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또 버거워지네요

망각의 거센 발작 속에

by 이아
서로 분간할 수 없게
혼합된 밤과 외침의 입들이,
망각의 거센 발작 속에
얼굴들을 가로지르며 입을 벌린
상처들이 - 돌연
이 세상보다 더 아득한 태곳적인
또 다른 어느 밤을,
어느 극단의 외침을 추모한다.

From. 밤의 책 - 실비 제르맹


후아 후아~ 오늘 오전부터 또 강렬한 이 문장이 머릿속을 빛의 속도로 지나갑니다. 실비 제르맹 님을 만난 건 그야말로 축복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에서 시작해서, 마그누스, 분노의 날들, 그리고 숨겨진 삶에 이어서 작년 이 맘 때에 구입한 밤의 책호박색 밤.


밤의 책은 실비 제르맹 작가님이 31~32세에 쓰신 데뷔작이신데, 희한하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40년이 지나서 2020년에 초판 인쇄가 되었네요. 그래서 저는 작년 1월에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그 강렬함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실린 에너지가 너무 강해서 사실 딱 절반만 읽다가 멈췄습니다. 멈춰진 채로,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제가 만약 20대, 30대 나이였다면 밤을 새우고, 읽고, 필사하고, 이 책에 대해 지인들에게 떠들고 다녔을지도 모르겠지만,


작년에 저는 이 책을 읽고, 알 수 없는 광기에 휘말려서 일상을 유지하기가 살짝 버거워서 제쳐두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이 분은 정말 천재구나! 천재를 알아보는 제 자신이 조금 뿌듯해지기까지 했지만, 후아 후아 버거웠는데, 언젠가 에너지가 좀 더 차오르면 그때 다시 도전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설사하듯 싸질러대다 보면 제 안에서 정화작용이 일어나 더욱더 에너지가 맑아지고, 힘이 생기겠지요. 그러면 그때 다시 도전할 겁니다. 기대가 됩니다. 저의 변화가!!


위의 인용구에서,



망각의 거센 발작 속에

얼굴들을 가로지르며

입을 벌린 상처들이

어느 극단의 외침을 추모한다.



를, 여기저기에다 다 써두었습니다. 잊지 않으려구요. 망각이 발작을 하는구나~ 그것도 거세게! 그리하여 망각의 거센 발작, 또 그 안에!


얼굴들, 누구의 얼굴일까요? 실비 제르맹 작가님이 생각하신 얼굴들과 저는 또 다른 얼굴들이 지나갔습니다. 그 얼굴들이 떠오르자, 상처들이 떠올랐고, 그 상처들이 하나씩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가로지르다... 아... 저는 가로지르다에서 칼날에 베인 것 같은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그러게요.


제 상처는 환경에서 주는 상처도 있었지만, 지워지고 뭉개지고 잊혀진 사람들, 또 그와 대조적으로 너무나 잃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그러나 필연적으로 잃게 되었었던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사람들과 주고받은 상처들이 마구 떠올랐습니다.


외침, 그것도 극단의 외침이란 어떤 걸까?


하아~ 제 마음속에서 극단의 외침을 쳐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아팠습니다.


추모란, 추모... 추모는 제대로 되었는가? 추모가 되어진 얼굴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얼굴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가 버거웠습니다. 그러나 계속 궁금합니다.


쓰다 보니 또 버거워집니다. 여기까지 하고, 세수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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