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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Oct 26. 2022

주인은 주인을 원한다

주인의 이야기

 “다들 늦으셨네요.”

 차를 세우는데 공무원 잔디밭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빛 속에 거대한 배드민턴 셔틀콕이 서 있었다. 책방 에티카의 주인이 밑으로 내려갈수록 넓게 퍼지는 4단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숄을 두르고 잔디밭 가운데 자리했다. 커다란 조명 세 개가 주인을 주인공처럼 비추었다. 모두 잠시 말을 잊고 주인을 바라보았다.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의 손짓이 나를 가리켰다.

 “저요?”

 “연락하라고 하셨잖아요.”

 어제 내가 준 명함을 꺼내 보이며 주인은 말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영감이 떠올랐어요. 그 사람들이 눈치 채기 전에 말해야 할 아주 중요한 영감이. 친절하신 목 사장님이 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공무원 거실 창문 안에서 목 사장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장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일단 저녁식사부터 하시고...”

 “아주 중요한 일이라니까요?”

 나는 체념의 눈빛을 나머지 세 사람에게 보냈고 그들은 안쓰러움을 담은 눈빛으로 답했다. 포장해 온 회와 치킨이 나만 두고 떠났다. 주인은 지금 음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두 팔을 펼쳐 숄을 날개처럼 펄럭이며 이야기했다. 

 “과장님께서 찾아오신 뒤 책방 문을 닫고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왜 갑자기 회인을 주인공으로 책을 쓴다는 것일까? 누가 청탁했을까? 결국 그 사람들밖에 없다, 그 사람들이 암암리에 회인의 책을 찾아내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것이다.”

 주인은 잠시 말을 멈췄고 나는 배고픔과 피로에 시달려 약간 짜증이 난 상태라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주인 스스로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사람들이 누구냐? 그들은 회인의 책을 없애려는 자들입니다. 소설이라는 형태로 숨겨서 전달할 수밖에 없는 진실과 그 진실을 폐기하려는 놈들, 그놈들로부터 책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이렇게까지 노력해야만 했어요.”

 회인의 책이 숨기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주인은 「기다리는 택배는 오지 않는다」를 근거로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건성으로 듣고 있던 나도 흥미를 느낄 만큼 생생한 추리였다. 작품 속 이웃집 택배의 정체, 반장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포도, 철거되는 태양 주택과 새로 짓는 궁전빌라의 은유 등 주인의 해석은 작품의 재창조 수준이었다. 책에 애정을 가지고 꼼꼼하게 읽은 주인의 몰입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건 극히 일부의 예시일 뿐이고요, 이 책의 일곱 작품 모두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철저히 숨기고 있답니다.”

 그토록 중요한 책이기에 파괴의 위험이 존재하고 주인은 이를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제주도 전역을 돌아 책을 구했다. 말 그대로 ‘구했다’. 

 “카페에서 책을 바꿔치기해 훔친 사람이 당신이군요?”

 갑작스런 주인의 자백에 놀라 나도 모르게 선후관계를 모조리 건너뛰고 직설적으로 말해 버렸다. 주인은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태도로 태연하게 답했다.

 “저는 ‘구한’겁니다.”

 “정당한 방법은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은밀하고 교묘하게 일을 꾸미는지 알면 저를 이해할 수밖에 없으실 걸요. 봐요, 책 집필? 이 얼마나 기만적인 핑계거린지!”

 나는 정면 돌파로 이 연극을 빨리 끝내기로 했다. 

 “여기서 회인을 직접 만났다고 하셨죠?”

 ...에서 지금 그때 만났던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려던 내 계획은 갑자기 시작된 주인의 과거 회상에 가로막혀 산산 조각났다. 나는 꼼짝없이 잔디밭에서 쫄쫄 굶으며 이야기를 경청해야 할 처지였다.     

 삶의 주인은 자신의 이름에 만족했다.

