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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Oct 26. 2022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

장원의 이야기 잠깐,

 “일단 다들 앉고 시작해 볼까?”

 목 사장의 말에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해원만 서 있었다.

 “이게 태평하게 앉아서 들을 얘기야?”

 해원의 말에 우리는 다시 일어났다. 목 사장만 앉아 있었다. 

 “이건 다 너를 위한 일이야.”

 “혼자 생각하고 착각하고 상처 주고, 항상 그랬어. 엄마도, 그쪽도.”

 “목 사장 호칭이 싫으면 예전처럼 회장이라 불러.” 목 사장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내 오른쪽에 선 주인이 오른쪽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일까요?”

 내 왼쪽에 선 브로콜리가 왼쪽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두 분이 무슨 관계일까요?”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오랫동안 듣기만 한 내 성대는 깊이 잠들어 깨울 필요가 있었다.

 “제 노트북을 허락 없이 열어본 이유부터 듣고 싶네요.”

 나를 향한 해원의 시선은 부드러웠다.

 “정말 미안해요, 장원 씨. 몰래 보려던 건 결코 아니었어요.”

 나를 두고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저녁을 먹으며 책방 에티카와 그 주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목 사장이 주인을 공무원에 초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원의 머릿속 전구 하나에 불이 들어왔다. 낭독회 마지막 날 주인과 처음 만났을 때 회인이었던 해원은 목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 없었다. 그리고 에티카에 목천천 사진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 주인에게 목천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 해원의 눈앞에서 치킨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브로콜리에게 공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사람이 거의 확실했다. 

 화장실에 가는 척 방으로 들어온 해원은 침대 위에 올려 둔 내 노트북을 꺼냈다. 바탕화면에 다운받아 둔 의뢰서를 자세히 읽어 볼 생각이었다. 노트북엔 비번이 걸려 있지 않았고 해원의 눈앞에 바탕화면 속 나와 삼촌의 미소가 펼쳐졌다. 

 “법적으로 제 아버지라는 분은 사진으로 한 번, 엄마 장례식장에서 한 번 스치듯 뵌 게 다에요. 제대로 인사도 한 적 없어요. 그런데도 사진을 보자마자 알아봤어요.”

 “좋은 분이지.”

 “나는 내 법적 아버지의 좋고 나쁨을 따지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 내가 묻고 싶은 건 그쪽이야.”

 “사람을 그쪽이라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니지.”

 공이 둘 사이에 끼어들며 일단 앉자며 중재를 시도했다. 공의 눈짓에 나와 주인과 브로콜리는 엉거주춤 앉았다가 해원의 고함소리에 다시 일어났다.

 “가식 떨지 마, 왜, 아예 엄마라고 부를까?”

 “네 엄마는 소영이지.”

 “왜 나를 입양했는지 알아.” 해원이 한 발 앞으로 나서자 공이 막아섰다. 바닥에 깨진 항아리 조각이 가득했다. 브로콜리가 빗자루를 찾아 나서고 주인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달라며 내 옆구리를 계속 찔렀다. 

 “저 분이 사장님 따님이었어요?”

 “사장님은 저 분 어머니 친구인데, 그러니까 양어머니인데, 양아버지가 제 삼촌인데, 그러니까 삼촌이 결혼을...한 분이 그 분이었구나?”

 정신없는 상황 속 사정없이 까발려지는 폭로전 한복판에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이 상황을 따라가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여기서 왜 삼촌이 나와? 물론 삼촌은 이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 프로젝트를 수락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프로젝트 제안자가 목 사장이라고 한다. 목 사장과 삼촌은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고, 지금 목 사장과 해원의 거친 대화 속 오고가는 정보를 조합해 보면 해원을 입양하기 위해 혼인관계증명이 필요했던 소 목수가 친구인 목 사장에게 법적으로 혼인신고만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줄 것을 요구했고 그 사람이 내 삼촌이었고?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인가?


