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오해받는 시대
식당 한켠, 조용한 테이블에서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건 소란스럽지 않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잔잔한 웃음이었다. 아내와 나였다.
우리가 다니는 식당은 대부분 단골이다. 거의 10년 가까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식당을 찾는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회를 먹기도 하고, 따뜻한 매운탕을 시켜 국물 한술에 하루를 녹이기도 한다. 식당 문을 열면 반가운 인사 대신 익숙한 공기의 온도가 느껴지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자연스레 물 잔을 나누는 일 그게 우리 부부의 ‘작은 의식’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묘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식당 직원의 어색한 미소, 옆 테이블의 흘끗거림, 그리고 “두 분은 오래 사귄 사이인가 봐요?”라는 질문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부부입니다. ㅎㅎ”
짧게 대답했지만, 그 뒤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남았다.
요즘 세상은 참 신기하다. 같이 밥을 먹고,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부부의 모습이 오히려 ‘이상한 일’로 보이는 시대라니.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이 당연시되고, 무뚝뚝함이 익숙한 관계로 비치는 세상 속에서 다정함은 어느새 ‘연애 감정’으로만 해석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는 늘 그렇듯 둘만의 시간을 즐기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기, 이번엔 복어껍질무침 어때?”
“좋지. 오늘은 내가 한잔 따라줄게.”
그렇게 나누는 웃음 속에서 직원 한 명이 스쳐 지나가며 무심코 흘린 한 마디가 귓가를 스쳤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연인 같아요.”
아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연인이요? 하하, 저희 부부예요.”
그 순간 직원의 얼굴에 미묘한 놀라움이 스쳤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잔을 들었다.
“이제는 연인처럼 보이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니야?”
아내는 웃었다.
“그렇긴 한데… 부부가 다정하면 이상하게 보는 세상도 좀 슬프잖아.”
그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못 했다.
정말 그랬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젊은 날엔 다투기도 많이 했고, 서로의 방식이 달라 서운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세월이 우리를 조금씩 닮게 만들었다. 아내의 표정을 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읽히고, 내가 괜히 짜증을 낼 것 같은 날엔 아내가 미리 웃음으로 풀어준다. 그게 함께한 세월이 쌓아준 ‘묵직한 다정함’이었다.
사람들은 그걸 쉽게 보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내는 젊고 활기차다.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고, 말수가 적다. 그래서인지 낯선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종종 오해한다.
‘혹시... 불륜 아닐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요즘 세상에서 다정함은 의심의 대상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오해조차도, 이젠 미소로 흘려보낸다. 왜냐하면 그 오해가 의미하는 건 하나니까 우리가 여전히 ‘연인처럼’ 보인다는 것.
시간이 지나도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부부. 그 모습이 낯설게 보일 정도로 세상이 바쁘게 변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타까울 뿐이다.
식사를 마친 후 아내가 말했다.
“이제 또 단골집으로 등록됐네. 주인아주머니가 이름까지 기억하시더라.”
“그러게. 근데 이번엔 오해 없이 단골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재미없잖아. 그 오해 덕분에 우리가 더 다정하게 보이는데.”
아내의 재치 있는 말에 나도 웃었다. 아내의 말이 맞다. 우리는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부부다. 함께 있는 시간이, 서로를 향한 눈빛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다정함이 이상하게 보이는 세상일수록, 나는 더 다정하고 싶다. 웃으며 밥을 먹고, 서로의 하루를 들어주고, 때론 장난도 치며 “우리는 부부가 맞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 그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위한 다정함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듯, 부부란 서로의 생을 함께 목격해 주는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내와 마주 앉아 하루를 나눈다. 그 어떤 오해가 있어도 괜찮다. 이 다정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관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잔을 들어 건넨다.
“자기, 오늘은 우리 진짜 부부니까 원샷이야.”
그 웃음에 나도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짧은 ‘짠’ 소리 하나에, 우리의 오랜 시간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정함은 오해받을지라도,
사랑의 가장 고요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