 주인은 주인 바로 너란다, 주인의 부모는 주인에게 반복해서 주입했다. 주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자 세계일주 여행 중 만나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주인을 낳았다. 그들은 주인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다린 뒤 주인이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옷장에 넣어 둔 배낭을 꺼내 편도 비행기 표를 손에 쥐고 떠났다. 

 주인은 주인답게 스스로 선택해서 기숙학교에 가고, 거기서 만난 A에게 감명 받아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A와 체육관 창고에서 키스했다가 징계를 받고, A가 주인을 차고 다른 애인을 사귄 것에 충격 받아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 학원에서 B를 만나 그 애가 쓰라는 학교에 원서를 쓰고, 수능을 보고, 주인은 합격하고 B는 떨어지고, 대학 동기 C와 창업을 준비하고, C가 주인의 돈을 빌린 뒤 잠적하고, 휴학하고 옷가게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비행기 티켓과 배낭을 사고, 조지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D를 따라 반 년 만에 귀국해 남은 경비로 강릉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거기서 E를 만나...의 수많은 알파벳들과의 만남 속에서 주인의 주인다운 삶이 흘러갔다. 

 주인은 A부터 Z까지 만났던 이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우연히 길에서 B와 마주친 적이 있었고 B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가 백지 같은 주인의 표정 앞에서 민망해했다. A가 주인의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A는 자신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주인에게 화를 내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게스트들이 A와 주인을 둘러쌌고 A는 주인을 저주했다. 

 “너는 평생 그렇게 아무도 기억 못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게 유병장수해 버려라!” 

 주인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너처럼 네 다리 걸쳐 만나가며 오래 살고 싶진 않아.” 

 A와 주인의 싸움은 안경 하나와 접시, 화장실 문이 파손된 뒤 겨우 끝이 났다.

 나중에 D는 주인에게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없다며 웃었다.

 “근데 좀 불안해 보이기는 해.”

 “내가?”

 “뭔가 삶의 중심이 없다고 할까? 목표라거나, 돌아갈 곳이라거나, 의미 같은 거? 말로 표현이 잘 안 되긴 하는데, 나는 나중에 목포에서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주신 할머니랑 민박집을 열 계획이 있거든. 너는 뭘 하고 싶지?”

 D의 말에 주인은 오래 생각했다. 그때까지 내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었다. 삶이 집이라면 주인은 집에 가구를 채우고, 벽지를 바르고, 벌레를 잡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납부하고, 낡거나 고장 난 곳을 수리하는 등의 끝없는 노동과 선택의 주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완공이 끝난 풀 옵션 집을 원했다. 주인은 그들과 다르다고, 자신이 벽돌부터 쌓아올린 자신만의 집에 대한 자부심으로 여태껏 살아 왔다. 가끔 창틀에 바람이 새고 수도가 고장 나기도 했지만 부지런히 고치고 관리했다. 내가 직접 만든 집이니까 집의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어야지 않나?

 하지만 이 집은 텅 비어 있어.

 아무도 초인종을 누르고 찾아오지 않아.     

 “제 비유가 이해가 잘 되실까요?”

 “아주 잘 되니까 멈추지 말고 계속하세요.”


 주인은 택배 한 번 온 적 없는 삶의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도 이 문을 두드리지 않아, 일 년에 한두 번 연락을 할까 말까 한 주인의 부모도, 그의 집 앞을 스쳐간 A부터 Z까지 모두 주인의 집 안까지 들어와 오래 머문 적 없었다. 이 집은 튼튼하지 않아, 곧 무너질지도 몰라, 그런데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지?

 우울의 늪에 목만 간신히 빼고 누워 식음을 전폐한 주인에게 제주도 여행을 추천한 건 게스트 F였다. 전 세계의 유명한 길이란 길은 다 섭렵한 F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천천히 걷기 좋은 코스로 제주 올레길을 추천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몸을 움직여 단순하게 만드는 것도 좋죠. D의 동의하에 F를 임시 직원으로 고용한 뒤 주인은 작은 배낭 하나와 등산화만 챙겨 제주도로 떠났다. 

