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아는 사람만 두로와
작은 애와 홈플러스에 가는 길에 안경점에 들렀습니다,
개학 후 칠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이제야 시력 측정을 하게 되었네요.
언니가 안경을 바꾸거나, A/S를 받을 때마다 따라가서 시력 측정을 했습니다. 결과는 양쪽 다 2.0!!!!
그랬던 시력이 이번엔 오른쪽 0.4 / 왼쪽 0.3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시력이 아주 나빠진 게 아니라 '가성근시'가 의심되니 안경을 맞추는 것보다 안과에 가서 정확한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합니다.
가성근시
근거리 물체를 볼 때 수정체를 감싼 모양체 근육이 수축돼 수정체가 두꺼워지고 먼 거리를 볼 때는 반대로 모양체 근육이 이완돼 수정체가 얇아지는데 이 조절력이 너무 강할 때 가성근시가 생길 수 있다. 진성근시는 눈의 구조적인 원인에 의해 눈으로 들어간 빛이 망막보다 앞쪽에 맺힐 때를 말하며 자연적으로 교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성근시는 조절력이 강한 상태로 장시간 한곳에 집중하다가 먼 곳을 볼 때 근육이 쉽게 이완되지 않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근시이다. 가성근시는 오랜 시간 동안 눈의 조절력이 높아지는 근거리 작업(컴퓨터, 독서, 비디오 게임 등)을 할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성인에게 발생하기도 하나 주로 학동기 어린이에게 호발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
작은 애의 시력 검사를 한 김에 요즘 들어 자꾸만 글자가 겹쳐 보이고 흐릿하기까지 한 내 눈도 검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처음 안경을 꼈습니다. 칠판이 잘 안 보인다고 해서 부모님과 함께 안경점에 갔는데, 검사를 해보니 '꼭' '반드시' 안경을 껴야 할 정도의 시력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안경이란 걸 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내가 다닌 학교에는 친구들은 물론 후배들 누구도 안경을 낀 사람은 없었습니다. 간혹 몇몇 선생님들만 끼고 있으셨지요.
눈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이라는 사탕발림과,
전교생 중 유일한 '안경쟁이'(당시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가 되는 것의 특별한 마음에 그렇게 안경을 끼게 되었습니다.
눈을 보호해 줄 것이라 했지만, 안경을 낀 후 시력은 날로 나빠져 갔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시력은 마이너스까지 떨어졌고, 할아버지들이 끼는 돋보기처럼 안경알은 두툼했지요.
문제는 오른쪽과 왼쪽의 시력이 너무나 벌어져 짝눈이 되었다는 것, 2000년대 초반의 기술로는 시력을 비슷하게 맞추면 안경알의 두께가 너무 차이 났고, 안경알을 비슷하게 하면 한쪽이 잘 안보였습니다.
호기롭게 렌즈란 걸 끼우기로 했습니다. 당시 거금 20만 원을 들여 하드렌즈를 구입했습니다. 혼자서, 처음으로 눈을 부릅뜨며 끼는 하드렌즈는 두 눈을 충혈시키기 충분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눈을 비비다 하드렌즈의 각도가 어떻게 틀어졌는지 각막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고, 진짜 눈알이 빠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라섹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만에 신세계가 열린다는 라식수술과는 달리 라섹수술은 수술 후 약 한 달 동안 서서히 시력이 좋아졌습니다.
처음엔 수술 후처럼 계속 이 상태면 어쩌지 할 정도로 모든 사물이 흐릿했고, 신문의 글자가 보이지 않아 애가 탔습니다.
교정시력 1.5 혹은 1.2로 약 20년을 지냈습니다.
이만하면 수술 효과 제대로 봤다고 지인들은 말했지만, 언제까지나 시력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랐습니다.
"실례하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4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는 대답을 들은 안경점 직원은 슬며시 웃어 보였습니다.
"오른쪽은 난시, 왼쪽은 근시예요. 컨디션에 따라 난시의 상태가 매우 달라져 잘 보였다 안보였다 해요... 문제는 이제 나이로 인해 노안이 오는 거죠."
운전을 자주 하는 게 아니라면 버틸 때까지 버텨보라고 합니다. 안경 끼기 싫어서 라섹수술을 한 만큼, 이제 안경을 끼면 평생 껴야 할 거라는 거죠.
흠... 나이 드는 건 이럴 때 참 서글픈 일입니다.
이번 외출의 본래 목적이었던 홈플러스로 향했습니다.
다음 주에 먹을 것들을 장 보고, 작은 애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주문하기 위해 1층에 있는 롯데리아에 갔습니다. 앞에는 부부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주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적립하시겠어요?"
"네, 해주세요."
대답을 마친 할머니는 키패드를 여러 번 두드리다가 뒤에 서 있는 할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010은 누르지 않아도 되는데 누르는가 하면, 8개 번호를 연속 틀려 다시 시작, 또 시작을 반복합니다.
토요일 저녁이라 맘이 급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잘 보이지 않아 최소 10번 이상 다시 누르고, 또 누르고 있는 할아버지가 조금 힘들어 보였을 뿐입니다. 또한 다소 지루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알바생의 눈빛도 눈에 보였습니다.
"제가 눌러드릴까요?"
할아버지는 숫자를 누르는데 집중한 탓에 듣지 못한 걸까요, 여전히 반복합니다. 낑낑대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합니다.
이쯤 되니 듣지 못하신 게 아니라 끝까지 스스로 해내고 싶은 의지가 엿보입니다.
'내가 이런 것도 못할 줄 알아?'
할아버지의 고집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홈플러스에 오기 전에 안경점에 들러 '노안'이라는 단어를 들었기 때문인지 나이 들수록 할 수 있는 게 줄어드는 게 얼마나 서글픈지 급 공감이 되어버렸습니다.
내 딴에는 어른을 위한 친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질문을 받은 할아버지께는 자신의 무력함을 증명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괜히 친절해져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내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할아버지, 조금 느릿해도 파이팅입니다!"
https://brunch.co.kr/@jinmeirong/57
https://brunch.co.kr/@jinmeirong/55