 나의 현기증과 무관하게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브로콜리가 허리를 굽혀 깨진 항아리 조각과 과자 봉지들을 치우고 주인이 내 옆구리를 계속 찌르는 동시에 해원과 목 사장은 이곳에 오직 단 둘만 있는 것처럼 싸웠다. 해원은 목 사장과 소 목수가 회인을 입양했어야 했다고 말하고 목 사장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답하고 해원은 회인을 향한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입양했다고 말하고 목 사장은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고 어떻게 입양을 목적으로 삼촌을 이용할 수 있냐고, 사람을 수단으로 대할 수 있냐고, 선배는 기쁘게 그 역할을 받아들였고 애초에 결혼을 그러니까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영위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서명으로만 존재하는 결혼에 동의했고, 그건 그렇게 바라보고만 싶은 얄팍한 변명이지 않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일 수 있냐, 주인에게 목천 이야기를 하고 회인의 이야기를 과장해 책을 전부 모으게 만든 의도가 뭐냐, 가만히 듣고 있던 주인이 화들짝 놀라 내가 뭐요? 묻는 말에 답하는 이 없고 목 사장은 해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하는데 너는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단순하게 바라보지? 선배도 주인도 스스로의 선택을 뒷받침할 동기가 있고 계획이 있었어, 너는 나를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 같은 존재로 만들고 싶은가 본데, 사람이란 어떤 선택이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네가 회인의 이름으로 만든 책에도 나오지 않니. 

 “자유, 그래, 그래서 엄마와 그쪽은 그런 선택을 한 거야? 나까지 끼워서 가족 놀이를 한 거지.” 

 “너 말이 좀 심한 거 아냐?” 

 공의 말은 해원을 더 격분하게 만들어 넌 좀 끼어들지 마, 쏘아붙이고 공은 더 큰 목소리로 너야말로 착각하지 마, 고모와 이모가 가족 놀이라면 네가 지금 하는 건 영웅 놀이라고 해야지, 그 애가 이런 상황을 원했을까? 그 원고를 전해준 건 나야, 하는 말에 해원이 픽 웃으며 아하,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 줄까? 회인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네게? 

 “그래, 일부러 그랬다. 부탁을 받았으니까.”

 해원이 다시 비웃고 공은 정색했다.

 “부탁한 게 내 뒤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전혀 아니야. 그 애가 그렇게 부탁했어.”

 “거짓말.” 해원이 곧장 받아치고 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히 말했어. 그 책은 유명해지고 널리 읽히는 게 중요하다고.”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옆에서 보는 해원의 표정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측면과 정면이 동시에 그려졌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상대방을 향한 불신과 일말의 의심스러움이 뒤섞인 모자이크 같았다. 

 공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목 사장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분노하게 만들지?” 

 목 사장의 말대로 해원은 씩씩대고 있었다. 몸 안에 든 것이 견딜 수가 없다는 듯 숨을 몰아쉬고 주먹 쥔 두 손은 떨리고 있었다.

 “모두 나를 가로막아.”

 해원을 구성한 조각들이 뒤엉켰다. 분노와, 불신과, 고독감, 냉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유일하게 나를 받아준 사람은 이곳에 없다. 모두가 나의 실패를 종용한다, 감정의 조각들이 해원의 앞에 선 이들을 향해 날을 세웠다. 그 아슬아슬함에 보는 내가 숨을 죽였지만 목 사장은 태연했다. 

 “너는 이미 원하는 걸 가졌어.”

 “고모, 얘는...” 끼어들려는 공을 손짓으로 제지하며 목 사장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네가 나를 아무리 원망해도 개의치 않아. 너는 소영이가 바라던 걸 주었고, 내가 바라던 걸 허락했으니까, 죽을 때까지 갚아야지, 내가.”

  목 사장은 천천히 해원을 향해, 해원 뒤의 벽에, 벽에 걸린 그림으로 다가간다. 공과 무와 원의 사진 옆에 피카소 풍으로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 한 여인의 초상화.

 “이곳을 지을 수 있게 허락해 줘서 고마워.”