 주인은 아무 생각 없이 공항에서 성산행 버스를 타고 올레 1코스 시작점으로 향했다. 제주도가 처음이었던 주인은 막연히 바다와 한라산만 떠올렸다가 올레길 코스에 포함된 산과 오름에 숨이 찼다. 다리가 후들거려 포기할까 고민할 타이밍에 보상처럼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하루에 한 코스씩 완주하는 주인의 두 발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아물었다. 기나긴 4코스를 마친 다음 날 하루 쉬고 7코스에서 제주여행 가이드가 된 H와 만나 술을 마시고 뻗어 또 하루를 쉬었다. 

 10코스를 걸은 날은 제주에 온 지 12일차였다. 완주 후 모슬포항 근처에 미리 봐 둔 숙소는 만실이었다. 숙소 사장은 미안해하며 마침 사계리에 새로 오픈한 게스트하우스에 갈 일이 생겨 태워다 주겠다며 나섰다. 주인은 근처 다른 숙소에 가고 싶었지만 사장의 적극적인 태도에 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차를 타지 않았다면 주인은 자신의 주인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무와 원이 오지 않은 공 게스트하우스는 거대한 두부 같기도 하고 네모난 생크림케이크 같기도 했다. 새하얀 건물을 검은 돌담이 감싼 안쪽은 뜻밖의 드넓은 잔디밭이 정갈하게 손질되어 펼쳐졌다. 돌담 안으로 들어서며 주인은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장소의 기능보다 장소의 존재 자체가 목적인 곳, 달 표면에 꽂은 깃발처럼 건물 전체가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없이 매끈한 잔디 한복판 터무니없을 만큼 거대한 벤치가 주는 위화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벤치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새빨간 아디다스 저지를 입고 막걸리를 병째 마시고 있는 사람의 존재 때문일지도. 긴 다리를 쭉 펴고 주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병나발을 부는 그는 한때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밴드의 은퇴한 보컬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손님?”

 “여기 주인이실까요?”

 “목 사장님이라고 불러요. 마침 자리가 하나 남았는데, 운이 좋네.”

 주인은 배낭을 벗고 잔디밭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2주 가까이 거의 매일 걸어 다닌 몸이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목 사장의 웃는 얼굴이 주인에게 드리워졌다.

 “인생 바람 따라 사는 스타일이지?”

 “그 정도는 나도 맞추겠네요.”

 “오늘 모임 초대 손님에 딱 맞아. 정말 운이 좋아.”

 “사장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주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 낭독회

 이것은 모두 일종의 소설입니다     


 주인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목 사장은 어디론가 가 버렸다. 

 해가 지고 어두워진 잔디밭에 조명이 설치되었다. 벤치가 정원 가운데로 옮겨지고 게스트하우스 손님 말고도 외부에서 몇몇 사람들이 찾아와 자유롭게 자리를 잡았다. 주인은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바로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왜인지 낭독회, 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목 사장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주인에게 무릎담요와 물병을 건넸다.

 다들 잔디밭에 그냥 앉는 것을 본 주인은 적당한 자리에 무릎담요를 깔고 앉았다. 벤치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조명에 의지해 책을 읽는 남자와 그 옆에서 맥주를 마시는 단발머리와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처음이신가 봐요.”

 주인은 한참 뒤에야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찾았다. 주인의 왼편에 거대한 리본 머리띠를 한 사람이 주인을 보고 있었다.

 “오늘 막 왔어요.”

 “아쉽네요. 그리고 다행이네. 하루만이라도 이 행사에 참석할 수 있으니까요.”

 그가 주인에게 책 한 권을 보여주었다. 검은색 표지에 빨간 테두리의 견출지로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라는 제목이 붙은 책은 여러 손을 거쳤는지 책장이 너덜거렸다. 왕리본은 운 좋게 첫날부터 낭독회를 참여할 수 있었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게 너무 슬퍼요. 그리고 기뻐요!”

