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명철 Dec 27. 2019

감정이 돈이라면

난 헤비컨슈머

출퇴근을 운전하며 다니다 보니 음악을 많이 듣게 된다. 평소와 똑같은 하루, 깜깜한 저녁까지 일하느라 지친 정신과 몸을 이끌고 차에 시동을 걸고 퇴근하며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노래를 튼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멍하게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감정이 너무나 벅차올라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위험해 운전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대고 운전대에 고개를 박고 흐느껴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에 응어리진 것이 풀어지며 갑자기 귓가에 노래가 들린다. 웃프다는 상황이 이런 걸까. 스피커에 나오는 노래는 발라드도 댄스도 아닌 힙합이었다. 그렇게 신나는 노래에 맞춰 눈물을 흠치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했다. 


왜 눈물이 났을까? 운전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슬픈 일도 없었는데 왜 마음이 답답하다 못해 서럽게 울었을까. 사회의 일원이자 평범한 하나의 근로자인 나인데 뭐가 그리 답답했을까. 그러면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장면이 머릿속에 휘리릭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맞다. 여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스스로 위로해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나를 계속해서 몰아세우고 달리기만 했지 단 한 번, 단 한순간이라도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지 않았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직장 말고 내 사업을 하면 행복할까? 쉬워 보이지도 않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뒤로한 채 사회가 주는 스펙 그리고 부모님과 주변인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정작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를 간다. 친구들을 사귀고 지식을 접한다. 6년이 흘러 중학교를 간다. 성적에 대한 압박이 들어온다. 성적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될 때가 있지만, 그래도 가치관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점점 부모님과의 대화는 줄어들고,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줄어든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가끔 마음속에 그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치다. 그보다 내게 중요한 내신 성적이 있기에 그런 생각은 그냥 저 멀리 한 켠에 두고 다시 찾지도 않는다. 성적을 통한 줄 세우기로 내 위치를 알게 되고, 성적에 따라 나는 반에서 몇 등정도 하는지 파악하게 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가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와 동시에 입시 준비를 한다. 고등학교 1, 2학년은 수능시험을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하다. 고3이 되자 이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온다. 수능이다. 


여태껏 그냥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살아지는 삶을 살아왔는데 이 시점 이후로는 알아서 내 신분이 바뀌지 않는다. 인생 처음으로 성인이 되어 재수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소위 좋은 대학 즉, 네임밸류가 있는 태그를 붙이기 위해 1년을 투자한다. 인생을 길게 봐서 100이라고 한다면 1년은 1%를 투자하는데 나머지 30% 이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에 1%쯤은 가볍게 머릿속에 정답 맞추기 스킬을 담는다. 


이제 나의 삶의 첫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대학이다. 대학교에서는 기초학문보다는 심화 학문을 배운다. 이제 나의 진로는 어느 정도 구체적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 들어가면 엄청나게 많은 것이 바뀔 것 같았던 대학생활도 시간이 지나고 졸업이 다가오니 큰 벽이 떡하니 서있다. 취업이다.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하면 대기업은 연봉도 높고, 복지도 좋고, 모두가 선망하는 대상이고 무엇보다 대학이라는 태그가 또 나 자신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나은 나를 어필하기 위해 성적은 물론 인생에 한번 쓸까 말까한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해 또 1년 이상을 투자한다. 그리고 대기업에 가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자격증과 공인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남들과 구별되기 위해, 내가 옆에 있는 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임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어는 기본이고 어떻게든 남보다 구별되기 위해 제2외국어도 끄적여본다. 


운이 좋게도 나름 네임밸류 있는 회사에 갔다. 이제 모든 어려움은 끝날 것만 같았고 나의 시대가 펼쳐질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았다. 마치 상위 레벨에 속한 것처럼 착각한 채 어깨에 뽕이 한가득 담겨있다. 출근을 하며 실무를 배운다. 신입사원으로 일하며 내가 맡은 일은 무엇인지, 우리 팀은 무엇을 하는 부서인지 알게 된다. 처음 보는, 지쳐 보이는 사람들과 팀워크를 맞춰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회사는 그렇게 즐거운 곳이 아니구나. 참 즐거운 일만 계속되면 좋겠지만, 스트레스는 당연, 야근 역시 밥 먹듯 한다. 대체 이 안에서 직급은 왜 나눠놓은 걸까? 직급과 연차가 쌓인 분들은 늦게 들어온 직원들을 하대한다. 아... 여긴 전쟁터구나. 돈은 역시 그냥 버는 게 아니구나. 그렇게 매일같이 반복되는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을 한다. 


그래도 이런 루틴한 삶에 적응이 되어갈 때쯤 또 내게 주는 도전과제가 있다. 이젠 정말 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난관은 계속된다. 바로 결혼이다. 물론 지금 월급으로는 결혼은 꿈도 못 꾼다. 하지만, 가족들이 걱정을 한다. 이제 나이도 먹었고 얼른 결혼해야지?


마치 20살이 되면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면 취직을 해야 하듯 결혼도 어느 나이가 되면 해야 하는 인생의 관례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래도 운 좋게 축복을 받았는지 연애도 하고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난다. 아껴 모은 돈으로 결혼을 준비한다. 이때 부모님 찬스가 없으면 결혼을 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혼을 시작할 전셋집을 얻는다. 대출을 받는다. 그리고 이제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또 일을 하러 간다. 18평짜리 집이였지만 24평으로 가기 위해 악착같이 아끼고 산다. 그리고 아이가 생긴다. 24평으로 가기 위해 더 대출을 받는다. 하지만 망할 내 월급은 오르지 않고, 집값은 오른다. 그래도 행복하다. 아이가 생기니 더 책임감이 드는 것 같다. 이제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대출은 줄지 않는다. 이제야 나를 키우신 부모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간다. 그리고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나이 50세면 이 회사에 계속 있을 수 있을까? 또 진로 고민에 빠진다. 


이제 집에 도착했다. 한참을 펑펑 울어서인지 마음이 후련하다. 사실 정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은 그래도 마음의 응어리진 부분이 눈물을 통해 약간이나마 해소된 것에 감사한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가 반가워하며 나를 맞는다.      


“아빠 눈이 왜 빨개요?”
“아~ 졸려서 하품을 많이 해서 그래”
“아빠 안아줘~”     


우리 아이는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 바라며 아이를 꼭 안아준다. 아이를 재우고 뒤늦은 잠을 청한다. 잠에 들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어. 너무나 수고했어.”
“지금도 잘살고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행복한 하루가 될 거야.” 
“쿨쿨쿨~”     


감정을 물 쓰듯 쓰다 보면 언젠가 바닥나기 마련. 


그나마 바닥을 칠 뻔한 감정 그릇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준 딸에게 감사하며 잠이 든다.

우리 딸 덕분에 아빠 취미가 바뀌었어!


#남자는울면안되나요

#회사는회사지내가아니지

#나를사랑하는법을잊고살았네

#지금도충분히잘살고있어

#아빠도가끔눈물이날때가있다

이전 13화 착한 것과 일을 잘하는 건 별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