 목 사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무게감 있게 거실에 있는 모든 이들을 내리눌렀다. 좌중을 압도한 목 사장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해 이야기할 게 뭐가 있나? 나는 회인과 해원처럼 책을 쓴 적 없고, 주인처럼 책방을 짓지 않았고, 공처럼 대중을 사로잡은 연예인이 된 적 없고, 브로콜리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산에 오른 적 없고, 목 사장처럼 단 한 사람을 위해 삶을 걸지 않았다.

 나는 나로 존재하는 일만 하기도 벅찼다. 

 내가 딸인 걸 알았을 때 엄마는 내가 너무 미워 이불 위에 엎어 놓고 모른 척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주 말했다. 밥 먹을 때마다 나를 보며 말했다. 같이 밥을 먹는 아빠도 언니도 동생도 누구도 그만하라고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딱 한 번 국그릇을 엎었다가 엄마는 일주일 내내 통곡하며 안방에 드러누웠다. 나는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고 엄마가 드러누운 일주일간의 모든 집안일을 다 해야 했다. 

 아빠는 첫째이자 첫 딸인 언니를 아꼈다. 엄마는 아들 귀한 집에 시집가서 고추를 낳아 왔다고 치하한 아버지에게, 그러니까 나의 외할아버지에게 동조해 인생 최대 업적인 아들에게 푹 빠졌다. 주말에 외출하면 아빠 손을 잡은 언니와 엄마 손을 잡은 동생 뒤를 따라가며 그들이 손에 쥔 풍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식당에 가면 우리는 다섯 명이라 자리를 잡기 불편하다며 투덜거리는 엄마의 시선이 무의식중에 나로 향했다. 

 나도 언니처럼 학원에 다녔으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을라나? 나도 동생처럼 엄마 차를 타고 통학을 했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학교에 갈 수 있었을까? 수원의 한 대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나를 가리키며 엄마는 내가 우리 집안의 옥에 티라 했다. 언니처럼 공부를 잘 해 좋은 대학에 간 것도 아니고 동생이 달고 나온 것도 없이 쓸모라고는 온데간데없다고.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동생도 그런 말을 듣는 나를 보고도 가만히 있어서 나는 그 말들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들 그런 말을 한 번쯤 듣고 사는 줄 알았다.

 창문 없는 집과 같았던 내 세상에 구멍을 뚫어준 사람은 거의 비슷하게 찾아왔다. 내게 청혼한 김과 나를 채용한 삼촌. 앞에서 말한 대로 나는 행운과 불운이 샴쌍둥이와 같이 동시에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김과 삼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동시에 나를 찾아냈다.

 졸업 후 취직한 첫 해 친구 소개로 만난 김은 서로의 가족사 이야기를 하다 ‘옥에 티’발언에 벌컥 화를 냈다. 한 인간의 쓸모는 타인이 정하는 게 아니라고, 특히 가족과 같이 가장 가까운 사이에 그런 말은 아주 잘못된 거라고, 자신의 아버지가 누나에게 생각 없이 그런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자신은 그런 아버지와 오랫동안 싸워 왔다고 말하며 내 손을 잡았다. 

 “장원 씨, 이제 그런 뾰족한 말 듣지 말고 살기로 나랑 약속해요. 예쁜 말만 듣게 해 줄게요.”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막막히 김이 잡은 내 손만 바라보았다. 소개팅의 성지라는 그 파스타 전문점은 우리처럼 서로 마주보고 앉아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남녀로 꽉 차 있었다. 다들 김과 같이 예쁜 말만 주고받는지 궁금해졌지만 가만히 있었다. 김이 하는 대로 하고 가자는 대로 가고 가만해 있었다. 가만히 있는 건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었다.

 삼촌이 내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건 김과 이혼한 뒤였다. 그 해 외가 제삿날에 엄마는 나를 반 강제로 데리고 갔다. 그때 삼촌은 집안 공식 천덕꾸러기로 이름도 없는 사무실을 굴리며 돈이나 축내는 반백수 취급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돈을 축내는 쪽인 큰외삼촌이 삼촌을 비난하면 다들 동조했다. 삼촌은 이 모든 말을 무시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삼촌은 나를 보고 오랜만이라며 덥석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노란 고무줄로 묶은 삼촌의 머리꽁지가 같이 흔들렸다. 엄마와 이모와 큰삼촌들이 머리 좀 잘라라, 사람다운 옷 좀 사라, 만나는 사람 없으면 내가 말한 선 자리 좀 나가라 등의 말들을 한마디씩 꽂아 넣었다. 너는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졸업장 썩히기나 하고, 엄마가 슬슬 시동을 걸었다.