 그 순간 건물 안 불빛과 정원의 조명이 전부 꺼졌다. 벤치를 비추는 단 하나의 조명만 제외하고.

 밤하늘에 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밤이구나, 어둠속에서 주인은 무심히 생각했다.

 하늘을 응시하던 시선이 움직이는 무엇인가에 저절로 끌려갔다. 긴 외투 같은 옷자락을 펄럭이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림자가 빛으로 향했다. 벤치에 앉은 그의 얼굴을 빛과 어둠은 한 조각이라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퉜다. 조각난 그의 얼굴만큼이나 입은 옷도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의 끝과 뾰족한 코와 턱과 긴 손가락과 신체의 모든 끝이 날카로웠다. 칼날 조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주인은 회인의 첫인상을 그렇게 인식했다.

 인사도 환영의 말도 없이 그는 손에 든 검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택배의 연속이고 내 택배보다 남의 택배가 먼저 도착하는 법이다.

 첫 문장과 함께 주인은 분명히 들었다. 자신의 집에 울려 퍼지는 초인종 소리를, 뒤이어 작지만 날카로운 노크 소리를, 주인의 현관문이 활짝 열리고 문 앞에 택배 상자를 든 회인이 활짝 웃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나의 이웃이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A부터 Z까지 수많은 사람과 만나면서 이렇게까지 몰입한 경우는 없었다. 어둠 속에서 주인은 블랙홀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눈앞의 사람에게 손쓸 틈도 없이 빨려 들어갔다. 회인과 주인은 동시에 물었다. 회인이 묻고 주인이 묻고 회인과 주인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누구십니까?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는 회인의 시선을 주인은 독점하고 싶었다. 파도치듯 일정한 리듬으로 문장을 읽는 그의 목소리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나는 주인입니다. 나의 주인을 간절히 원하던 주인입니다. 드디어 당신이 나를 찾았습니다. 택배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문을 두드립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당신이 나의 주인입니다.

 그 전에 나의 택배가 먼저 도착하면 좋으련만.

 낭독을 마친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잔디밭에 모여 앉은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주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 회인은 뭔가 발견했다는 듯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나를 알아봤구나! 주인은 그때까지 손에 쥐고 있던 책을 품속에 안았다.

 “별 것 아닌 글임에도 소중한 시간과 귀를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로 책들은 모두 제주의 책방과 카페에 고루 배부되었습니다.”

 앞자리에 누군가 손을 들어 왜 제주에만 책을 배포했는지 질문했다.

 “마지막 약속이었습니다.”

 회인은 짧게 답했다. 그 뒤로 자유롭게 대화가 오가고 하나 둘 잔디밭을 떠났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던 회인이 드디어 주인을 향해 다가왔다.

 “오늘 처음 뵙는 분이네요. 지루하지는 않으셨나요?”

 주인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 옆에서 왕리본이 순식간에 주인의 손에서 책을 낚아채 회인 앞에 섰다.

 “제 인생 최고의 일주일이었어요, 작가님!”

 “감사합니다.”

 “여기 사인을 부탁드려요!”

 책을 확인한 회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책은 이곳에 있어야 해요.”

 그 순간 뒤에 서 있던 주인과 회인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원하는 일이 있다. 아주 크고 중요한 일이다. 그 일은 어렵고 까다로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왕리본처럼 눈치 없이 방해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그는 도움을 원한다.

 그는 나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그날 밤새도록 낭독회 뒤풀이 자리가 공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이어졌다. 왕리본은 집요하게 회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절대 비키지 않았다. 주인은 별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과 같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왕리본은 끈질기게 회인의 신상명세를 캐묻고 회인은 교묘하게 대답을 비껴갔다. 제가 말띠라 쥐띠랑은 상극이라는데 진짜로 제 전 애인이 쥐띠 연상이었는데 소송까지 갈 뻔했다니까요, 근데 작가님은 무슨 띠신가요? 하면 회인이 아, 그러면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시겠네요, 제가 그때...하는 식으로 대화의 방향을 비틀었다. 사람들은 각자 마실 술을 병째 들고 다니며 마셨고 회인은 보드카를 혼자서 반 병을 비우고도 멀쩡해 보였다. 주인은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며 왕리본이 힘겹게 끌어 낸 책 제목의 의미나 목련 같은 단어들을 슬며시 주웠다. 새벽 3시쯤 회인에게서 보드카 두 잔을 받아 마신 왕리본이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안 피곤하세요?”

