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구나 고유한 가치와 의미가 있지

나의 계절

by 서담


겨울의 한가운데, 차가운 바람과 눈이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은비"는 빈 가지만 남긴 채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을에 황금빛 잎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은비였지만, 겨울이 오자 더 이상 그를 찾는 이들이 없어졌다. 은비는 어느새 깊은 고독과 함께 겨울의 고요한 침묵 속에 홀로 남겨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저 겨울의 한 순간이라 여기며 담담히 견뎌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 도심 속 고요함이 은비의 마음을 점차 무겁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잊힌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어느 날, 은비는 자신을 비추는 달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렇게 겨울을 보내는 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구나. 나는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나무가 되어버린 걸까?”


그의 마음은 깊은 한숨과 함께 얼어붙을 듯한 고요 속에 잠겼다. 황금빛 잎을 뽐내던 때가 엊그제 같았지만, 이제는 그 흔적조차 사라진 채 빈 가지로만 서 있는 자신이 쓸쓸해 보였다.


"느티"가 멀리서 은비의 이러한 고독을 느끼고 다가왔다. 겨울의 적막 속에서 느티는 은비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아챘다. 느티는 은비의 곁에 서서 차분하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은비야, 너의 황금빛 잎이 가득할 때 사람들은 너를 보며 기쁨을 느꼈지. 겨울이 오면서 사람들이 잠시 너를 떠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년 봄이 되면 그들은 다시 너를 찾아올 거야. 너는 그들에게 큰 의미를 주는 나무란다.”


은비는 느티의 말을 들으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자신이 황금빛 잎으로 가득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사람들이 그 잎을 소중히 여겼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잎이 모두 떨어지고,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있기에 자신의 존재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형님, 가끔은 내가 사라진 존재처럼 느껴져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즐거워했던 그 순간들이 이제는 너무 멀게 느껴져요.” 은비는 담담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느티는 은비의 고통을 이해하며 그에게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는 계절마다 역할을 바꾸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지금 이 겨울은 그저 너의 모습이 잠시 고요해진 시간일 뿐이야. 사람들은 너를 잊지 않을 거야. 그들은 너의 변화를 보고 다시 너를 찾을 거야.”


그때, "소나"가 다가와 은비의 이야기에 함께 귀를 기울였다. 소나는 자신의 늘 푸른 모습을 바라보며 은비가 느끼는 고독을 이해하려 애썼다.


“은비야, 나는 변함없는 초록빛으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너처럼 계절마다 변화하며 색다른 기쁨을 주는 일은 하지 못해. 너의 황금빛 잎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나도 잘 알고 있어.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소나는 진심 어린 위로를 전했다.


은비는 소나의 위로를 들으며 가슴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변함없이 푸른 소나의 곁에서, 자신이 주었던 계절의 변화를 조금씩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겨울이 자신을 잠시 외롭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 시간을 통해 내년을 위한 쉼과 준비의 시간을 가지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은비는 조용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그는 주변의 느티와 소나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으며, 자신의 존재가 결코 잊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마음속에 새겼다. 겨울은 그를 고요하게 만들지만, 이는 다시 찾아올 봄과 여름을 위해 필요한 시간임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새로운 잎을 틔울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내 황금빛을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야.”


겨울의 침묵 속에서 은비는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2화말 못 한다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