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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 한다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상처

by 서담


출근길,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차가운 도시의 풍경이 아니었다.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무, 그리고 그 몸에 새겨진 검은 흔적들.

누군가 급한 마음에, 혹은 충동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의 몸통을 노트 삼아 자신의 흔적을 남긴 듯했다.


낙엽이 지고, 겨울이 찾아오면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구고 맨몸이 된다.

그럼에도 나무는 서 있다. 그 자리에서, 묵묵히.

바람이 불면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작은 칼끝, 볼펜 하나가 나무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을 "침묵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말을 하지 않으니,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고통을 표현하지 않으니, 괜찮을 거라 여긴다.

그렇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고통을 말하고 있다.

깎이고, 긁히고, 잘려나간 자리에서 나오는 수액은 눈물과 다름없다.

한없이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그 아픔이 흔적으로 남는다.


길을 걸으며 문득 생각한다.

이 나무는 이 자리에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켜봤을까.

그리고 오늘, 또 한 번의 인간의 흔적을 새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무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침묵 속에는 오래된 상처와, 견뎌야만 하는 이유들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자연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숨을 쉬고, 그늘을 얻고, 계절의 변화를 즐기면서도

정작 자연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도 헤아리지 않는다.


사람이 제일 무섭고,

사람만큼 잔인한 것이 없다.

그러나 사람만큼 따뜻한 존재도 될 수 있다.

나무 한 그루가 말없이 자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그들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남기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자연은 인간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자연 없이는 살 수 없다.


말 못 한다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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