 주인이 회인에게 건넨 최초의 말은 이것이었다. 회인은 웃으며 자신이 마시던 보드카를 잔에 따라 주인에게 건넸다.

 “술은 잘 드시나요?”

 주인은 보란 듯이 술잔을 비웠다. 목구멍에 불덩어리가 들러붙은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주인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화학약품을 돈 주고 마시는 일은 어리석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회인의 잔은 거절할 수 없었다.

 회인은 미소 띤 얼굴로 보드카를 한 잔 더 따라 주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잠시 그들은 올레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회인은 주인이 완주한 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고 이때까지 이어진 주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심을 보였다. 

 “삶의 분기점에서 스스로 선택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수많은 타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죠, 저는 가짜 주인이에요.”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회인이 주인의 잔을 따르며 손가락이 살짝 스쳤다. 독한 술에 목이 멘 걸 핑계로 주인은 기침을 내뱉었다. 

 “밑바닥의 밑바닥을 걸어 다니던 때가 있었어요. 거기서 더 떨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삶의 바닥이라고 해야 하나, 지옥 직전이라고 할까, 거기는 항상 끈적거리는 공기로 가득 차 있는데 그걸 호흡하며 걷다 보면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못해요. 나는 왜 태어났지? 나는 왜 태어났지? 왜? 정말 치명적인 생각인 게, 그 질문엔 답이 없거든요.” 

 회인은 보드카를 물처럼 마시며 낭독할 때와 같이 담담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그 생각 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용해 먹으려 해요. 자기는 그 답을 안다고 속이면서 철저히 나를 농락하는 거죠.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질문을 바꿔야 해요. 왜? 가 아니라 어떻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래서...”

 주인은 회인 옆에 뒤집힌 채로 놓인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를 집어 들었다. 일곱 편의 짧은 소설이 실린 검은 책은 얇고 두꺼웠으며 가볍고 아주 무거웠다. 회인은 진지한 얼굴로 주인이 책을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뭐라도 해야만 했어요.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를 지워버리려는 이들로부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비장한 회인의 표정 앞에서 주인은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

 “저도 찾고 있어요.”

 목적어로 무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찾고 있어, 의미를, 목적을, 환하게 타오르는 별과 같은 것을,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같은 것을, 누구든 한 번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완벽을, 내 모든 걸 다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사람을, 미련 없이 죽을 수 있는 세계를.

 주인은 말하지 못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인은 주인을 이해했다. 하지 못한 말을 이해하는 능력을 이 사람은 가지고 있다고, 눈빛 한 번의 마주침만으로 주인은 회인을 알았고 회인은 주인을 알았다.

 “이런 문장이 있어요. ‘그대 자신의 말을, 그대 자신의 행위를 하라. 이를 무로부터의 창조라 부를 것이다.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 번째 표정이다. 몰락의 에티카다’. 내가 ‘에티카 선언’이라 부르는 말이에요. 이 선언 덕분에 이 책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때 술이 덜 깬 왕리본이 다시 거실로 돌아와 큰 소리로 떠드는 통에 회인의 말을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당신’과 ‘주다’는 단어는 확실했다. 당신, 주다, 당신을 주다, 당신에게 주다, 당신께 줄게요, 당신에게 나의 에티카를 줄게요.

 버티고 버티다 동이 트기 위해 밤이 서서히 옅어지는 창을 보며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이 박수를 친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눈을 뜨니 정오도 한참 지난 시간이었고 주인은 거실의  항아리 옆에서 누가 덮어준 담요를 둘둘 말고 있었다. 