 “나는 유원이 재원이 걱정은 하나도 안 돼. 문제는 장원이야. 얘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뒤집개로 나를 가리키며 엄마는 이모와 외숙모들에게 말했다. 외가에서 엄마는 대학교수인 남편과 대기업 연구원인 딸과 의대생 아들을 모두 가졌기에 가장 큰 발언권을 쥐고 있었다. 그 발언권을 엄마는 자식 자랑에 반을 쓰고 나머지 반은 가장 변변찮은 자식의 무용함에 대해 설파하는 데 썼다. 이름도 모를 대학을 기어들어가 놓고 사무실 같은 데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 결혼하고 정신 좀 차리나 했더니 그것마저도 실패해 버렸으니 못난 자식 부끄러워서 어디 다니질 못하겠다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와 삼촌들은 열심히 호응하고 아빠는 사촌들과 거실에서 TV만 보고 있었다.

 그때 내 뒤에서 밤을 깎고 있던 삼촌이 칼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누나는 어쩌면 그렇게 아버지 안 좋은 점만 쏙 골라 닮았어?”

 “갑자기 뭔 소리야?”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이잖아, 다 똑같잖아, 왜 차별해?” 

 “내가 뭘 차별을 해.” 거기서 시작된 말다툼은 깎다 만 밤과 부침개와 과일과 제기가 공중에서 날아다니고 거실에서 영화를 보던 사촌들까지 달려와 말려야 할 정도로 큰 싸움이 되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고함치는 엄마 앞에서 삼촌은 누나야말로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아버지가 나한테 하던 짓을 왜 자기 딸에게 똑같이 하고 있냐고, 그만하라는 아빠와 큰삼촌에게 매형도 형도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냐고 말했다. 

 얼이 빠진 아빠 옆에서 주저앉아 엉엉 우는 엄마를 노려보던 삼촌은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삼촌이 사주는 소갈비를 먹으며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신 외조부모가 3남 2녀의 자기 자식들을 어떻게 키워 왔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삼촌을 나머지 자식들 먹을 것 빼앗으러 온 애 취급했던 할머니와 삼촌의 대학 합격보다 누나들의 아들 임신에 뛸 듯이 기뻐했던 할아버지 밑에서 삼촌은 삼촌 자신을 받아들이기까지 남들보다 몇 배로 애써야 했다. 

 “장원아, 가볍게 듣는 법을 익혀야 해. 너는 쓸모가 없다든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들, 그런 말들은 구멍이 숭숭 뚫려 아무런 가치가 없거든.” 

 “딱히 틀린 말도 아닌데요.” 

 그때 나는 인간이 의지의 동물이라면 차라리 인간이기를 포기할 상태였다. 가만히 앉아 김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가만히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아 합의이혼에 도장을 찍었다. 김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김이 말해 왔던 누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물러났어야 했다. 첫 만남부터 한복을 입고 바스락거리며 나를 안아주던 김의 어머니 때문에 놀랄 겨를이 없기도 했다. 김은 실제로 누나가 없지만 만약 누나가 있었다면 기꺼이 누나 편을 들어 줬을 거라며 태연하게 말했다. 거짓말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내게 소개팅 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서 자동적으로 나온 이야기라고 변명했다. 

 “장원 씨를 처음 본 순간 이 사람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약간의 거짓말이 필요하지 않아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김은 입버릇처럼 거의 모든 말에 ‘다들’을 붙였다. 다들 이 식당이 맛집이래요, 요즘 여기서 다들 사진을 찍어요, 원래 이 나이쯤 되면 다들 결혼을 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다들 하듯이 프로포즈를 받고 스튜디오 촬영을 하고 드레스를 고르고 예단과 예물을 주고받고 신혼집에 혼수를 꽉 채워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이래서 다들 사랑을 하는 거죠. 김은 자신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억울한 누나들이 넘쳐나고 자신은 그녀들을 구해낼 의무가 있다고 했다. 여분의 휴대폰 두 개와 SNS비밀 계정을 내게 들킨 날에 김이 펼친 논리였다. 다들 이렇게 산다고.

