 절제하고 있을까?
앞서 내 글의 주제에 대한 나의 전문성을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공부했고, 실행했고, 이루어 낸 성과를 밝히는 목적은 독자의 유익을 위해서다. 독자의 유익에 도움이 안 되는 자기 자랑을 글에서 제거하자. 글에 진심을 담는다고 그 마음이 항상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 거의 대부분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을 금방 알아챈다. 그리고 설령 나의 유익을 위해 독자를 완벽하게 속였을지라도, 그런 글쓰기가 과연 쓰는 이에게 유의미한 유익을 줄 수 있을까?
내 잘난 것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내 독자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내 글을 통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지난주에 적어보았던 나의 이상적 독자가 내 글을 읽도록 설득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보자.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얻기 위해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것을 실천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할까?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주듯 구체적으로 적어보자.
좋은 글은 수많은 수정을 거쳐 완성된다고 합니다. 어떤 작가들은 자신의 초고는 쓰레기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죠. 노련한 작가들도 그럴진대, 저 같은 사람의 초고가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 글쓰기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교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 어떤 글은 고쳐 쓰고, 달리 쓰고, 다시 써봐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질문해 보시라는 글을 쓰며, 나는 과연 글쓰기에 대해 쓸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는 걸 보니 아마 더 공부하고, 더 실천하고,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당신도 글을 쓰며 스스로를 불신하게 되는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마세요. 쓰다 보면 잘 쓸 수 있습니다. 똑똑하게 열심히 계속 쓰면 분명 잘 쓰게 될 테니까요.
어쩌면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는 것조차 힘들지 모르지만, 당신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저도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주에는 연재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올 가을, 시애틀에 또 비가 찾아오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부모님 댁 지붕을 수리할 계획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