 “잘 잤어?”

 생수 병을 건네며 목 사장이 물었다. 물에서 술맛이 났다. 주인의 찌푸린 얼굴을 보고 목 사장이 미소를 지었다.

 “여기는 체크아웃 시간이 따로 없어. 자고 싶은 만큼 자도 돼.”

 주인은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실에는 주인뿐이었다.

 “다들...갔어요?”

 “지금은 너랑 나뿐이지.”

 목 사장은 다 안다는 미소로 주인을 바라보았다.

 “재미있었지?”

 “회인 씨는...”

 “새벽에 떠났어. 걔가 칼 같은 면이 있어. 잘못 건드리면 손을 베어버려. 아쉬움은 독서로 달래 봐.” 

 바닥에서 회인의 책을 집어 들고 주인에게 건넨 뒤 목 사장은 잔디밭으로 나갔다. 맨발로 잔디밭을 거니는 사장의 몸짓은 지극히 의식적이면서 한편으로 자연스러웠다. 주인은 목 사장을 따라 잔디밭으로 나갔고 술을 깨기 위해 돌담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앞뜰의 잔디는 건물을 빙 둘러싸고 뒤뜰까지 이어져 있었다. 잘 관리된 잔디밭은 단 한 그루의 나무만 허락하고 있었다. 주인은 처음 보는 작은 나무가 노란 꽃술을 품은 흰 꽃을 달고 서 있었다. 다시 앞뜰로 나온 주인은 어제 회인이 앉았던 그 벤치에 걸터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는 동안 사장님과 대화도 하고, 같이 점심도 먹고, 그렇게 3일을 있다가 육지로 나왔어요. 부모님이 귀국하셨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그 뒤로 제주도에 거처를 구하려는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저 분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내 손가락이 밝게 빛나는 공무원 거실을 가리켰다. 브로콜리와 공이 나란히 앉아 뭔가를 먹으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공이 손을 흔들자 주인은 유심히 공을 바라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 저거 내가 아는 그거 맞아요?”

 “그 옆에 사람을 가리키긴 했지만, 둘 중에 한 사람은 그거 사람 맞아요.”

 “세상에! 세상 뻔뻔하네!”

 주인의 목소리가 거실까지 들릴지 모르겠지만 주먹을 쥐고 휘두르는 모습만으로 확실히 전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될 것 같았다. 공은 웃는 얼굴로 두 팔을 들어 더 힘차게 흔들었다. 

 공의 팬이 아니더라도 경악할 만한 욕설들을 내뱉은 뒤 약간 진정된 주인은 공 옆에서 우리를 관람하는 브로콜리를 발견했다.

 “저 사람도 방송에 나왔던 사람인가? 왜 얼굴이 익숙하지?”

 어제 브로콜리에게 들었던 주인과의 만남 이야기를 하자 주인은 박수를 치며 반색했다.

 “맞아요, 맞아! 기억나요, 기억나! 그때 한참 이 근처에 집 보러 다닐 때 저기 뒤에 공원에서 만나가지고, 얘기를 너무 잘 들어 주시는 게 고마워서 초콜릿도 드렸죠.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지?”

 “어제 저와 같이 책방에서 만난 분은 기억 안 나세요?”

 “누구요?”

 조명 아래 주인의 표정은 순진해 보였다. 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듯 무구한 얼굴이었다. 내가 손쓸 틈을 주지 않고 주인은 브로콜리와의 만남 장면부터 목천과 제주에 집을 보러 다녔던 기억을 풀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나의 에티카를 줄게요, 주인은 회인에게 받은 것을 소중히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처음에 염두에 둔 곳은 목천이었다. 왕리본과의 대화 중 회인이 무심코 흘린 단어를 주인은 놓치지 않았다. 1호선을 타고 목천역에서 내리니 역 앞에 ‘목천 목련축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버스를 갈아타고 목천천으로 가는 길에 본 도시의 풍경은 특별할 것 없었다. 특별한 이가 머물렀던 도시라기엔 너무 평범하다고, 목천천의 만개한 목련을 보기 전까지 주인은 생각했다. 