 결혼 일주년에 이혼을 확정짓고 나오는 법원 앞에서 김은 내게 선고했다. 

 “다들 잘만 참고 사는 걸 너만 못 해요. 너는 평생 그렇게 외롭게 살다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릴걸.” 

 내가 삼촌에게 김의 마지막 인사를 들려주었고 삼촌은 소갈비 2인분을 더 주문했다. 

 “장원이 네가 생각하는 ‘다들’은 뭐냐?”

 “대학 나와서 취직 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고, 그런 거 아닌가요?”

 “그걸 원해?”

 추가로 주문한 2인분에 1인분을 더 먹고 된장찌개와 공깃밥 두 그릇과 냉면 한 그릇을 다 먹도록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비운 냉면 그릇을 내려놓으며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좋아.”

 그 뒤로 위자료를 가지고 서울에 집을 구해 삼촌의 사무실에 출근하기까지 일사천리였다. 썩 예쁘지만 않은 말들이 오고갔고 나는 번호를 바꿨다.      


 내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한 것 같다.

 아니, 내 이야기에도 나는 거의 없다.     


 나를 말하기 위해 내 가족을 포함한 나와 엮인 사람들을 끌고 와야 하는 지금, 나는 유일무이한 나를 형상화 할 수 있는가. ‘나는 내가 보여주기 나름인 걸.’ 「인정하는 부분인 것입니다」처럼 내 주변인을 방패삼아 담을 쌓고 그 뒤에 숨어버릴 수 있다. ‘너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야. 그걸 알려주기 위해 1024명을 대표해 우리가 찾아왔어.’ 「당신만의 드라마」와 같이 그럴듯한 ‘나’들을 만들어 계속해서 나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진짜 김장원은 누구인가? 애초에 진짜 나라는 게 있는가?

 가볍게 생각해, 가볍게.

 삼촌의 목소리가 제주의 바람처럼 내 주변을 감싸고 빙글빙글 춤을 춘다. 두 번의 제주도 방문, 김과 함께 배를 타고 돌고래를 보러 간 5월 제주의 바다 빛깔을 기억한다. 삼촌을 따라 스쿠버 다이빙 오픈 워터 자격증을 땄던 두 번째 5월 제주를 떠올린다. 배를 타고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공기통을 맨 채 잠수한 내 눈 앞에 펼쳐진 바다는 전혀 달랐다. 납작한 그림 같던 바다가 팝업 북처럼 활짝 펼쳐지며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해변에 떠밀려 힘없이 말라가는 해초마저 바다 안에서는 중요한 풍경의 일부였다.

 재미있지? 물속에선 돌 하나도 다 의미가 있다.

 삼촌의 회사에서 내가 정말로 도움이 되고 있는지 한창 의심이 깊을 때 왔던 여행이었다. 내게 베푸는 것들의 의미가 연민에 이끌린 동정인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묻는 내게 삼촌은 가볍게 생각하라 답했다.

 “너는 너 자신을 지나치게 의심해. 너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잘만 볼 줄 알면서.”

 “다들 그렇지 않아요?”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다들’에 놀라 입을 막자 삼촌이 웃었다.

 “다들...그런지 나는 몰라요. 나는, 나는 내가 제일 어려워요.”

 “나도 그래. 그래서 그때 고마웠어.” 삼촌이 말했다.