 “그때 그 사진을 찍으셨군요?”

 책방 벽에 붙어 있던 사진을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목천천의 풍경이 이야기로 몇 번을 다녀온 뒤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곳에서 저는 많은 것을 보았답니다.”

 주인은 보았다. 넘치도록 흐르는 개천 양 옆에 작은 전등 같은 목련이 낮을 더 밝게 비추는 풍경을, 목련나무 아래 감탄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쉼 없이 찍는 사진을, 사진 속에 절대 담기지 않는 철거되는 건물들을, 완공된 아파트 단지와 줄지어 지어진 카페들은 목천천의 물처럼 속이 투명했고 막 피어난 목련처럼 깨끗했다.  

 지나치게 깨끗하다고 주인은 생각했다.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개천과 광고 속 풍경 같은  아파트 단지의 매끈한 외벽은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었다. 여기는 아니다, 회인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을 찾았다. 주인 역시 회인의 뒤를 따라야 마땅했다. 주인은 제주도에 자리 잡을 계획을 세웠고 그 사이에 <공무원 게스트하우스>가 방영되었다. 20프로가 넘는 시청률 속에서 공이 회인의 책을 낭송했다. 회인의 이름이 알려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주인은 경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책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책을 파괴할 위험이 컸다. 지켜야 했다. 회인이 제주에 남겨 두려는 이상향을 누군가는 지켜내야 했다. 

 D와 합의 하에 강릉의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제주에서 거주 중인 지인을 소개받았다. 주인이 가진 돈으로 공 게스트하우스 옆 마을에 허물어지기 직전의 제주 구옥을 겨우 살 수 있었다. 예산이 빠듯했기에 구조 보강과 기본적인 수리만 받은 뒤 인테리어는 직접 했다. 타일을 붙이고 줄눈을 채우고 창문과 문을 달았다. 버려진 가구를 고쳐 페인트를 칠했다. 일 년 넘게 조금씩 고쳐가면서 전기장판과 컵라면과 보드카로 버텼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회인이 주인에게 준 에티카를 구현하는 일은 온통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회인과 그의 경전이 거처할 유일한 사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원은 책방의 형식으로 지어져야만 했다. 

 매일 초코바와 보드카를 가지고 다니면서 완성된 에티카를 이야기하는 주인의 얼굴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났다. 조명보다 더 밝게 빛나는 사람 앞에서 ‘당신이 만났던 회인과 진짜 회인은 다른 사람이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말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회인은 믿음의 영역이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진리다. 

 책방 에티카를 만들어 가는 동안 틈틈이 제주 전역을 돌며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의 위치와 재고 현황을 확인하며 한 권 두 권 책을 구출했다. 카페나 책방이 없어지거나 사장이 바뀌는 경우에 책을 구하는 건 쉬웠다. 이미 판매된 책을 추적하여 다시 사들이는 과정은 복잡했고 복잡해서 뿌듯했다. 책이 불태워진 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 못했기에 충격이 컸다. 책방 사장을 찾아가 멱살을 잡은들 이미 재가 된 책을 되돌릴 순 없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회인의 책들을 구해야 했다. 사장들이 방심한 틈을 타 방치된 책들을 바꿔치기하며 주인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건 정의를 집행하는 거니까. 공무원에 비치된 한 권과 책방 주인이 불태운 다른 한 권을 제외한 나머지 48권을 전부 에티카에 모아놓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주인의 이야기를 듣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는 감각은 한참 전에 떠나 버리고 아예 감각이란 게 몸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회인 원정대원들에게 눈빛으로 구조신호를 보냈고 브로콜리와 공이 잔디밭으로 나왔다. 브로콜리가 주인에게 다가가 오랜만에 다시 뵙는다며 말을 거는 틈에 공이 자연스럽게 조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벤치를 들어 올리는 공을 돕기 위해 반대쪽 모서리를 잡았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이렇게 가벼울 일인가?”

 내 반응에 공이 웃었다.

 “이모 작품 특징이죠. 겉보기와 다른 반전 디자인. 가벼워 보이는 테이블이 미친 듯이 무겁거나, 세상 묵직해 보이는 의자가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가볍거나, 이모만의 유머 감각이죠.”

 제자리로 돌아간 벤치를 쓰다듬으며 공이 말했다.

 “작품이란 게 만든 사람 따라가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이 벤치와 같이 이모도 무뚝뚝하고 정 없는 사람이란 말 많이 들었지만 속은 또 달랐으니까. 배우만 달라. 연기는 전부 나 같기만 하면 실패하는 거잖아요. 나인데 내가 아니어야 성공하니까, 이상하네요.”

 “근데 그걸 잘 하셨다?”

 “농담 반 진담 반,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잘 해서 이제 그만하고 싶었어요. 나는 그만 내가 되고 싶었거든.”

 어느새 브로콜리가 가까이 다가와 벤치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았다. 주인은 술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제가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아 찾으러 왔다는 사람들을 3일에 한 명은 꼭 만났거든요. 자기가 뭘 하고 싶고 뭐를 잘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나를 찾아서 제주도에 오고, 스페인에 가보고, 인도도 가고 아이슬란드까지 떠나서 걷고, 배우고, 오로라 같은 거 보고, 그렇게 찾아지는 걸까요. 내가?”

 방금까지 자기 자신을 찾았노라 확신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되기 위해 자기가 잘 하는 일을 포기한 사람과,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제주도에 온 뒤로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에 노출되었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중절모를 쓰고 우산을 쓴 이야기들이 내 위로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러다 제주도에 온 본래의 목적까지 잊어버릴 지도 몰라, 어지러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선을 고정할 지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환하게 불이 밝혀진 공무원의 거실 안, 그 안에 해원과 목 사장이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해원은 두 손을 펼쳐 그 안에 든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앞으로 내밀며 뭔가 말을 하고 목 사장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비스듬히 꺾은 채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었다. 해원의 손짓과 목 사장의 고갯짓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격렬해졌다. 

 “지금 다투는 걸까요?”

 브로콜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해원의 손이 항아리를 잡았다. 순식간에 공이 안으로 뛰어들고 항아리가 허공을 날았다. 거실 창에 부딪힌 항아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나와 브로콜리가 동시에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거실로 돌진했다. 

 항아리 조각을 가운데 두고 해원과 목 사장이 서로 마주본 채 서 있었다. 공은 목 사장 옆에 서서 해원을 살펴보고 있었다. 해원은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부정적인 감정을 가득 담아 목 사장을 노려보았다. 목 사장의 표정은 평온했다. 이렇게 되리란 걸 다 아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리둥절한 브로콜리가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고 나는 이 모두를 지켜보았다.

 “미안해요, 장원 씨.”

 뜻밖의 호명에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네?”

 “미리 말하지 않고 장원 씨 물건에 손을 대서 미안해요.”

 해원의 말에 그때서야 바닥에 놓인 내 노트북이 보였다. 활짝 펼쳐진 내 노트북 배경화면 속에서 나와 삼촌이 나란히 웃고 있었다.

 “혹시 아버지와 함께 찍으신 사진인가요?”

 “제 사장님...그러니까 외삼촌이신데.”

 “그럼 우리는 법적으로 사촌간이네요.”

 해원의 시선이 다시 목 사장으로 옮겨갔다.

 “또 있어? 나한테 숨긴 거.”

 “오늘 말하려고 했지. 저 분만 아니었으면.”

 어느새 내 뒤에서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거실의 난장판을 목격한 주인을 가리키며 목 사장이 말했다. 


 “오늘 밤에 깜짝 발표를 할까 했는데, 선배 회사로 책 제작 의뢰한 사람이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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