 삼촌이 말하는 ‘그때’는 삼촌의 어머니이자 내 외할머니의 칠순 잔치가 열렸고 삼촌이 결혼을 선언한 날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혼인신고만 했다는 삼촌의 선언이 폭탄처럼 날아와 잔칫상을 터뜨렸다. 중학생인 막내 조카까지 합심해 삼촌을 비난했다. 왜 최악의 선택만 골라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냐고,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되는 거라고, 그건 낳아준 부모에 대한 배신이라고, 너는 필히 지옥에 갈 거라며 악쓰는 큰이모와 큰삼촌들이 삼촌을 쫓아냈다. 나는 엄마 몰래 삼촌을 따라가 말했다. 나는 삼촌이 무슨 선택을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해.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나는 부끄러웠고 삼촌은 자랑스러워했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는다는 거지. 삼촌이 평가한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번 의뢰를 받으며 삼촌은 처음부터 나를 보낼 생각이었다. 회인이라는 정체가 불분명한 존재를 둘러싸고 복잡하게 뒤엉킨 이해관계와 인간관계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사람. 부재한 당사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수많은 이미지들, 난립한 소문들, 마구잡이의 목소리들 중에 필요한 조각들을 골라 퍼즐을 맞출 기술자.      

 나는 공무원의 환하게 불 밝힌 거실을 거대한 캔버스 바라보듯 살핀다. 이야기를 시작한 목 사장의 부풀어 오른 양 볼과 그 뒤에서 목 사장을 끌어안으려는 듯 한쪽 팔을 뻗은 채 살짝 입을 벌리고 경청하는 공과 깨진 항아리 조각을 모두 치운 뒤 사람들이 덮을 담요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브로콜리와 이 모든 구도의 중심인 해원의 알 수 없는 표정, 나는 다시 한 번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리고 있다. 이번 세 번째 5월 제주 여행에서 나는 자주 보티첼리를 생각했고 왜 그의 그림이 자꾸 생각나는지 생각했다. 언니가 보여 준 아동 전집에서 처음 본 그 그림은 나의 첫사랑이었고 투명하면서 동시에 명료한 채도로 가득한 그림을 꿈꾸게 했다.

 그래, 진짜에 가까운 나는 거대한 화폭 위를 붓으로 채우는 모습일 것이다. 언니와 동생이 가져간 채도 높은 나의 꿈이 나다. 나는 나의 꿈이다. 

 너는 나의 꿈이다.      

 내가 지나치게 앞으로 나왔다.


 평소보다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나를 의식하며 나는 질문한다. 이 글은 일기인가? 아니면 소설일까? 첫 날 나는 일기보다 소설 쓰기가 훨씬 어렵지 않나 쪽이었다. 직접 써 보니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일이 훨씬 힘겹다. 약간의 거짓과 상상을 섞어 그럴듯한 ‘나’를 창조하는 것이 더 편안하다. 

 왜 그럴까? 일기와 소설의 흐름 차이 때문에. 일기는 쓰다 보면 글의 흐름이 하강하기 쉽다. 왜 오늘 이렇게밖에 보내지 못했는지, 왜 항상 아쉽고 목표한 것들을 다 하지 못한 나의 존재가 보잘것없이 느껴지는지 쓰게 된다.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려 노력할수록 자기비하에 빠지기 쉽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볼 때와 같이 눈이 너무 작다거나 살이 쪘다거나 하는 식으로 단점만 찾아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대면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와 반대로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나아갈 있다는 상승의 흐름이 있다. 어두운 결말로 간다 해도 어떤 교훈이나 인상 깊은 주제, 숨겨진 희망을 암시하며 이야기의 시작 부분보다 조금 더 올라가 끝맺을 수 있다. 해원이 말한 ‘거짓되게 솔직할 수 있다’는 건 이 현실이 아무리 똥 같고 지옥 같아도 모두가 품고 있는 천국의 한 조각을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 소설이라는 뜻이다. 무작위로 그려진 그림 속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내는 삶의 로르샤흐 테스트.


 이 글 역시 내가 나를 재구성하여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가는 결말로 나아가는 ‘소설’이다. 


 지금 목 사장은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중이다.

 주인은 주인을 재구성해 에티카를 만들었다.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공자는 배우 공을 만들었고 사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회인은 해원이 재구성한 소설일까?     

 막힘없이 이어가던 생각이 걸려 넘어지고, 나는 지금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목 사장의, 한때 회장이라 불렸던 이의 고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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